일본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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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일본 요리인 초밥(스시)(寿司, Sushi) |
일본 요리는 일본에서 발달한 요리를 말한다. 국내에선 일식(日食)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선 와쇼쿠(和食, 화식)이라고 칭한다.[1]
주요 특징으로는 섬나라 임을 근간으로 하는 해산물이 주류라는 것과 '생식(生食)',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담백한 양념류', '섬세한 담는 방식' 이상의 세 가지가 주로 꼽힌다. 다만 이는 상술한 가이세키 같은 일본 전통 요리나 회 같은 순수 100% 생식에서나 주로 찾아볼 수 있고, 실제로는 야키소바, 라멘, 나베, 초밥 등 간이 진한 음식들도 많다. 초밥은 의외일 수도 있지만 제조과정에서 식초와 설탕을 기본적으로 상당히 넣고, 시식자 취향에 따라서 간장과 와사비까지 들어간다.
주요 특징으로는 섬나라 임을 근간으로 하는 해산물이 주류라는 것과 '생식(生食)',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담백한 양념류', '섬세한 담는 방식' 이상의 세 가지가 주로 꼽힌다. 다만 이는 상술한 가이세키 같은 일본 전통 요리나 회 같은 순수 100% 생식에서나 주로 찾아볼 수 있고, 실제로는 야키소바, 라멘, 나베, 초밥 등 간이 진한 음식들도 많다. 초밥은 의외일 수도 있지만 제조과정에서 식초와 설탕을 기본적으로 상당히 넣고, 시식자 취향에 따라서 간장과 와사비까지 들어간다.
2013년 12월 유네스코의 제8차 무형문화유산보호 정부간 위원회에서 와쇼쿠(和食), 특히 신년 축하를 위한 일본의 전통 식문화라는 이름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다.[3] 이보다 앞서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음식 문화로는 프랑스 요리, 지중해 요리, 멕시코 요리가 있다.
현재 일식은 프랑스 요리와 함께 세계 파인 다이닝을 주도하고 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의 수가 도쿄는 파리조차 가뿐히 뛰어넘은 1위이고 오사카, 교토, 심지어 나라까지 순위권에 오를 정도이다. #[4] 뉴욕, 런던, 파리, 모스크바, 베를린 등 주요 대도시들에서도 미슐랭 스타를 받는 일식당이 기본적으로 세 네 곳 이상 있을 정도이다. #, #, # 테이스트 아틀라스가 선정한 2023년/2024년판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 랭킹에서 이탈리아 요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
현재 일식은 프랑스 요리와 함께 세계 파인 다이닝을 주도하고 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의 수가 도쿄는 파리조차 가뿐히 뛰어넘은 1위이고 오사카, 교토, 심지어 나라까지 순위권에 오를 정도이다. #[4] 뉴욕, 런던, 파리, 모스크바, 베를린 등 주요 대도시들에서도 미슐랭 스타를 받는 일식당이 기본적으로 세 네 곳 이상 있을 정도이다. #, #, # 테이스트 아틀라스가 선정한 2023년/2024년판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 랭킹에서 이탈리아 요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
대한민국을 비롯한 해외에선 스시, 라멘, 우동, 소바, 낫토, 오뎅 등의 일본 요리가 널리 알려져 있다.
유럽을 포함한 구미권 국가에서는 '아시아' 하면 생각나는 요리로 태국 요리와 함께 일본 요리가 꼽힐 정도로 유명한 편이다. 사실 숫자로면 보면 중국 요리가 압도적으로 많으나, 중식은 워낙 현지화가 되어서 이국적인 이미지는 많이 옅어진 편이다. 그에 비해 일식은 아직은 색다른 이미지가 있고 먹으면 건강해지는 고급 요리 같은 이미지가 있다.
일본 요리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현재에 있어 중국 요리의 영향은 동중국해와 한반도라는 지리적 완충지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의 요리들이 일본 요리에 준 영향과도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매우 강력하다. 일본 요리에 대해 소개하는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일본 요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는 한국 요리, 미국 요리, 프랑스 요리의 영향은 간단하게 언급되는 정도이거나 아예 언급조차 안 되나, 중국 요리의 영향에 대해서는 문서 내 각 항목에서 한두 번씩은 꼭 다룰 정도이다. 볶음, 찜, 튀김, 증류, 국수, 만두, 간장, 밀, 차 등 다양한 요리법들과 식자재 가공법들 그리고 작물들이 한반도를 통해 혹은 양 지역의 직접 교류를 통해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근현대 시기에는 일본 요리가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 지역의 요리에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한데, 대표적으로 중국의 경우 훠궈가 형태적으로 일본의 샤브샤브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있고, 2010년대부터는 중국의 일인당 경제력이 크게 향상되며 해외 미식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는데, 이에 따라 중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초밥, 회, 와규 등 일본 요리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외에도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한 중국, 대한민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경우에도 일본 요리가 자주 알려진다. 반대로 산초와 고추를 이용한 중국식의 매콤한 맛과 다양한 중국식 고기 요리가 오늘날 일본의 대도시 지역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다음으로는 이웃 지역인 대한민국과의 교류도 있었는데, 근대 이전에는 한국을 통해 중국의 요리와 식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된 바가 있고,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고대 국가들, 특히 백제와 가야 그리고 남북국시대의 요리와 식문화가 고대 일본 요리의 형성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된장이 일본으로 전해져 미소(된장)이 되거나 고려의 불교 문화에 기반한 사찰음식과 다례가 일본의 사찰 요리와 다도에 영향을 주었고, 조선시대에는 소금과 두부 제조법과 도자기, 칠기 등 식기와 주방 도구의 제조법이 일본으로 건너간 장인들을 통해 전파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오뎅, 돈가스, 함박 스테이크, 스키야키, 우동,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덴푸라를 포함해 여러 일본식, 일본식+서양식 요리들이 한국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간식의 경우 일제강점기 동안 카스테라, 별사탕, 양갱, 국화빵, 붕어빵, 전병, 단팥빵, 화과자 등 일본식 간식이 소개되어 이후 한국식으로 현지화되어 퍼진 바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과 6.25 전쟁 이후에는 한국 업체들이 일본 업체들의 제품을 라이선스 받거나 카피해서 출시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양국에 한 발 씩 걸친 기업이었던 롯데가 한국 시장의 메이저 업체였기 때문에 과자, 빵, 아이스크림, 음료, 주류 등 시판 간식과 음료에서 일본의 것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1980년대까지는 고위층이 먹는 비싼 요리 취급이었던 일본식 초밥, 덮밥, 회, 전골 등의 요리들도 1990년대부터 크게 진전된 1인당 국민 소득 향상과 일본 대중문화 개방, 해외 여행 자유화 등의 영향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제과제빵 업계에서도 한때는 유럽, 미국과 함께 일본으로 유학한 기능인들이 많아 일본에서 제과제빵을 배워 온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일본 요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인기있는 외식 메뉴 중 하나로 꼽히며, 가정식으로도 미국 요리와 함께 외국 요리들 중 비교적 자주 접하는 요리로 꼽힌다.
일본 또한 근현대 시기에 한국 요리와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있는데, 한국의 고기구이 문화가 전파되면서 야키니쿠가 등장하여 인기있는 외식 메뉴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한반도 동남 해안 지역에서 기원한 한국 요리인 명란젓은 멘타이코라고 부르며 아예 일본의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기도 했다.[5]
한때 한국에서는 일본 요리는 양이 적어서 먹을 만한 게 아니라고 알려졌는데, 이는 사실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와 엔고의 영향이 컸다. 한국이 여행자유화가 이루어진 시점이 1989년부터인데, 이때가 한참 버블 경제의 절정이었기 때문에 음식의 고급화에 열을 올렸던 데다가[6] 1985년의 플라자 합의 이래 1990년대 중후반까지 일본 물가가 엔고의 여파로 인해[7] 세계적으로 비싸기로 악명이 높았었다.
한마디로 버블+엔고+고급화까지 겹쳐서 '고급적인 식사' 한 끼를 하는데 한국에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높은 가격을 요구했고, 그나마도 양이 성에 차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가성비는 찢어지게 비효율적이었고 양조차 많지 않으니[8] '가격만 비싸고 양이 적다.'는 이미지가 박힌 것이다.
다만 일본 또한 필연적으로 버블이 터지고 디플레이션과 불황에 처하면서 체면치레 따윌 할 여유가 없어져서 '가격이 높은 고급식'보다는 '어쨌든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식단'의 수요가 많아졌다. 그래서 야채 등 저렴한 고명을 가득 얹은 라멘이나 크기가 엄청난 돈가스 등 속칭 '폭식계'라 불리는 메뉴들이 유행했고, 심지어 이마저도 비싸다 여겨 편의점 도시락 같은 즉석식품에 눈을 돌릴 정도였다.[9] 이렇게 경제불황 및 적당한 가격의 식재료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면서 물가도 어느 정도 내려가는 효과를 보기도 했고 이런 '대중적인 식사에 대한 인식'은 현재까지도 큰 차이 없이 내려오고 있다. 소바나 우동 같은 원래도 저가 음식이었던 것들은 아예 한국의 양푼비빔밥처럼 대야(다라이)에 담아다 파는 어마무시한 양으로 승부하는 메뉴까지 나왔다.
아이러니한 건 정작 요즘엔 한국이 일본과 정반대로 외식 분야에서 저렴하고 양 많은 식사에서 비싸고 고급스러운 소식 문화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중요리 쪽에서도 지대(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 브랜드화, 식자재 물가의 급격한 상승, 식재료 전처리 시장의 상대적인 미흡함 그리고 인건비 상승 등으로 물가가 대폭 상승하면서 오히려 몇몇 경우에는 일본에서 먹는 게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양도 많고 저렴하기까지한 상황까지 생겼다.
일단 이 문서 안에 내용이 섞여있기는 하지만, 오키나와 요리는 본토 일본 요리와 따로 발전한 역사가 길고 지금도 차이가 꽤 있어서 구분하기도 한다.
2015년 6월부터 일본의 식재료/식료품 분야에서의 지리적 표시제가 시작되었다. 자세한 것은 지리적 표시제/일본 문서로.
한국 요리만큼 일본 요리에도 '산 사이'[10]나 '오히타시' 등으로 먹을 수 있는 식물 부위를 최대한 활용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두릅(다라노메)은 물론이고 유채꽃이 핀 채로 무쳐먹는 나노하나즈케(菜の花漬け), 머위 꽃봉오리를 튀긴 후키노토(フキノトウ) 덴푸라, 벚꽃 소금절임(시오즈케)과 같은 음식이 일상적인 수준이다.
한국에 비하면 식사에서 국물 음식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다 정확히는 공기에 담아내는 '국'에 있어서는 한국 못지않게 정성을 들이고 또 집착하지만, 오래오래 고아내는 '탕'은 일상식에서 비중이 적은 편이다. 라멘이 인기 있는 이유도 저런 진한 국물을 원하는 수요를 충족시키는 통로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2010년도 이후 서구권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요리 문화다. 일본 만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이 미국에도 탄탄한 팬층을 소지하고 있고 이들이 크면서 청년 및 세금을 버는 노동자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유튜버들은 이들이 좋아하던 만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던 요리를 그대로 재현하거나 아니면 그 요리의 모티브가 된 요리를 하는 콘텐츠를 삼은 요리 관련 유튜버들은 거의 필수적으로 일본 요리를 재현하는 편이고 2020년대에는 엔저효과까지 겹치면서 일본에 관광가서 맛집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편인데. 이들의 활동이 간접적인 홍보 효과를 일으켜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도 증진과 함께 일본 요리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일본 관광객 중 서구 문화권 관광객들의 비중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주로 블로그나 주변인들의 조언을 토대로 관광 정보를 탐색하는 한국과는 달리, 서구권에서는 주로 유튜브를 통해 관광 정보를 얻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 및 음식과 관련된 유튜버들을 구독하고 그들이 업로드한 영상물로 정보를 찾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 음식 및 문화에 대한 정보를 자주 접하게 되어 관심과 호감을 쌓는 것이다.
게다가 뜨겁고 맵고 자극적인 한식 요리[11]보다 날생선 요리나 돈코츠 라멘[12], 숙성 요리만 아니라면 그렇게 자극적인 요소가 없어서 매운맛이 익숙지 않은 서구권에서도 받아들이기가 매우 쉽다.[13] 일본 음식이 한국보다 짜다는 인식이 많지만 서구권 국가 중 미국은 일본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 짠 음식도 있고 더 기름진 음식도 있기에 덴푸라와 같은 튀김 음식도 고소하고 덜 기름지다며 먹는 사람들이다. 정작 한국 요리를 접해본 외국인들의 평에 의하면 한국 요리가 다른 나라들 요리에 비해서도 유난히 짠 맛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유럽을 포함한 구미권 국가에서는 '아시아' 하면 생각나는 요리로 태국 요리와 함께 일본 요리가 꼽힐 정도로 유명한 편이다. 사실 숫자로면 보면 중국 요리가 압도적으로 많으나, 중식은 워낙 현지화가 되어서 이국적인 이미지는 많이 옅어진 편이다. 그에 비해 일식은 아직은 색다른 이미지가 있고 먹으면 건강해지는 고급 요리 같은 이미지가 있다.
일본 요리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현재에 있어 중국 요리의 영향은 동중국해와 한반도라는 지리적 완충지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의 요리들이 일본 요리에 준 영향과도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매우 강력하다. 일본 요리에 대해 소개하는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일본 요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는 한국 요리, 미국 요리, 프랑스 요리의 영향은 간단하게 언급되는 정도이거나 아예 언급조차 안 되나, 중국 요리의 영향에 대해서는 문서 내 각 항목에서 한두 번씩은 꼭 다룰 정도이다. 볶음, 찜, 튀김, 증류, 국수, 만두, 간장, 밀, 차 등 다양한 요리법들과 식자재 가공법들 그리고 작물들이 한반도를 통해 혹은 양 지역의 직접 교류를 통해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근현대 시기에는 일본 요리가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 지역의 요리에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한데, 대표적으로 중국의 경우 훠궈가 형태적으로 일본의 샤브샤브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있고, 2010년대부터는 중국의 일인당 경제력이 크게 향상되며 해외 미식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는데, 이에 따라 중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초밥, 회, 와규 등 일본 요리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외에도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한 중국, 대한민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경우에도 일본 요리가 자주 알려진다. 반대로 산초와 고추를 이용한 중국식의 매콤한 맛과 다양한 중국식 고기 요리가 오늘날 일본의 대도시 지역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다음으로는 이웃 지역인 대한민국과의 교류도 있었는데, 근대 이전에는 한국을 통해 중국의 요리와 식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된 바가 있고,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고대 국가들, 특히 백제와 가야 그리고 남북국시대의 요리와 식문화가 고대 일본 요리의 형성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된장이 일본으로 전해져 미소(된장)이 되거나 고려의 불교 문화에 기반한 사찰음식과 다례가 일본의 사찰 요리와 다도에 영향을 주었고, 조선시대에는 소금과 두부 제조법과 도자기, 칠기 등 식기와 주방 도구의 제조법이 일본으로 건너간 장인들을 통해 전파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오뎅, 돈가스, 함박 스테이크, 스키야키, 우동,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덴푸라를 포함해 여러 일본식, 일본식+서양식 요리들이 한국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간식의 경우 일제강점기 동안 카스테라, 별사탕, 양갱, 국화빵, 붕어빵, 전병, 단팥빵, 화과자 등 일본식 간식이 소개되어 이후 한국식으로 현지화되어 퍼진 바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과 6.25 전쟁 이후에는 한국 업체들이 일본 업체들의 제품을 라이선스 받거나 카피해서 출시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양국에 한 발 씩 걸친 기업이었던 롯데가 한국 시장의 메이저 업체였기 때문에 과자, 빵, 아이스크림, 음료, 주류 등 시판 간식과 음료에서 일본의 것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1980년대까지는 고위층이 먹는 비싼 요리 취급이었던 일본식 초밥, 덮밥, 회, 전골 등의 요리들도 1990년대부터 크게 진전된 1인당 국민 소득 향상과 일본 대중문화 개방, 해외 여행 자유화 등의 영향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제과제빵 업계에서도 한때는 유럽, 미국과 함께 일본으로 유학한 기능인들이 많아 일본에서 제과제빵을 배워 온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일본 요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인기있는 외식 메뉴 중 하나로 꼽히며, 가정식으로도 미국 요리와 함께 외국 요리들 중 비교적 자주 접하는 요리로 꼽힌다.
일본 또한 근현대 시기에 한국 요리와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있는데, 한국의 고기구이 문화가 전파되면서 야키니쿠가 등장하여 인기있는 외식 메뉴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한반도 동남 해안 지역에서 기원한 한국 요리인 명란젓은 멘타이코라고 부르며 아예 일본의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기도 했다.[5]
한때 한국에서는 일본 요리는 양이 적어서 먹을 만한 게 아니라고 알려졌는데, 이는 사실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와 엔고의 영향이 컸다. 한국이 여행자유화가 이루어진 시점이 1989년부터인데, 이때가 한참 버블 경제의 절정이었기 때문에 음식의 고급화에 열을 올렸던 데다가[6] 1985년의 플라자 합의 이래 1990년대 중후반까지 일본 물가가 엔고의 여파로 인해[7] 세계적으로 비싸기로 악명이 높았었다.
한마디로 버블+엔고+고급화까지 겹쳐서 '고급적인 식사' 한 끼를 하는데 한국에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높은 가격을 요구했고, 그나마도 양이 성에 차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가성비는 찢어지게 비효율적이었고 양조차 많지 않으니[8] '가격만 비싸고 양이 적다.'는 이미지가 박힌 것이다.
다만 일본 또한 필연적으로 버블이 터지고 디플레이션과 불황에 처하면서 체면치레 따윌 할 여유가 없어져서 '가격이 높은 고급식'보다는 '어쨌든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식단'의 수요가 많아졌다. 그래서 야채 등 저렴한 고명을 가득 얹은 라멘이나 크기가 엄청난 돈가스 등 속칭 '폭식계'라 불리는 메뉴들이 유행했고, 심지어 이마저도 비싸다 여겨 편의점 도시락 같은 즉석식품에 눈을 돌릴 정도였다.[9] 이렇게 경제불황 및 적당한 가격의 식재료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면서 물가도 어느 정도 내려가는 효과를 보기도 했고 이런 '대중적인 식사에 대한 인식'은 현재까지도 큰 차이 없이 내려오고 있다. 소바나 우동 같은 원래도 저가 음식이었던 것들은 아예 한국의 양푼비빔밥처럼 대야(다라이)에 담아다 파는 어마무시한 양으로 승부하는 메뉴까지 나왔다.
아이러니한 건 정작 요즘엔 한국이 일본과 정반대로 외식 분야에서 저렴하고 양 많은 식사에서 비싸고 고급스러운 소식 문화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중요리 쪽에서도 지대(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 브랜드화, 식자재 물가의 급격한 상승, 식재료 전처리 시장의 상대적인 미흡함 그리고 인건비 상승 등으로 물가가 대폭 상승하면서 오히려 몇몇 경우에는 일본에서 먹는 게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양도 많고 저렴하기까지한 상황까지 생겼다.
일단 이 문서 안에 내용이 섞여있기는 하지만, 오키나와 요리는 본토 일본 요리와 따로 발전한 역사가 길고 지금도 차이가 꽤 있어서 구분하기도 한다.
2015년 6월부터 일본의 식재료/식료품 분야에서의 지리적 표시제가 시작되었다. 자세한 것은 지리적 표시제/일본 문서로.
한국 요리만큼 일본 요리에도 '산 사이'[10]나 '오히타시' 등으로 먹을 수 있는 식물 부위를 최대한 활용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두릅(다라노메)은 물론이고 유채꽃이 핀 채로 무쳐먹는 나노하나즈케(菜の花漬け), 머위 꽃봉오리를 튀긴 후키노토(フキノトウ) 덴푸라, 벚꽃 소금절임(시오즈케)과 같은 음식이 일상적인 수준이다.
한국에 비하면 식사에서 국물 음식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다 정확히는 공기에 담아내는 '국'에 있어서는 한국 못지않게 정성을 들이고 또 집착하지만, 오래오래 고아내는 '탕'은 일상식에서 비중이 적은 편이다. 라멘이 인기 있는 이유도 저런 진한 국물을 원하는 수요를 충족시키는 통로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2010년도 이후 서구권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요리 문화다. 일본 만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이 미국에도 탄탄한 팬층을 소지하고 있고 이들이 크면서 청년 및 세금을 버는 노동자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유튜버들은 이들이 좋아하던 만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던 요리를 그대로 재현하거나 아니면 그 요리의 모티브가 된 요리를 하는 콘텐츠를 삼은 요리 관련 유튜버들은 거의 필수적으로 일본 요리를 재현하는 편이고 2020년대에는 엔저효과까지 겹치면서 일본에 관광가서 맛집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편인데. 이들의 활동이 간접적인 홍보 효과를 일으켜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도 증진과 함께 일본 요리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일본 관광객 중 서구 문화권 관광객들의 비중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주로 블로그나 주변인들의 조언을 토대로 관광 정보를 탐색하는 한국과는 달리, 서구권에서는 주로 유튜브를 통해 관광 정보를 얻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 및 음식과 관련된 유튜버들을 구독하고 그들이 업로드한 영상물로 정보를 찾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 음식 및 문화에 대한 정보를 자주 접하게 되어 관심과 호감을 쌓는 것이다.
게다가 뜨겁고 맵고 자극적인 한식 요리[11]보다 날생선 요리나 돈코츠 라멘[12], 숙성 요리만 아니라면 그렇게 자극적인 요소가 없어서 매운맛이 익숙지 않은 서구권에서도 받아들이기가 매우 쉽다.[13] 일본 음식이 한국보다 짜다는 인식이 많지만 서구권 국가 중 미국은 일본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 짠 음식도 있고 더 기름진 음식도 있기에 덴푸라와 같은 튀김 음식도 고소하고 덜 기름지다며 먹는 사람들이다. 정작 한국 요리를 접해본 외국인들의 평에 의하면 한국 요리가 다른 나라들 요리에 비해서도 유난히 짠 맛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조선일보> [일사일언] 일본의 ‘쌀밥 중심주의’
<조선일보> [일사일언] 일본에서 밥 남겨도 괜찮은가요?
쌀밥이 대한민국과 일본과 강남(중국)의 공통된 주식이고 한국 또한 밥이라는 말이 식사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밥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특히 일본은 식사할 때 흰쌀밥이 반드시 있어야 할 정도로 흰쌀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지화된 외래요리에도 흰쌀밥이 곁들여져 나올 정도. 흰쌀밥에 대한 집착만큼은 밥심의 민족이라는 한국인조차 저리가라 할 정도다.
특히 중요한 점은 밥을 지을 때는 반드시 100% 백미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잡곡 섭취의 전통과 보릿고개 경험에 웰빙 열풍도 있고 해서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내오는 밥에 흑미나 보리/팥/완두/조가 좀 섞여있어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으며 오히려 흰쌀밥을 싱겁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14] 설령 검은 콩이나 호랑낭콩을 넣고 지어서 쓴맛이 나는 콩밥을 내온다 하더라도 평소 자신의 호불호에 관계없이 군말없이 먹는 게 예의인 반면[15], 일본에서는 손님에게는 무조건 100% 백미밥만 대접하는 것이 예의다.
이는 전통적으로 일본은 잡곡이나 현미가 매우 맛이 없는 환경이어서 술을 담글때 백미의 겉부분도 딱딱하다고 다 깎아내고 심만 남겨 담근 것을 최고로 칠 정도라 밥에 흰쌀 외에 다른 것이 들어가면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밥의 양을 불려먹으려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며 메이지유신 전까지 흰쌀밥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서민들은 보리나 조 등을 넣은 잡곡밥을 먹었고 잡곡비율이 너무 높은 나머지 그릇에 입을 대고 젓가락으로 훑어서 먹을 정도로 찰기가 부족했다. 일본인들은 '잡곡=가난=낮은 계급'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반찬으로 미소된장국과 구운 생선에 단무지, 혹은 반찬살 돈이 부족해서 단무지나 우메보시 하나만을 반찬삼더라도 밥은 반드시 흰쌀밥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제국 정부가 삼시세끼 흰쌀밥을 주겠다고 공언하자 일본군에 지원한 평민 출신 사병들도 똑같이 가지고 있었고, 각기병이 발생하자 혼분식(현미 포함)을 추진하려하니 사병들이 거부하기까지 하여 제국 육군이 한동안 비타민 B1 부족으로 발생하는 각기병에 몸살을 앓는 원인[16]이 되기도 했다. 쌀밥을 국에 말거나 비벼먹지 않는 것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인데, '흰쌀이 부족하니까 양을 불려먹으려 하는 것은 격이 떨어진다'고 여겨지기 때문.
즉 일본식 쌀밥은 반찬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는 주식이어야 하는 것이며, 반찬은 배를 채우는 역할이 아니라 염분을 공급해 싱거워진 입맛을 돋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본에서 밥반찬으로 김이나 명란젓이 인기있는 이유다. 한국에 오래 살은 장년층들이 일본으로 놀러가 아무 식당에서 맨밥만 먹는데도 밥이 맛있다며 감탄하는 건 예삿일. 편의점에도 가면 속재료 없이 소금간만 한 주먹밥도 존재한다.
이러한 맛있는 쌀밥에 대한 일본인들의 강렬한 열망은 결국 쌀 품종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로 이어졌고, 맛있는 쌀품종들을 여럿 탄생시키는데 크게 공헌한다. 고시히카리가 대표적으로 일본을 넘어 아시아, 전세계에서 맛있는 쌀품종의 대표 품종중 하나로 인정받게 된다.
다만 이렇다보니 근대까지 각기병이 성행하던 국가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쌀을 중시하고 반찬을 덜 중시하는 식성 탓에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주로 각기병이 유행했던 것. 반면 잡곡에 거부감이 적고 반찬[17]도 많이 먹는 한국이나 밀도 쌀만큼 많이 먹는 중국에서는 비교적 각기병이 적었다.[18] 이런 흰쌀밥 사랑은 레이와 쌀 소동이라는 쌀 유통 대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서구화의 영향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세대는 쌀밥 지상주의에서 점차 탈피하고 있다. #
<조선일보> [일사일언] 일본에서 밥 남겨도 괜찮은가요?
쌀밥이 대한민국과 일본과 강남(중국)의 공통된 주식이고 한국 또한 밥이라는 말이 식사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밥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특히 일본은 식사할 때 흰쌀밥이 반드시 있어야 할 정도로 흰쌀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지화된 외래요리에도 흰쌀밥이 곁들여져 나올 정도. 흰쌀밥에 대한 집착만큼은 밥심의 민족이라는 한국인조차 저리가라 할 정도다.
특히 중요한 점은 밥을 지을 때는 반드시 100% 백미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잡곡 섭취의 전통과 보릿고개 경험에 웰빙 열풍도 있고 해서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내오는 밥에 흑미나 보리/팥/완두/조가 좀 섞여있어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으며 오히려 흰쌀밥을 싱겁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14] 설령 검은 콩이나 호랑낭콩을 넣고 지어서 쓴맛이 나는 콩밥을 내온다 하더라도 평소 자신의 호불호에 관계없이 군말없이 먹는 게 예의인 반면[15], 일본에서는 손님에게는 무조건 100% 백미밥만 대접하는 것이 예의다.
이는 전통적으로 일본은 잡곡이나 현미가 매우 맛이 없는 환경이어서 술을 담글때 백미의 겉부분도 딱딱하다고 다 깎아내고 심만 남겨 담근 것을 최고로 칠 정도라 밥에 흰쌀 외에 다른 것이 들어가면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밥의 양을 불려먹으려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며 메이지유신 전까지 흰쌀밥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서민들은 보리나 조 등을 넣은 잡곡밥을 먹었고 잡곡비율이 너무 높은 나머지 그릇에 입을 대고 젓가락으로 훑어서 먹을 정도로 찰기가 부족했다. 일본인들은 '잡곡=가난=낮은 계급'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반찬으로 미소된장국과 구운 생선에 단무지, 혹은 반찬살 돈이 부족해서 단무지나 우메보시 하나만을 반찬삼더라도 밥은 반드시 흰쌀밥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제국 정부가 삼시세끼 흰쌀밥을 주겠다고 공언하자 일본군에 지원한 평민 출신 사병들도 똑같이 가지고 있었고, 각기병이 발생하자 혼분식(현미 포함)을 추진하려하니 사병들이 거부하기까지 하여 제국 육군이 한동안 비타민 B1 부족으로 발생하는 각기병에 몸살을 앓는 원인[16]이 되기도 했다. 쌀밥을 국에 말거나 비벼먹지 않는 것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인데, '흰쌀이 부족하니까 양을 불려먹으려 하는 것은 격이 떨어진다'고 여겨지기 때문.
즉 일본식 쌀밥은 반찬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는 주식이어야 하는 것이며, 반찬은 배를 채우는 역할이 아니라 염분을 공급해 싱거워진 입맛을 돋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본에서 밥반찬으로 김이나 명란젓이 인기있는 이유다. 한국에 오래 살은 장년층들이 일본으로 놀러가 아무 식당에서 맨밥만 먹는데도 밥이 맛있다며 감탄하는 건 예삿일. 편의점에도 가면 속재료 없이 소금간만 한 주먹밥도 존재한다.
이러한 맛있는 쌀밥에 대한 일본인들의 강렬한 열망은 결국 쌀 품종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로 이어졌고, 맛있는 쌀품종들을 여럿 탄생시키는데 크게 공헌한다. 고시히카리가 대표적으로 일본을 넘어 아시아, 전세계에서 맛있는 쌀품종의 대표 품종중 하나로 인정받게 된다.
다만 이렇다보니 근대까지 각기병이 성행하던 국가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쌀을 중시하고 반찬을 덜 중시하는 식성 탓에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주로 각기병이 유행했던 것. 반면 잡곡에 거부감이 적고 반찬[17]도 많이 먹는 한국이나 밀도 쌀만큼 많이 먹는 중국에서는 비교적 각기병이 적었다.[18] 이런 흰쌀밥 사랑은 레이와 쌀 소동이라는 쌀 유통 대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서구화의 영향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세대는 쌀밥 지상주의에서 점차 탈피하고 있다. #
일본 요리는 '필요 최소 한도의 조리'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좋은 재료일수록 최소한만 손대서 재료 본연의 맛을 맛보게 하고, 손이 많이 가해진 요리는 재료의 떨어진 품질을 만회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보는 인식이 강하다. 즉 최대한 좋은 재료를 최대한 적게 손질하는 것이 일본 요리가 지향하는 정점이다. 이 때문에 재료에 간은커녕 열 자체를 가하지 않는 요리도 많을 정도로 조리법이 간소화되었다. 절대 날로 먹는 재료가 없고 다종다양한 방법으로 정성과 시간을 투자하는 중국 요리와는 완전히 정반대다.[19][20] 이는 다시 '손을 가해야 맛있어지는 식재료'보다 '손을 가하지 않을수록 맛있는 식재료'에 집착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오늘날 고급 일본 요리는 요리사에게 '새로운 맛을 발견/발명해내는' 능력보다는 '재료의 맛을 보존, 극대화하는' 기교를 요구한다. 일본 요리사는 재료 본래의 맛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먹기 좋은 상태로 내놓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만 고온다습한 기후 특성상 완전한 날음식을 먹는 문화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21] 나레즈시처럼 삭히던가 혹은 시메사바처럼 식초에 절이거나 양념해서[22] 먹는 것에 가깝다. 식중독을 대한민국, 중국이 열을 가하여 피했다면 일본은 식초로 절여서 피했다고 보면 된다.[23]
이 문제는 사실 식재보다는 요리를 하는 공간, 즉 일본의 주거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 열도의 전통적 주택은 목조(木造) 건물이기 때문이다.[24] 일본 열도는 항시 지진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해양성 기후인 탓에 언제나 여름에 습기관리에 문제가 있는 만큼 건축재로 흙, 돌보다는 나무를 주로 선택했으며 지진 대비때문에라도 집을 크고 무겁게 지을 수 없어 가벼운 목조주택이 서민들의 주거기준인데, 그 대가로 사소한 화기 실수로도 집 전체, 한번 바람 잘못하면 금방 옮겨붙어 여러 집이 연이어 불탈수 있는 대형 재해로 폭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집에서 불을 쓰기 어려운 주거환경이 정립되었다.[25] 실제로 한국에선 다세대나 연립주택 수준인 일본의 아파트, 2층짜리 서민, 저소득층형 목조주택은 집 안에서 담뱃불도 함부로 붙이기 어려울만큼 화기 관리에 엄격하다. 이런 목조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에 화재가 크게 터지면 소방수들이 화재의 진화보다는 멀쩡한 집이 타기 전에 때려부셔서 확산을 막는데 우선 주력할 정도로 한번 화재나면 도시의 1/3이 기본으로 타버린다는 전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정반대로 대한민국과 북중국에서는 일본만큼 지진에 민감하지 않아도 되었고, 겨울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칼바람 때문에 단열이 더 중요했던 고로 진흙, 벽돌 등 불연성 재료로 집을 짓는 경우가 흔하므로[26] 가옥 내에서 불 사용이 굉장히 자유로웠으며 뜨거운 음식을 선호하는 문화가 나왔다.[27] 이 때문에 일본 요리는 젓가락으로만 먹는 것이 주이고[28], 숟가락 사용은 근대 이후에서나 이뤄지기 시작하다 보니 고유의 숟가락이 없고 탕츠(汤匙)나 서양식 스푼을 쓴다.
오늘날 고급 일본 요리는 요리사에게 '새로운 맛을 발견/발명해내는' 능력보다는 '재료의 맛을 보존, 극대화하는' 기교를 요구한다. 일본 요리사는 재료 본래의 맛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먹기 좋은 상태로 내놓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만 고온다습한 기후 특성상 완전한 날음식을 먹는 문화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21] 나레즈시처럼 삭히던가 혹은 시메사바처럼 식초에 절이거나 양념해서[22] 먹는 것에 가깝다. 식중독을 대한민국, 중국이 열을 가하여 피했다면 일본은 식초로 절여서 피했다고 보면 된다.[23]
이 문제는 사실 식재보다는 요리를 하는 공간, 즉 일본의 주거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 열도의 전통적 주택은 목조(木造) 건물이기 때문이다.[24] 일본 열도는 항시 지진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해양성 기후인 탓에 언제나 여름에 습기관리에 문제가 있는 만큼 건축재로 흙, 돌보다는 나무를 주로 선택했으며 지진 대비때문에라도 집을 크고 무겁게 지을 수 없어 가벼운 목조주택이 서민들의 주거기준인데, 그 대가로 사소한 화기 실수로도 집 전체, 한번 바람 잘못하면 금방 옮겨붙어 여러 집이 연이어 불탈수 있는 대형 재해로 폭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집에서 불을 쓰기 어려운 주거환경이 정립되었다.[25] 실제로 한국에선 다세대나 연립주택 수준인 일본의 아파트, 2층짜리 서민, 저소득층형 목조주택은 집 안에서 담뱃불도 함부로 붙이기 어려울만큼 화기 관리에 엄격하다. 이런 목조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에 화재가 크게 터지면 소방수들이 화재의 진화보다는 멀쩡한 집이 타기 전에 때려부셔서 확산을 막는데 우선 주력할 정도로 한번 화재나면 도시의 1/3이 기본으로 타버린다는 전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정반대로 대한민국과 북중국에서는 일본만큼 지진에 민감하지 않아도 되었고, 겨울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칼바람 때문에 단열이 더 중요했던 고로 진흙, 벽돌 등 불연성 재료로 집을 짓는 경우가 흔하므로[26] 가옥 내에서 불 사용이 굉장히 자유로웠으며 뜨거운 음식을 선호하는 문화가 나왔다.[27] 이 때문에 일본 요리는 젓가락으로만 먹는 것이 주이고[28], 숟가락 사용은 근대 이후에서나 이뤄지기 시작하다 보니 고유의 숟가락이 없고 탕츠(汤匙)나 서양식 스푼을 쓴다.
사시미, 스시에서부터 규동 위의 생 계란 토핑까지 원재료의 맛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날것으로 먹는 음식들이 많다. 때문에 비린내 나는 생선, 낫토, 날계란 등 향과 식감에서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조차 음식이라며 그대로 내는 일이 많으며, 실제 신선도와 상관 없이 외국인 입장에서는 매우 비위생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일본에선 낫토·날계란·간 마[29]·성게 내장·오크라 같은 식재료의 미끌거리고 걸죽한 식감을 네바네바(ネバネバ)라고 해서 매우 좋아하는데, 이런 식감을 좋아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과거에는 이것이 일식이 해외로 진출하는 데 엄청난 방해 요소였고(과거에 날계란이 듬뿍 담긴 일식을 처음 접한 한 외국인은 '가래를 먹는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일식에서 유래한 계란밥은 동아시아인 차별의 의미로까지 쓰인다. # 현대에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일식당에선 조리법 문제가 곧 매출과 이어지므로 이러한 요소를 제거하고 있다.[30]
찬 음식, 날 음식을 좋아하는 습성은 당연하게도 식중독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일본은 경제대국치고는 식중독 사고가 많은 편이다. 미국에서 식중독 사고 원인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는 날계란은 살모넬라균 위험이 있으며, 날 해산물에도 비브리오균이나 독성이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살모넬라균 때문에 보통 익혀서 먹는 닭고기도 날로 회를 떠서 먹으며[31] 그외에도 생으로 먹으면 위험한 간도 '리버사시'(レバ刺し)라 해서 종종 생으로 먹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이 향신료로 와사비를 선호한 이유도 식중독을 막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일본에서는 생식 수요가 워낙 많다보니 이웃한 한국의 육회, 간장게장 등을 먹고자 아예 식도락 여행을 오기까지 한다.
이 외에도 날생선을 먹으니 생선요리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데다가 주위가 전부 바다인 열도 + 요산이 풍부한 등푸른 생선이 많이 서식하는 태평양 이 3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데다가 과도한 나트륨, 2차대전 이후 곱창을 비롯한 고지방 요리, 일본 술들이 겹치면서 중풍과 통풍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찬 음식, 날 음식을 좋아하는 습성은 당연하게도 식중독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일본은 경제대국치고는 식중독 사고가 많은 편이다. 미국에서 식중독 사고 원인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는 날계란은 살모넬라균 위험이 있으며, 날 해산물에도 비브리오균이나 독성이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살모넬라균 때문에 보통 익혀서 먹는 닭고기도 날로 회를 떠서 먹으며[31] 그외에도 생으로 먹으면 위험한 간도 '리버사시'(レバ刺し)라 해서 종종 생으로 먹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이 향신료로 와사비를 선호한 이유도 식중독을 막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일본에서는 생식 수요가 워낙 많다보니 이웃한 한국의 육회, 간장게장 등을 먹고자 아예 식도락 여행을 오기까지 한다.
이 외에도 날생선을 먹으니 생선요리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데다가 주위가 전부 바다인 열도 + 요산이 풍부한 등푸른 생선이 많이 서식하는 태평양 이 3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데다가 과도한 나트륨, 2차대전 이후 곱창을 비롯한 고지방 요리, 일본 술들이 겹치면서 중풍과 통풍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맛의 보존을 강조하는 일식의 특성상 맛있는 음식은 필히 '양질의 재료'를 쓰지 않으면 안 되고, 이런 방식이 결국 '맛있는 일식=비싼 재료'라는 등식을 성립시킨다.[32] 즉, 맛있는 일식을 먹고 싶으면 비싼 돈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한식은 '손맛', 중식은 '불맛', 양식은 소스, 인도 요리는 향신료라는 인식과 정반대라 할 수 있다. 요리사의 기량에 따라 갖은 양념과 조리법을 통해 재료의 부족함을 커버할 수 있는 한식/양식과 달리, 일식은 재료가 음식 맛을 크게 좌우한다.
일본의 고급 음식점은 'xxx산 쇠고기'나 'xxx산 채소' 등 특정 지역 특산물을 사용하였다는 문구가 많으며, 실제로 이런 특산물이 잘 발달되었다. 물론 가격도 일반 재료의 배 이상 비싸다. 이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재배하고 또 조리하는 방법으로 인해 일본 요리는 같은 요리라 하더라도 가격 편차가 엄청나게 난다. 심지어 포도 1송이가 1,250만 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도 버젓이 생산되고 유통될 정도로# 재료를 유달리 중요하게 본다.
일본의 고급 음식점은 'xxx산 쇠고기'나 'xxx산 채소' 등 특정 지역 특산물을 사용하였다는 문구가 많으며, 실제로 이런 특산물이 잘 발달되었다. 물론 가격도 일반 재료의 배 이상 비싸다. 이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재배하고 또 조리하는 방법으로 인해 일본 요리는 같은 요리라 하더라도 가격 편차가 엄청나게 난다. 심지어 포도 1송이가 1,250만 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도 버젓이 생산되고 유통될 정도로# 재료를 유달리 중요하게 본다.
일본의 전통 음식 문화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승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육식을 금지한다는 칙령을 오래도록 반포해와서[33] 근현대 이전에는 육류 요리가 어류와 가금류에 집중되어 있고 다른 육류 요리는 타국에 비해 발달이 정체된 편이었다. 게다가 전통 신앙인 신토까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종교 행사와 의례에서 야생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줄어들었으며 도축은 생명을 해치고 피를 뿌린다는 이유로 부정타는 행위로 간주하고 중요한 성지와 신사에서 사냥을 금지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육식 문화는 계속 유지되었다. 일본에서 육식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수십 년을 이어져 온 낭설이자, 적폐이며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소비량이 극히 적은 현상을 갖고 채식을 했다고 사실을 왜곡한 일이다. 애초에 한국, 중국 만큼 중앙집권화가 이뤄지지 않고 지방분권화의 역사가 훨씬 더 긴 일본에서 고작 조정과 막부에서 칙령 하나 반포했다고 열도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육식을 금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건 오산이다. 게다가 조정은 막부가 세워지면서 힘을 잃었고, 막부도 전국 시대가 도래하면서 무력해졌다. 그래서 전국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는 육식 금지령을 강제할 공적 권위가 형해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시대보다 육류 소비량이 늘어나고 육류 시장과 상점까지 활성화된 판이었다.
현실적으로도 조정과 막부가 금지령을 내리고 일본의 지배층인 공가들이 채식과 쌀 취식을 고풍스러운 귀족 문화로, 육식을 저급하고 부정타는 악습으로 간주했다고 해서 하루 하루 먹고 살기 힘든 서민들이 그에 완전히 감화되어 육식을 아예 중단했다고 바라보는 것은 비상식적인 판단이다. 가뭄과 태풍, 지진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기근이 터지면 식인까지 하는 게 인간인데 눈 앞에 영양분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어떻게든 확보하려 들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일 것이다.
덴무 천황의 육식 금지령도 일정 기간(4~9월) 동안 어렵 행위를 통제하고 육식을 금지하는 것이지, 완전하게 육식을 막는 게 아니었다. 육식 금지령에 돼지 취식이 빠진 것도 당대에 멧돼지와 사슴을 사냥하는 무사 계급과 멧돼지, 사슴을 제물로 바치는 신토를 배려해서였다. 1200년 동안 육식 금지령을 수십 번씩 반복해서 반포한 조정과 막부도 어류, 가금류, 계란의 취식은 대체로 허용했다. 통제가 심할 때는 가금류 취식도 금지하고 계란 취식까지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불교계의 설화까지 있지만, 이는 특수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의 가정에서는 오리나 닭 등을 사육하고 가능할 때마다 야생 조류나 토끼 등을 사냥하곤 했다.
소고기는 가장 통제가 강력한 육류로 메이지 유신 때 육류를 장려할 때도 대중적으로 가장 거부감이 큰 육류였지만, 일본 육식 문화의 소멸을 시도하던 공가들조차 아플 때 먹는 보양식 중에 최상품으로 인식하던 게 소고기였다. 그래서 채식을 자랑으로 여기던 공가들도 아프단 핑계로 소고기를 먹는 일이 있었으며 상인들이 소고기를 환약의 형태로 만들어 우육환이라 판매하기도 했다. [34]
쇠고기를 장기 보관하여 두고두고 먹기 위해 된장에 발라 나무통에 켜켜이 쌓아 절이는 방식의 장기 보관 음식도 있었다. 에도 시대에는 하코네 번에서 육우를 키워 쇼군에게 진상하는 의무를 부과받기도 했다. 돼지 고기는 도래인들이 돼지를 사육했다는 기록이 일본 서기에 나올 정도지만, 육식 금지령과 불교의 영향으로 인해 양돈 문화가 소멸하고 멧돼지 고기가 주류가 되었다. [35]
조정과 막부의 통제가 느슨한 산간 지방과 수도권에서 거리가 먼 지역에서는 사냥꾼들이나 일반 주민들이 동물을 사냥하고, 돼지를 키우기도 했다. 전근대 일본에서 돼지 사육으로 유명한 곳은 에도 막부 초에 나가사키를 시작으로 중국산 돼지가 도입된 규슈 지역이었다. 특히 향토 요리인 돼지고기 된장조림 '돈코츠'로 유명한 가고시마에서는 집집마다 흑돼지를 사육하고 돼지 고기를 먹어 혼슈를 비롯한 타 지역 주민들이 기이하게 여길 정도였다. 이밖에도 치바현, 카나가와현, 사이타마현, 홋카이도, 이바라키현 등 여러 지역에서 에도 시대부터 돼지 사육을 시작했다. [36]
오키나와는 천황과 쇼군이 아닌 류큐 왕국이 지배했고, 홋카이도는 행정력이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으므로 육식 금지령의 통제를 받지 않아서 다양한 육류를 섭취했다. 오키나와에서는 돼지와 염소를 사육했고, 홋카이도의 아이누족들은 추운 기후 때문에 식량의 상당 부분을 사냥으로 확보했고 열량 보충에 중요한 사슴과 각종 야생 동물 고기들이 중요한 음식이었다.
막부 시대 이래로 일본을 지배한 무사들은 금지령을 무시하고 마음껏 사냥을 하며 멧돼지와 사슴 고기를 먹었다. 공가나 불교계에서 비난하거나 막부에서 강도 높은 금지령을 반포하면 약을 구하기 위한 약렵이라거나 군사 훈련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냥을 강행했다. 물론, 공가 문화의 영향을 받은 막부에서도 육식 금지령을 반포하긴 했지만, 그 강도와 통제는 조정의 것보다 훨씬 완화된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12간지 동물의 돼지(亥)를 멧돼지로 표현하고 있다.
해산물은 육식 금지령의 통제에서 거의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주었고 해양 국가라는 특성까지 겹쳐 현재 일본 요리를 대표하는 음식들은 해산물이 많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어렵 문화가 계속 이어진 덕에 고래, 돌고래나 바다사자 등 해양 포유류도 사냥해 먹었다. 일본의 식문화가 크게 융성한 무로마치 시대에도 어류와 가금류 고기는 고급 요리로 인식하고 야생 동물 고기는 하품으로 인식하는 풍조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 가이세키 요리에도 자라(수폰) 요리와 오리고기(카모)가 많이 나오며 소바에도 오리 고기 육수가 자주 쓰인다. 에도 시대 초에 출현한 요리 서적인 요리물어에도 굉장히 다양한 야생 조류 요리, 미즈타키나 야키토리 같은 닭 요리, 오리, 사슴, 토끼, 멧돼지 요리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계란을 활용한 요리들도 기재되어 있다. [37]
일본 요리 특유의 계절감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작용했다는 설이 있다. 소, 돼지 등의 가축은 사시사철 식용할 수 있지만 생선, 채소, 야생 동물은 모두 계절을 타는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생선만 해도 잘 잡히는 철이 있고 맛이 드는 철이 따로 있으며, 야생 오리 같은 철새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식탁의 구성이 변화하는' 계절감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하지만, 일본에서 육식 문화는 계속 유지되었다. 일본에서 육식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수십 년을 이어져 온 낭설이자, 적폐이며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소비량이 극히 적은 현상을 갖고 채식을 했다고 사실을 왜곡한 일이다. 애초에 한국, 중국 만큼 중앙집권화가 이뤄지지 않고 지방분권화의 역사가 훨씬 더 긴 일본에서 고작 조정과 막부에서 칙령 하나 반포했다고 열도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육식을 금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건 오산이다. 게다가 조정은 막부가 세워지면서 힘을 잃었고, 막부도 전국 시대가 도래하면서 무력해졌다. 그래서 전국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는 육식 금지령을 강제할 공적 권위가 형해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시대보다 육류 소비량이 늘어나고 육류 시장과 상점까지 활성화된 판이었다.
현실적으로도 조정과 막부가 금지령을 내리고 일본의 지배층인 공가들이 채식과 쌀 취식을 고풍스러운 귀족 문화로, 육식을 저급하고 부정타는 악습으로 간주했다고 해서 하루 하루 먹고 살기 힘든 서민들이 그에 완전히 감화되어 육식을 아예 중단했다고 바라보는 것은 비상식적인 판단이다. 가뭄과 태풍, 지진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기근이 터지면 식인까지 하는 게 인간인데 눈 앞에 영양분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어떻게든 확보하려 들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일 것이다.
덴무 천황의 육식 금지령도 일정 기간(4~9월) 동안 어렵 행위를 통제하고 육식을 금지하는 것이지, 완전하게 육식을 막는 게 아니었다. 육식 금지령에 돼지 취식이 빠진 것도 당대에 멧돼지와 사슴을 사냥하는 무사 계급과 멧돼지, 사슴을 제물로 바치는 신토를 배려해서였다. 1200년 동안 육식 금지령을 수십 번씩 반복해서 반포한 조정과 막부도 어류, 가금류, 계란의 취식은 대체로 허용했다. 통제가 심할 때는 가금류 취식도 금지하고 계란 취식까지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불교계의 설화까지 있지만, 이는 특수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의 가정에서는 오리나 닭 등을 사육하고 가능할 때마다 야생 조류나 토끼 등을 사냥하곤 했다.
소고기는 가장 통제가 강력한 육류로 메이지 유신 때 육류를 장려할 때도 대중적으로 가장 거부감이 큰 육류였지만, 일본 육식 문화의 소멸을 시도하던 공가들조차 아플 때 먹는 보양식 중에 최상품으로 인식하던 게 소고기였다. 그래서 채식을 자랑으로 여기던 공가들도 아프단 핑계로 소고기를 먹는 일이 있었으며 상인들이 소고기를 환약의 형태로 만들어 우육환이라 판매하기도 했다. [34]
쇠고기를 장기 보관하여 두고두고 먹기 위해 된장에 발라 나무통에 켜켜이 쌓아 절이는 방식의 장기 보관 음식도 있었다. 에도 시대에는 하코네 번에서 육우를 키워 쇼군에게 진상하는 의무를 부과받기도 했다. 돼지 고기는 도래인들이 돼지를 사육했다는 기록이 일본 서기에 나올 정도지만, 육식 금지령과 불교의 영향으로 인해 양돈 문화가 소멸하고 멧돼지 고기가 주류가 되었다. [35]
조정과 막부의 통제가 느슨한 산간 지방과 수도권에서 거리가 먼 지역에서는 사냥꾼들이나 일반 주민들이 동물을 사냥하고, 돼지를 키우기도 했다. 전근대 일본에서 돼지 사육으로 유명한 곳은 에도 막부 초에 나가사키를 시작으로 중국산 돼지가 도입된 규슈 지역이었다. 특히 향토 요리인 돼지고기 된장조림 '돈코츠'로 유명한 가고시마에서는 집집마다 흑돼지를 사육하고 돼지 고기를 먹어 혼슈를 비롯한 타 지역 주민들이 기이하게 여길 정도였다. 이밖에도 치바현, 카나가와현, 사이타마현, 홋카이도, 이바라키현 등 여러 지역에서 에도 시대부터 돼지 사육을 시작했다. [36]
오키나와는 천황과 쇼군이 아닌 류큐 왕국이 지배했고, 홋카이도는 행정력이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으므로 육식 금지령의 통제를 받지 않아서 다양한 육류를 섭취했다. 오키나와에서는 돼지와 염소를 사육했고, 홋카이도의 아이누족들은 추운 기후 때문에 식량의 상당 부분을 사냥으로 확보했고 열량 보충에 중요한 사슴과 각종 야생 동물 고기들이 중요한 음식이었다.
막부 시대 이래로 일본을 지배한 무사들은 금지령을 무시하고 마음껏 사냥을 하며 멧돼지와 사슴 고기를 먹었다. 공가나 불교계에서 비난하거나 막부에서 강도 높은 금지령을 반포하면 약을 구하기 위한 약렵이라거나 군사 훈련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냥을 강행했다. 물론, 공가 문화의 영향을 받은 막부에서도 육식 금지령을 반포하긴 했지만, 그 강도와 통제는 조정의 것보다 훨씬 완화된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12간지 동물의 돼지(亥)를 멧돼지로 표현하고 있다.
해산물은 육식 금지령의 통제에서 거의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주었고 해양 국가라는 특성까지 겹쳐 현재 일본 요리를 대표하는 음식들은 해산물이 많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어렵 문화가 계속 이어진 덕에 고래, 돌고래나 바다사자 등 해양 포유류도 사냥해 먹었다. 일본의 식문화가 크게 융성한 무로마치 시대에도 어류와 가금류 고기는 고급 요리로 인식하고 야생 동물 고기는 하품으로 인식하는 풍조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 가이세키 요리에도 자라(수폰) 요리와 오리고기(카모)가 많이 나오며 소바에도 오리 고기 육수가 자주 쓰인다. 에도 시대 초에 출현한 요리 서적인 요리물어에도 굉장히 다양한 야생 조류 요리, 미즈타키나 야키토리 같은 닭 요리, 오리, 사슴, 토끼, 멧돼지 요리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계란을 활용한 요리들도 기재되어 있다. [37]
일본 요리 특유의 계절감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작용했다는 설이 있다. 소, 돼지 등의 가축은 사시사철 식용할 수 있지만 생선, 채소, 야생 동물은 모두 계절을 타는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생선만 해도 잘 잡히는 철이 있고 맛이 드는 철이 따로 있으며, 야생 오리 같은 철새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식탁의 구성이 변화하는' 계절감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 『料理物語』를 통해 본 일본 식문화 연구-육식과 게가레 관념을 중심으로
- 일본의 육식문화와 부락 차별 연구
- 日本料理의 歷史와 食文化에 관한 文獻고찰
- 朝鮮通信使 接待·饗應料理 硏究:肉食料理를 中心으로
- https://jppa.biz/story/history/
메이지 유신 이후 육식 금지령은 철폐되었다. 오히려 유럽인들의 체격이 좋은 이유를 육식으로 보고 육식을 권장했다.[38] 그러나 당대 일본 서민들이 고기를 먹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고기를 구할 만큼 소득이 되지 않았고,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다 보니 고기가 있어도 어떻게 먹어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대표 고기요리들인 고기감자조림, 햄버그 스테이크, 돈카츠, 야키니쿠 등은 모두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요리가 근현대에 일본으로 전파되어 일본식으로 현지화된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지화 과정에서 야채가 많이 들어간다던가 음식양이 적어지거나 크기가 작아진다든가 하는 변화가 생겼다.
일본에서 대다수 국민들이 삼시 세끼 제대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의 일이었다. 서민들에게 경제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육류와 유제품의 생산 및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돈가스, 햄버그 스테이크, 카레라이스 등의 경양식도 이때에 들어서야 제대로 대중화가 되었다.[39] 한국식 고기구이 문화도 60년대에 재일교포들에 의해 야키니쿠로 알려져 70년대 이후 대중화되었고, 맥도날드도 1971년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대표적인 일본식 육식 메뉴인 돈까스의 변화에서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을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돈까스는 고기를 최대한 얇게 펴서 거기다 빵가루를 최대한 많이 묻힌, 최소한의 고기로 최대한의 포만감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었고, 이것이 오늘날 한국에도 경양식 돈까스로 잘 알려진 초기 돈까스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경제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고기가 점점 일반화되었고, 이에 따라 돼지고기의 양이 늘어나 현대의 일본식 돈까스가 탄생했다. 육류 소비량이 해산물 소비량을 능가한 2010년대 말 이후로는 스테이크 수준의 두툼한 고기를 돈까스로 튀겨내는 가게들도 있을 정도이다.
1960년에는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3.5kg였지만 불과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여 1975년에는 1인당 15kg를 돌파했으며, 1980년에는 20kg를 넘어서게 되었다.[40] 미국 식량농업국은 2017년 일본의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을 49.34kg으로 집계했다. 1인당 육류 소비량이 여러 이유로[41] 실제 인간이 먹는 육류 섭취량과 괴리가 있는 자료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일본인의 육류 소비량이 증가해왔다는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에는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어류 소비량을 제쳤을 정도로 육류를 많이 소비한다. 이를 증명하듯 길거리에서도 육류를 취급하는 식당이나 상점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일본에서 대다수 국민들이 삼시 세끼 제대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의 일이었다. 서민들에게 경제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육류와 유제품의 생산 및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돈가스, 햄버그 스테이크, 카레라이스 등의 경양식도 이때에 들어서야 제대로 대중화가 되었다.[39] 한국식 고기구이 문화도 60년대에 재일교포들에 의해 야키니쿠로 알려져 70년대 이후 대중화되었고, 맥도날드도 1971년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대표적인 일본식 육식 메뉴인 돈까스의 변화에서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을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돈까스는 고기를 최대한 얇게 펴서 거기다 빵가루를 최대한 많이 묻힌, 최소한의 고기로 최대한의 포만감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었고, 이것이 오늘날 한국에도 경양식 돈까스로 잘 알려진 초기 돈까스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경제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고기가 점점 일반화되었고, 이에 따라 돼지고기의 양이 늘어나 현대의 일본식 돈까스가 탄생했다. 육류 소비량이 해산물 소비량을 능가한 2010년대 말 이후로는 스테이크 수준의 두툼한 고기를 돈까스로 튀겨내는 가게들도 있을 정도이다.
1960년에는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3.5kg였지만 불과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여 1975년에는 1인당 15kg를 돌파했으며, 1980년에는 20kg를 넘어서게 되었다.[40] 미국 식량농업국은 2017년 일본의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을 49.34kg으로 집계했다. 1인당 육류 소비량이 여러 이유로[41] 실제 인간이 먹는 육류 섭취량과 괴리가 있는 자료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일본인의 육류 소비량이 증가해왔다는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에는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어류 소비량을 제쳤을 정도로 육류를 많이 소비한다. 이를 증명하듯 길거리에서도 육류를 취급하는 식당이나 상점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은 향신료 사용이 적었다. 이는 원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걸 최고로 여기는 일본 요리 문화의 특징과 함께 오신채 등 자극적인 향신료 사용을 금하는 불교의 영향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가 강한( 습하거나 반대로 건조하거나, 매우 덥거나 아주 춥거나) 지역일수록 몸에 열을 내거나 방부 작용을 하는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43]과는 어긋나는데, 이는 위의 육식 메뉴의 부족과 연계해서 생각할 부분도 있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와사비나 겨자를 향신료로 쓴 것을 제외하면 일본 요리는 향신료 사용이 적고 향이 약한 편이며, 향신료를 선호하지 않는 것은 아래의 염도 문제로도 이어진다.
또한 이런 특징 때문에 일본에서 고추가 먼저 전래되었음에도 고추가 요리에 거의 쓰이지 않는다. 고춧가루도 다른 향신료와 배합하여 시치미(七味)라는 조미료로 만들어서 야키토리나 우동 등 극히 일부의 음식에만 뿌려먹는다. 오히려 한국이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추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운 맛에 대한 여러 가지 해프닝도 있다. # # # #
자칫 느끼한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들을 쓴 요리들을 비교할 때 한국 요리보다 일본 요리를 더 느끼하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고추, 고춧가루, 마늘, 생강, 양파, 대파 등 느끼함을 잡아 줄 향신료를 한국에 비해 훨씬 적게 쓰기 때문이다.
육식이 그렇듯, 근대화 이후 유럽 요리가 도입되면서 이전보다 더 다양한 향신료를 쓰게 되었다. 특히 커민은 일본 해군이 영국 해군의 음식을 도입했을 때 레시피를 거의 그대로 들여와서 한국보다 자주 쓰이며 사람들의 거부감도 낮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일본 카레가 색깔이 갈색인 것도 커민을 많이 넣기 때문이다. 고수, 박하에도 여전히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제법 있으나 이전보다는 훨씬 더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44]
기후가 강한( 습하거나 반대로 건조하거나, 매우 덥거나 아주 춥거나) 지역일수록 몸에 열을 내거나 방부 작용을 하는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43]과는 어긋나는데, 이는 위의 육식 메뉴의 부족과 연계해서 생각할 부분도 있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와사비나 겨자를 향신료로 쓴 것을 제외하면 일본 요리는 향신료 사용이 적고 향이 약한 편이며, 향신료를 선호하지 않는 것은 아래의 염도 문제로도 이어진다.
또한 이런 특징 때문에 일본에서 고추가 먼저 전래되었음에도 고추가 요리에 거의 쓰이지 않는다. 고춧가루도 다른 향신료와 배합하여 시치미(七味)라는 조미료로 만들어서 야키토리나 우동 등 극히 일부의 음식에만 뿌려먹는다. 오히려 한국이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추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운 맛에 대한 여러 가지 해프닝도 있다. # # # #
자칫 느끼한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들을 쓴 요리들을 비교할 때 한국 요리보다 일본 요리를 더 느끼하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고추, 고춧가루, 마늘, 생강, 양파, 대파 등 느끼함을 잡아 줄 향신료를 한국에 비해 훨씬 적게 쓰기 때문이다.
육식이 그렇듯, 근대화 이후 유럽 요리가 도입되면서 이전보다 더 다양한 향신료를 쓰게 되었다. 특히 커민은 일본 해군이 영국 해군의 음식을 도입했을 때 레시피를 거의 그대로 들여와서 한국보다 자주 쓰이며 사람들의 거부감도 낮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일본 카레가 색깔이 갈색인 것도 커민을 많이 넣기 때문이다. 고수, 박하에도 여전히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제법 있으나 이전보다는 훨씬 더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44]
일본은 전통적으로 덥고 습한 기후 때문에 소금, 된장, 간장, 식초를 이용한 저장법이 발달했고 남만인(설탕, 고추)과 조선(김장 보관법, 젓갈, 마늘, 생강)의 요리 문화가 유입되는 에도 시대 이전까지는 이 4가지 기본 재료가 주류였다. 음식을 익혀 먹는 빈도가 한국, 중국보다 낮은 편인 데다 향신료도 잘 쓰지 않는 식문화 때문에 일식엔 전반적으로 간장과 소금이 많이 들어간다. 후에 도입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의 요리들과 유럽 요리들도 대체로 많은 양의 소금을 사용하는 요리법들이었다. 즉, 요리 자체에서 소금의 비중이 높다. 사실 한국도 나트륨 섭취량이 매우 높음에도 유독 일본 요리가 짜다고 느껴지는 이유[45]다.
또한 일본 요리는 국물 요리가 많아 국물 섭취가 많은데, 이런 국물 요리의 섭취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나트륨 섭취가 다른 문화권에 비해 많은 원인으로 꼽히며,[46] 일본인들도 매우 높은 나트륨 섭취량을 보이고 있으며 술까지 즐겨마시기 때문에 일본은 고혈압 등 특정 질병의 발병률이 높다.
즉, 일본 요리는 특유의 조리법과 국물 지방의 발달로 인해 상당히 고염분인 음식이 많다. 이런 고염분 식단과 그에 뒤따르는 부작용들에 대해 일본 정부와 사회도 심각성을 인지하여 식단에서 나트륨을 점차 줄여나가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지역별로는 간토 지방의 음식이 짜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추운 지방들(도호쿠, 호쿠리쿠, 내륙 고지대)이 가장 짜게 먹는 편이다. 후생노동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도 꽤 추운 야마나시현과 아오모리현의 하루 소금 섭취량이 남성 기준 13,000mg에 육박한다.[47] 본토나 오키나와 같은 더운지방이면 더더욱 올라간다.
오늘날 일본인의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측정 방법으로 회상법을 사용하느냐 소변 분석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편차가 큰 편이다. 이는 회상을 통한 식단 재구성과 영양표를 인용하여 구성하는 회상법과 소변에 함유된 나트륨을 측정하여 역산하는 소변 분석법의 방법적 차이에 의거한다. 일반적으로 소변 분석법이 훨씬 더 정확하다고 평가 받고, 특히 국물 요리가 많은 동아시아식 식단에서는 소변 분석법이 훨씬 더 정확한 수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소변을 채취해야 하는 소변 분석법의 연구 방법적 어려움과 집단의 대표성 담보 문제로 국가 기관들의 대표 연구는 주로 회상법에 의존하고, 의료 기관들 및 기업들의 연구는 주로 높은 정확도를 보이는 소변 분석법을 사용한다.
2015년 로이터통신#에서 소변 검출법으로 분석한 데이터로는 일본인은 평균 4200mg의 소금을 섭취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권장 나트륨 섭취량인 2300mg은 물론이고 미국인 평균 나트륨 섭취량인 3600mg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디.
24시간 회상법을 적용한 후생 노동성의 연구 기준으로는 남성 7,500mg, 여성 6,500mg으로,[48] WHO 권장량 보다 훨씬 높고, 한국, 미국, 영국보다도 높았다.
한편 무작위로 선발한 3일간 수집된 수시뇨를 이용한 소변 분석법을 적용한 도쿄 대학교의 2017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69세 건강한 일본 성인의 일일 24시간 평균 소변 나트륨 배출량은 남성 204.8 mmol(3686.4 mg), 여성 155.7 mmol(2802.6 mg)이었는데, 남녀 모두 통틀어 평균 180.0mmol(3240mg)이었다. 일본인의 소변 중 나트륨 배출량을 바탕으로 나트륨 섭취량을 산출하면 성인 남성은 약 4535 mg, 여성은 약 3449 mg으로 앞선 24시간 회상법보다는 많이 낮지만 여전히 WHO 권장 기준보다는 현저히 높다. #1, #2 참고로 2014~2015년 8시간 수시뇨 분석법을 적용하여 측정한 같은 연령대 한국 성인 평균 일일 소변으로의 나트륨 배출량은 170.8±35.6 meq/day(3074.4mg)으로, 일본 성인 평균보다는 약 5.5% 낮지만 연구 결과 값이 오차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매우 유사한 수치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49]
또한 일본 요리는 국물 요리가 많아 국물 섭취가 많은데, 이런 국물 요리의 섭취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나트륨 섭취가 다른 문화권에 비해 많은 원인으로 꼽히며,[46] 일본인들도 매우 높은 나트륨 섭취량을 보이고 있으며 술까지 즐겨마시기 때문에 일본은 고혈압 등 특정 질병의 발병률이 높다.
즉, 일본 요리는 특유의 조리법과 국물 지방의 발달로 인해 상당히 고염분인 음식이 많다. 이런 고염분 식단과 그에 뒤따르는 부작용들에 대해 일본 정부와 사회도 심각성을 인지하여 식단에서 나트륨을 점차 줄여나가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지역별로는 간토 지방의 음식이 짜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추운 지방들(도호쿠, 호쿠리쿠, 내륙 고지대)이 가장 짜게 먹는 편이다. 후생노동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도 꽤 추운 야마나시현과 아오모리현의 하루 소금 섭취량이 남성 기준 13,000mg에 육박한다.[47] 본토나 오키나와 같은 더운지방이면 더더욱 올라간다.
오늘날 일본인의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측정 방법으로 회상법을 사용하느냐 소변 분석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편차가 큰 편이다. 이는 회상을 통한 식단 재구성과 영양표를 인용하여 구성하는 회상법과 소변에 함유된 나트륨을 측정하여 역산하는 소변 분석법의 방법적 차이에 의거한다. 일반적으로 소변 분석법이 훨씬 더 정확하다고 평가 받고, 특히 국물 요리가 많은 동아시아식 식단에서는 소변 분석법이 훨씬 더 정확한 수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소변을 채취해야 하는 소변 분석법의 연구 방법적 어려움과 집단의 대표성 담보 문제로 국가 기관들의 대표 연구는 주로 회상법에 의존하고, 의료 기관들 및 기업들의 연구는 주로 높은 정확도를 보이는 소변 분석법을 사용한다.
2015년 로이터통신#에서 소변 검출법으로 분석한 데이터로는 일본인은 평균 4200mg의 소금을 섭취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권장 나트륨 섭취량인 2300mg은 물론이고 미국인 평균 나트륨 섭취량인 3600mg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디.
24시간 회상법을 적용한 후생 노동성의 연구 기준으로는 남성 7,500mg, 여성 6,500mg으로,[48] WHO 권장량 보다 훨씬 높고, 한국, 미국, 영국보다도 높았다.
한편 무작위로 선발한 3일간 수집된 수시뇨를 이용한 소변 분석법을 적용한 도쿄 대학교의 2017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69세 건강한 일본 성인의 일일 24시간 평균 소변 나트륨 배출량은 남성 204.8 mmol(3686.4 mg), 여성 155.7 mmol(2802.6 mg)이었는데, 남녀 모두 통틀어 평균 180.0mmol(3240mg)이었다. 일본인의 소변 중 나트륨 배출량을 바탕으로 나트륨 섭취량을 산출하면 성인 남성은 약 4535 mg, 여성은 약 3449 mg으로 앞선 24시간 회상법보다는 많이 낮지만 여전히 WHO 권장 기준보다는 현저히 높다. #1, #2 참고로 2014~2015년 8시간 수시뇨 분석법을 적용하여 측정한 같은 연령대 한국 성인 평균 일일 소변으로의 나트륨 배출량은 170.8±35.6 meq/day(3074.4mg)으로, 일본 성인 평균보다는 약 5.5% 낮지만 연구 결과 값이 오차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매우 유사한 수치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49]
전통적으로 일본 요리는 동아시아 요리들 중 남중국 지역의 요리와 함께 설탕이 비교적 많이 들어가는 편이었다. 근대 이전에는 오키나와에서 재배한 사탕수수와 설탕이 일본으로 들어왔고, 근대가 시작되고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로부터 대만 임대를 받게 된 이후로는 오키나와에 더해 타이완에서 들어오는 설탕이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후 오키나와가 미군에게 빼앗기게 되어 설탕 산지를 잃었지만 미국에서 원조 물자로 엄청난 양이 설탕이 들어왔고, 현대에는 미국과 중국과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설탕을 수입해 오고 있다.
이 때문에 전통적으로 한국이나 북중국 지역[50]에 비해 설탕을 접하기가 좀 더 쉬웠고, 여러 가지 디저트들을 비롯한 설탕이 들어간 요리들이 남중국 지역의 요리를 제외한 다른 동아시아 요리들에 비해 발달하였다.
일본의 설탕 섭취량은 WHO가 권장하는 일일 당 섭취 권장량을 상당한 수치로 초과한다. # # 때문에 일본 정부와 시민단체들 그리고 언론들에서도 일본인들의 설탕 섭취량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통적으로 한국이나 북중국 지역[50]에 비해 설탕을 접하기가 좀 더 쉬웠고, 여러 가지 디저트들을 비롯한 설탕이 들어간 요리들이 남중국 지역의 요리를 제외한 다른 동아시아 요리들에 비해 발달하였다.
일본의 설탕 섭취량은 WHO가 권장하는 일일 당 섭취 권장량을 상당한 수치로 초과한다. # # 때문에 일본 정부와 시민단체들 그리고 언론들에서도 일본인들의 설탕 섭취량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다.
향신료 사용이 적은 대신 일본 요리에는 녹차, 우롱차 등 음식의 느끼함을 씻어주고 생식의 비린 맛을 중화해 주는 차(茶)가 발달되어 있다. 일본인들은 식사 중 차의 섭취가 당연시 되고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차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이 때문에 회전초밥 전문점에서는 아예 테이블마다 온수 꼭지와 녹차 가루가 비치되어 있고, 중국 요리 계열 식당에서는 재스민차나 보이차가, 북해 요리 계열 식당에서는 홍차가 거의 필수적으로 제공된다.
이런 점은 중국과도 유사하다 볼 수 있다. 일본과 중국 양국이 식재료를 다루는 관점은 정반대지만, 두 나라 모두 음식이 평균적으로 기름지다 보니 차를 곁들인다는 점은 의외로 비슷하다.[52]
커피와 카페 문화도 널리 퍼져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선호하는 커피는 고열에 로스팅하여 진하게 내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일본에서 마시는 커피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마시는 커피에 비해 상당히 진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진한 커피에 대한 선호는 일본인들이 커피를 식후 느끼함과 비린 맛을 씻어주는 용도나 달콤한 간식과 함께 섭취하는 용도로 여기는 것에서 기인한다. 미국인들도 기름진 미국식 아침 식사에 곁들이는 커피는 상당히 진하게 내려서 마신다.
유럽에서 들여온 주스와 탄산음료 등의 음료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으며, 현지화를 거쳐 일본을 대표하는 음료로 정착한 사례로는 라무네가 있다. 이외에도 사케 같은 일본식 전통주와 맥주, 위스키, 와인과 같은 술들도 식사에 곁들이는 용도로 많이 소비되고 있다.
이 때문에 회전초밥 전문점에서는 아예 테이블마다 온수 꼭지와 녹차 가루가 비치되어 있고, 중국 요리 계열 식당에서는 재스민차나 보이차가, 북해 요리 계열 식당에서는 홍차가 거의 필수적으로 제공된다.
이런 점은 중국과도 유사하다 볼 수 있다. 일본과 중국 양국이 식재료를 다루는 관점은 정반대지만, 두 나라 모두 음식이 평균적으로 기름지다 보니 차를 곁들인다는 점은 의외로 비슷하다.[52]
커피와 카페 문화도 널리 퍼져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선호하는 커피는 고열에 로스팅하여 진하게 내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일본에서 마시는 커피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마시는 커피에 비해 상당히 진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진한 커피에 대한 선호는 일본인들이 커피를 식후 느끼함과 비린 맛을 씻어주는 용도나 달콤한 간식과 함께 섭취하는 용도로 여기는 것에서 기인한다. 미국인들도 기름진 미국식 아침 식사에 곁들이는 커피는 상당히 진하게 내려서 마신다.
유럽에서 들여온 주스와 탄산음료 등의 음료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으며, 현지화를 거쳐 일본을 대표하는 음료로 정착한 사례로는 라무네가 있다. 이외에도 사케 같은 일본식 전통주와 맥주, 위스키, 와인과 같은 술들도 식사에 곁들이는 용도로 많이 소비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일수록 제철 음식의 개념을 뛰어넘을 계절 감각을 매우 중시하며, 플레이팅까지 어울리는 것을 따로 고려할 정도로 세심하다. 일례로 일본 카이세키 전문 음식점이나 미슐랭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고급 음식점이라면 계절별 사용할 그릇을 따로 보유하여 계절에 맞게 사용함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뿐 아니라 음식에 장식하는 장식이나 가니슈도 그릇의 디자인 또는 날씨에 따라 각기 다르게 준비하여 사용할 정도로 디테일을 강조한다. 직경 30 cm짜리 광활한 접시 위에 무채로 3 cm 두께로 바닥을 깔고, 소나무 미니어처와 대나무잎, 이쑤시개로 만든 작은 종이 우산, 배 등의 장식물과 함께 한쪽 구석에 얄팍하게, 최대한 넓게 펴서 담은 회 8점의 가격을 보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혈압이 오를 것이다. 사실 생선마다 알맞은 두께가 있는 데, 복어회처럼 얇게 썰지 않으면 질긴 회도 있고, 참치나 가다랑어처럼 두껍게 썰어야 하는 생선도 있다.[53]
그렇다고 현대까지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은 아니다. 2000년도 이후로는 일본인들도 먹는 양이 늘어나서인지[54] 한국어로 바꾸면 곱빼기에 해당하는 오오모리(大盛り)를 넘어선 특곱배기=토쿠모리(特盛り), 특특곱배기=데카모리(デガ盛り)[55] 등 미칠 듯한 양의 음식들을 버젓이 팔고 있다. 괜히 일본 가서 '양이 적겠지' 하고 메가모리 시키다간 피본다.[56] 또한 대학가에서는 체인점을 제외한 대다수 음식점에서 보통으로 주문하든 곱배기로 주문하든 가격이 똑같은 경우가 많다.
사실 일본 음식에 장식이 많은 것은 오래 익히거나 향신료를 많이 쓰거나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것을 배제하기 때문에 조리 과정이 단순할 수밖에 없고,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가 모양, 장식, 그릇이라는 시각적 요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원재료, 원산지를 중시하는 경향과도 맞닿아 있는데, 비슷한 조리법에서 차별화하려면 역시 원산지를 강조하는 방법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시미(회)의 경우에는 생선을 뼈 바르고 껍질 벗겨 잘라 놓는다는 단순한 조작뿐이고, 같은 때 어획한 같은 크기 어종이라면 원산지와 숙성 정도 말고는 아무런 차별점이 없다. 비싸게 팔기 위해서는 최대한 음식을 화려하게, 돋보이게 꾸며야만 하는 것이다.
흔히 스시 등에 '하란'이라 불리는 엽란의 잎을 장식용으로 썼으며, 현재 저렴한 요리는 녹색 플라스틱 장식[57]으로 대체한다. 자세한 것은 엽란 문서로. 한편 사시미 밑에는 여러 이유로 무채를 까나, 알긴산을 가공한 천사채도 저렴함을 이유로 흔히 쓴다. #
그렇다고 현대까지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은 아니다. 2000년도 이후로는 일본인들도 먹는 양이 늘어나서인지[54] 한국어로 바꾸면 곱빼기에 해당하는 오오모리(大盛り)를 넘어선 특곱배기=토쿠모리(特盛り), 특특곱배기=데카모리(デガ盛り)[55] 등 미칠 듯한 양의 음식들을 버젓이 팔고 있다. 괜히 일본 가서 '양이 적겠지' 하고 메가모리 시키다간 피본다.[56] 또한 대학가에서는 체인점을 제외한 대다수 음식점에서 보통으로 주문하든 곱배기로 주문하든 가격이 똑같은 경우가 많다.
사실 일본 음식에 장식이 많은 것은 오래 익히거나 향신료를 많이 쓰거나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것을 배제하기 때문에 조리 과정이 단순할 수밖에 없고,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가 모양, 장식, 그릇이라는 시각적 요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원재료, 원산지를 중시하는 경향과도 맞닿아 있는데, 비슷한 조리법에서 차별화하려면 역시 원산지를 강조하는 방법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시미(회)의 경우에는 생선을 뼈 바르고 껍질 벗겨 잘라 놓는다는 단순한 조작뿐이고, 같은 때 어획한 같은 크기 어종이라면 원산지와 숙성 정도 말고는 아무런 차별점이 없다. 비싸게 팔기 위해서는 최대한 음식을 화려하게, 돋보이게 꾸며야만 하는 것이다.
흔히 스시 등에 '하란'이라 불리는 엽란의 잎을 장식용으로 썼으며, 현재 저렴한 요리는 녹색 플라스틱 장식[57]으로 대체한다. 자세한 것은 엽란 문서로. 한편 사시미 밑에는 여러 이유로 무채를 까나, 알긴산을 가공한 천사채도 저렴함을 이유로 흔히 쓴다. #
일본 요리는 크게 지역에 따라 4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다. 간토(관동) 요리, 간사이(관서) 요리, 오키나와 요리, 홋카이도 요리. 여러 지방 출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회지인 경우엔 소속지에 상관 없이 풍습이 섞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도쿄~나고야 벨트.
조미의 경향은 대체로 서쪽, 남쪽으로 갈수록 달고 동쪽, 북쪽으로 갈수록 짠 편이다.
조미의 경향은 대체로 서쪽, 남쪽으로 갈수록 달고 동쪽, 북쪽으로 갈수록 짠 편이다.
- 간사이(관서): 미적 감각을 중시하고 간이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다.[58] 극단적으로 고급 요리와 일상 요리가 구분된 것이 많은데, 흔히 떠올리는 일본 요리(이 항목 가장 위 사진을 포함하여)가 바로 간사이 음식들(정확히는 교토 요리). 하지만 서민적인 간사이 음식들은 먹다 터질 정도로 푸짐하게 담아주는 경향이 있다. 특히 과거부터 상인들이 자주 왕래했던 오사카가 이런 경향이 크다. 교토 요리[59], 큐슈 요리, 시코쿠 요리, 오사카 요리 등으로 세분화된다. 빵이나 고기요리같은 유럽/중동 요리를 변형한 것들도 나카사키 요리이니 일본식 유럽풍 요리도 여기에 해당된다.
- 주부(중부): 간토보다는 간장을 덜 쓰되 된장을 써서 이쪽도 간이 강하다. 주부의 대표지역인 아이치현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아이치현은 어찌보면 간토보다 간장은 덜 쓰지만 된장 중 염도가 약한 핫쵸된장을 주로 쓴 소스가 많다. 아무리 염도가 가장 낮은 핫쵸된장이라해도 여기에 간장과 설탕을 가미하는 만큼 염도가 장난 아닌 데다가 나고야가 여름에는 바다에서 오는 습기와 35~6도에 달하는 땡볕 때문에 의외로 더운 지역이며 땀이 많이 배출되는 만큼 염분을 보충하려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나고야 음식만 해도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짜서 간토보다 짜다는 평이 있기도 하다. 대신 아이치현에는 앙카케 파스타/타이완 라멘/테바사키 등등 B급 요리가 많으며 핫쵸된장 베이스 소스류 음식이 많다.
- 규슈(구주): 짠맛과 단맛이 강한 지역. 규슈의 핵심도시 후쿠오카 현 후쿠오카시를 기준으로 작성하자면 한국인들도 가까워서 자주 방문하는 지역 중 2,3위를 점할 정도로 가까우나 수요가 워낙 높아 비행기 값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관광객도 많이 오니 한국인 전용 메뉴판도 갖추고 있다.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한국과 규슈는 거리가 가까워 교류도 있었고 기후와 잡히는 해산물도 비슷해서 실제로도 비슷한 음식이 많다. 후쿠오카의 특산물 명란젓은 아예 한국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규슈 음식의 달고 짠 맛을 한국인들이 비교적 친숙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다만, 이쪽도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간이 강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후쿠오카 인근의 나가사키는 설탕을 이용한 요리가 많아서 달콤한 간식류[61]가 많다.
- 오키나와(류큐 요리): 일본 요리의 항목에 들어가기 애매모호할 정도로 독립적으로 발달했다. 현재와 같은 일본령에 속하지 않던 독립된 류큐 왕국이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들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다보니 일본에선 금기시한 돼지고기를 삶거나 조려서 즐겨 먹었으며, 남쪽 지역의 특성상 날음식을 별로 즐기지 않아 스시 등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편이다.[62] 또한 일본 본토와는 기후가 많이 다르다 보니 바다포도 같은 특유의 식재료를 많이 사용하고 계절 감각 또한 일본 본토와 다르다. 대략 궁중 요리 정도나 화려한 모습이지, 일반 음식들은 거의 남중국/타이완 식에 가까운 지극히 서민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동아시아로 통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다보니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 음식의 영향도 많이 받았는데, 대표적인 게 참프루. 여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스팸(포크), 타코라이스 등 서구권에서 유래된 식문화가 정착한 것도 특징.[63]
-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음식과 일본 음식, 유제품을 비롯한 음식이 혼합된 특이한 요리 문화가 특징이다.[64] 개화기 이후의 홋카이도 음식들은 대규모 목축업이 이루어진 점을 이용해, 구미화의 극치인 유제품을 적극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65] 우유, 버터, 치즈가 듬뿍 들어가고, 옥수수와 전분, 밀가루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이 홋카이도 음식. 라멘에 버터와 옥수수 통조림을 한 숟가락씩 넣는 것도 홋카이도(엄밀히는 삿포로)의 발상이고, 일본식 크림 스튜와 우유나베도 홋카이도의 발상. 현지에 가서 먹어본 사람들의 감상은 재료가 좋아서 맛있는 요리라고.[66]
- 쇼진요리(精進料理): 일본 불교식 사찰 음식. 승려들의 수행[67] 음식으로 야채나 콩류로 만든 채식 식단. 찌거나 볶거나 주로 두부, 녹말가루 등을 사용하며, 불교 종파마다 요리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다. 간모도키(がんもどき)[68]와 켄친지루(けんちん汁)[69]가 원래는 쇼진요리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장례식이나 사십구재, 오봉 기간 중에는 일반인들도 쇼진요리를 먹게 되며, 이 기간이 끝나고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는 날을 '쇼진오토시'(精進落とし)라 부른다.
- 후차요리(普茶料理): 황벽종(黄檗宗)에 속한 사원에서 만들어 먹는 쇼진요리의 일종이며, 중국식 사찰요리가 일본식으로 현지화된 것이다.
- 가이세키 요리(懷石料理): 차 맛을 돋우기 위해 간소하게 먹는 요리. 위의 혼젠요리에서 유래했다. 주연에 주로 나오는 아래 요리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구별하기 위해 차카이세키라고도 한다.
- 가이세키 요리(会席料理): 술안주 위주의 손님 접대용 상차림이자 연회요리. 계절에 따라 시각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도 하며, 정해진 순서대로 요리가 하나씩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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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 화할 화는 왜나라 왜자를 대체한 글자다.[2] 和가 일본을 의미한다. 화변기(和便器), 화과자(和菓子), 와규(和牛) 등과 같다.[3] 보통 동아시아 요리 하면 먼저 떠오르는 중국 요리가 아니라 의아할 수도 있다. 중국 요리가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유명하고 서구권까지 대중화 된 상황에서 더욱 그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오해인데, 인류무형문화유산은 기네스북과 같은 순위 경쟁 목록이 아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등재된 항목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지 아직 등재되지 않은 항목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낮춰보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벨기에 맥주 문화'는 해당 목록에 등재된 반면 '독일 맥주 문화'는 등재되지 않은 상태인데 이를 이유로 독일 맥주 문화를 낮춰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선 여러 가지로 품이 들며 국가적인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 일본 요리가 선제적으로 등재된 이유는 일본의 등재 노력이 앞선 결과이지 다른 요리 문화에 비해 일본 요리가 앞선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일본 요리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독자적인 가치를 가진 음식 문화임을 증명해 줄 뿐이며 그러한 증명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4] 그러나 미슐랭은 상업목적(타이어 마케팅)으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여러 국가들에게 듣고 있다.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닌데 심지어 오사카, 도쿄 가게들 일부가 사진촬영 금지하고 가이드에 실리는 것을 거부했으나 기어이 미쉐린 측이 강제로 별을 메기는 사태도 있었다.[5] 위상으로만 따지자면 한국에서 김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에서 김치 가지고 밥 한 그릇 먹는다는 것처럼 일본에선 명란젓만으로 밥 한 끼 때우는 경우도 있을 정도며, 그 외에 도시락, 주먹밥 등에도 자주 들어간다. 반대로 일본에서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간을 하는 김치는 한국에 비해 매운맛과 짠맛이 덜한 대신 단맛이 강해 그냥 겉들여 먹는 채소무침 정도 인식이다. 물론 김치도 일본에서 과거보다 소비량이 늘었다.[6] 일본에서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하게 역사 깊고 대중적인 술이 사장당한 것도 지나친 고급화를 추구했던 1980년대였다.[7] 일본이 1990년대 초중반에 거품 경제가 붕괴되어갈 때에도 한동안 1인당 GDP가 고공행진을 해서 1992년에 1인당 GDP 3만 달러대를 돌파하고 1995년에 4만 2천 달러선까지 올라갔는데 이 또한 엔고의 영향이다.[8] 심지어 이 당시 일본은 아직 소식 문화가 많이 남아 있던 것도 컸다. 2018년 기준으로도 일본의 1인당 하루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171개국 중 105위인 2,705kcal로 말리, 코트디부아르, 네팔, 라오스, 기니, 부르키나파소 같은 빈곤국들보다도 적은 만큼 경제력에 비해서는 열량 섭취량이 매우 적은 편이다.[9] 특히 오키나와에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소득이 많지 않아 다른 지방에 비해 유독 도시락을 찾는 경향이 강했기에, 현재까지도 그 잔재로 편의점뿐만 아니라 도시락집이 많은 편. 히로시마의 <포플라>, 홋카이도의 <세이코마트>도 편의점 도시락과 즉석식품의 퀄리티를 높여서 해당 지역에서 높은 셰어를 유지하는 중이다.[10] 산채(山菜)의 일본어식 독음.[11] 이는 근래에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경쟁으로 인해 생긴 경향으로, 원래 전통적인 한식 요리는 적당히 슴슴하고 담백한 맛이 주류다.[12] 미국에서도 소꼬리를 우려낸 수프 요리가 있지만 돼지뼈를 이용한 요리는 드물며 특히 돼지국밥에도 익숙한 한국인조차 기겁할만한 꾸덕꾸덕한 돈코츠 라멘은 돼지 누린내도 장난 아니라서 서양인들도 기겁을 한다. 돈코츠 라멘의 대표명사 중 하나인 이치란 라멘 같은 경우 꾸덕꾸덕한 마이너함 보다는 어느 정도 대중들 맛에 타협한 메이저한 맛이기에 서양인들에게 거부감이 없다.[13] 반대로 말하면 한국의 고기요리인 간장 양념 베이스로 한 갈비와 불고기 등은 서구권에서도 인기가 많으나 제육볶음 같이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고기음식이라 먹지만 한국인들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는 맵기지만 서구권 사람들은 입안을 식히려고 난리친다.[14] 특히 어릴 때 부터 잡곡밥을 주로 먹으며 자라온 사람은 흰쌀밥이 너무 느끼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 흰쌀밥도 일종의 정제 탄수화물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다.[15] 당연하지만 콩이 섞인 밥을 내왔다고 예법에 어긋나거나 하지 않는다.[16] 그나마 해군은 이 사정서 나은편이었는데 때마침 카레라이스를 개발하여 해결되었고 육군은 좀 더 고생하다가 고기감자조림을 만들면서 해결되었다.[17] 특히 이 반찬에는 마늘도 다량 함유되는데, 마늘에는 각기병의 특효약인 비타민 B1이 풍부하다. 즉, 걸리고 싶어도 걸릴 수가 없었던 셈(...).[18] 상술한 대로 쌀만 먹으면 각기병에 걸리는 건 쌀의 영양분, 특히 비타민의 전부가 쌀눈(배아)에 뭉쳐있기 때문이다. 도정을 하면서 이 부분을 거의 완전히 깎아내기 때문에 그런 것. 반면 밀은 도정을 하더라도 배아 부분이 많이 남고 또, 쌀과는 달리 굳이 배아의 맛을 따질 필요가 없는 밀가루로 만들어 먹으므로 각기병에 걸릴 일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19] 물론 중국 요리의 진미라고 불리는 재료는 너무 희귀하고 독특해서 시간을 오래 들여야 하는 탓도 있다. 곰발바닥, 샥스핀 같은 재료는 정말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밑준비를 하는데, 그냥 날로 집어먹으면 아무 맛도 감동도 느낄 수 없고 불쾌하기만 할 가능성이 크다. 잡비린내를 철저히 제거하고 원하는 식감을 끌어내기 위해 가공을 오래 하는 것이다.[20] 다만 중국이 위낙에 넓은 나라이다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취하같은 날 음식을 먹기는 한다. 물론 향토음식 정도로 취급되며 전국적으로 널리 즐겨먹는 음식은 아니다.[21] 우리가 최근 접하는 초밥은 '에도마에 스타일'이라 불리는데, 에도(도쿄) 근해에서 잡힌 싱싱한 생선을 바로잡아 이용하는 일종의 패스트푸드였다. 그렇기 때문에 날음식을 이용하되 바다와 인접한 해안지방에서는 날음식이 활성화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내륙지방에서는 보존을 위해 절이거나 삭힌 음식이 주를 이루었다.[22] 도쿄의 이즈 제도와 하치조지마에서는 간장에 생선을 절여 만들고 밥에는 와사비 대신 카라시를 쓰는 '시마즈시'가 있다.[23] 그래서인지 마트에서 식초에 절여 말린 오징어를 팔기도 한다. 일반 말린 오징어인 줄 알고 덥석 집으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지도 모른다.[24] 교토 마치야(京町家)의 사례처럼 뼈대뿐 아니라 벽까지 나무로 만드는 비중이 높았다. 현재도 습한 기후 문제로 단독주택 시장에서 목조주택의 비중이 높은 편.[25] 이는 도쿄 대공습을 포함한 일본 역사의 수많은 대화재 사건과 그 규모로 증명된다.[26] 엄밀히 말하면 뼈대에 나무를 쓰긴 했지만 일본과 비교할 때 벽체는 흙벽돌이나 벽돌로 쌓아 만드는 비중이 높았으므로, 불꽃이 조금만 튀어도 큰 화재로 번지기 쉬운 일본식 목조 가옥보단 안전한 편이다. 상대적으로 습기문제가 심한 한반도에서는 주로 지붕을 짚등으로 덮어서 습기문제를 해결했다.[27] 이는 그릇에도 잘 드러나는데, 중국/한국은 뜨거운 음식을 담기에 적합한 토기로부터 발전시킨 도자기 그릇을 널리 사용했던 반면 일본은 나무집 문화, 화기를 적게 쓰는 요리 때문에 도자기 기술이 지지부진했던 탓에 나무 그릇이 주가 되었다.[28] 국도 그릇을 든 채로 젓가락으로 먹는다.[29] 마를 갈아놓은 것. 말 그대로 간(갈은) 마이다. '갈은'은 사실 비문.[30] 다만 스키야키의 달걀 노른자 소스나 강한 식감 문제('Tough'라고 표현하는 데, 유럽/아메리카/중동인들은 부드러운 쇠고기 식감을 선호한다. 반면 우설이나 염통은 지방이 없는 근육이라 매우 쫄깃한 식감이다.)로 거부감을 주었던 우설, 염통과 같은 소의 특수부위 요리에 대한 유럽/아메리카/중동인들의 인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변화되어 최근에는 그다지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강한 바다 내음으로 역시 거부감이 있었던 '성게 우니(うに)' 도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31] 특히 닭가슴살을 회로 많이 먹는다.[32] 수많은 일본산 요리 배틀 만화가 이를 증명한다. 더불어 대사각하의 요리사에선 주인공이 '일식이 재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요리였냐.'는 대사로 은근히 까기도 했다.[33] 675년, 살생을 금하는 불교 교리에 따라 덴무 천황이 육식 금지령을 내려 4월~9월까지 소, 말, 개, 원숭이, 닭의 취식과 어렵 행위를 금지했다. 그 후에 즉위한 천황과 막부의 쇼군들도 여러 차례 같은 칙령을 내렸다. 덴무 천황의 육식 금지령으로 일본에서 육식이 사라졌다는 낭설을 반박하는 가장 좋은 근거가 후대 천황과 쇼군들의 금지령 반포이다. 몇십 번씩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육식 문화가 없어지지 않고 존속했던 것이다.[34] 반본환(反本丸, 헨폰간)이라 하여 고기를 다져서 으깬 뒤, 쪄서 약초를 넣은 후 경단 모양으로 말린 게 시초이며 주로 지체 높은 일본 고위층에서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35] 살생을 싫어하던 히코네 번주 이이 나오스케는 도쿠가와 막부 가문의 일족이자 미코 번주였던 도쿠가와 나리아키에게 쇠고기 된장절임의 진상을 거부하여 막부의 분노를 샀다는 일화도 있다. 그리고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때의 불화가 사쿠라다 문 밖의 변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36] 가고시마의 경우, 오키나와의 육류 요리에도 영향을 받았다.[37] 아키타현의 토종닭 품종인 '히나이도리'(比內鷄)는 조몬시대부터 근대까지 외래닭 품종과 교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순혈 품종으로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품종 보호를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예술작품의 배경이나 소재로 히나이도리가 인용되었으며 깃털로는 전통극 가면 등을 장식하기도 했다. 현재는 뛰어난 고기맛을 살려 외래닭 품종인 로드아일랜드 종과의 교배를 통한 '히나이지도리'(比內地鷄, 원품종은 천연기념물이라 도축 및 유통이 금지되었다.) 품종을 개발해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이 히나이도리 또는 히나이지도리를 이용한 요리가 바로 아키타현의 전통 향토요리인 '기리탄포'(きりたんぽ)이다.[38] 대표적인 예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저술한 《육식지설》이다. 다시 말해 서양인들의 체격이 저리도 큰 이유는 그들이 고기를 먹기 때문이므로 일본인인 우리 역시 고기를 먹음으로서 서양인과 같은 체격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였다.[39] 대중화가 되었다는 거지 레시피가 들어온 것 자체는 전쟁 이전부터 존재하긴 했다. 물론 전쟁을 거친 후에 레시피가 민간에 퍼지는 과정에서 다소 변형되기는 하였다.[40] 출처: 독립행정법인 농축산진흥기구 - 《食肉の消費動向について》[41] 동물 사료로 쓰인 육류, 뼈/연골/내장 등 살코기가 아닌 육류, 고기 정형 및 유통 및 조리 과정에서의 손실, 수출된 육류 등이 변수로 작용한다.[42] 막말~메이지때 표기 혼란으로 간장을 せうゆ(세우유)라고 잘못 표기했던 흔적이다. 구 표기법으로도 シヤウユ라고 해야 맞다. 역사적 가나 표기법 문서로.[43] 한국 요리 항목에서도 남부로 갈수록 향신료를 다채롭게 쓴다고 기술하고 있다.[44] 한국에서도 2010년대 이후 양꼬치, 훠궈, 쌀국수 등의 소비가 늘어나며 커민과 고수, 박하의 소비량이 늘어났으나, 여전히 기성세대의 선호도는 일본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떨어지는 편이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45] WHO 통계나 국내 의학계 통계를 보면 오히려 한국인이 일본인들보다 나트륨 섭취량이 많다. 일단 마늘, 고추와 같은 향신료와 혀의 통각을 자극하는 양념을 넣어서 매운맛으로 혀가 마비되는 경향이 있으니 혀는 짠맛만 온전히 느끼게 되지 못하는 것도 있고 국민반찬 김치를 온갖 음식과 곁들여 먹는 것도 원인 중 하나다.[46] 하버드 대학교의 2010년 자료를 보면 중앙아시아와 캅카스 지역 다음으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이 고나트륨 섭취군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높은 나트륨 섭취에는 국물 요리의 섭취가 크게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다만 국물까지 다 마시기, 국물은 반만 마시기, 국에서 건더기만 건져먹기 등 국물 요리의 다양한 섭취 방법으로 인해 회상법을 이용한 나트륨 섭취량 계산의 경우 국물 요리를 많이 먹는 문화권의 나트륨 섭취량이 회상법에 의해 집계될 경우 과다 집계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47] 都道府県別の肥満及び主な生活習慣の状況(도도부현별 비만 또는 주된 생활습관의 상황) p33~39[48] 후생노동성 《日本人の食事摂取基準》(일본인의 식사섭취기준) 2020년판[49] 출처[50] 다만 북중국 지역도 위진남북조 시대 등 북중국과 남중국이 분단되어 대결하던 시기가 아닌 통일 왕조 시기에는 남중국에서 재배된 설탕을 사들여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설탕을 접하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전근대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운송 비용이 크게 소모되었고, 따라서 설탕은 서민들이나 중산층들이 매일 마음껏 먹기에는 다소 비싼 편이었다. 때문에 북중국 지역의 서민들과 중산층들은 명절과 같이 특별한 날에 월병과 같이 설탕을 듬뿍 넣은 요리들을 즐겼다.[51] 마찬가지로 느끼하게 먹는 편인 북중국, 서구권 등에서는 느끼함보다는 회와 초밥 같은 해산물 생식과 멍게, 성게 등 다양한 해산물의 섭취 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52] 이는 영국 요리를 비롯해 독일 요리, 네덜란드 요리, 스웨덴 요리 등 북해 연안 국가 요리들과도 비슷한 점인데, 북해 연안 지역의 요리들은 향신료와 채소의 사용이 적고 기름진 요리가 많은 대신, 홍차, 탄산수, 맥주, 사과주, 탄산음료 등 느끼함을 잡아 줄 수 있는 음료를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북해 연안 지역 요리의 특징은 영국 요리에서 갈라져 나온 호주 요리, 캐나다 요리, 뉴질랜드 요리, 미국 요리가 공유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해당 문화권들에서는 많은 경우 식당 이용 시 주류를 포함한 1인 1음료의 주문이 불문율로 여겨지고 있다.[53] 덧붙이자면 한국인은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는 활어회를 선호하고 일본은 전통적으로 생선의 살을 일정기간 동안 숙성시킨 숙성회를 선호하기 때문에, 갓 잡은 한국식 생선회를 일본인은 질기다고 할 것이다.[54] 한일부부 유튜버인 박가네의 추미코 친정 역시 대식가라고 한다. 한번은 추미코의 친정에 방문해서 고깃집으로 가게 되었고 그 식당에서 유명한 애피타이저로 로스비프 샐러드가 있어 주문했는데 당시 장인, 장모, 그리고 처남과 박가네 총 5명이 간 곳에서 4개를 시켰다고. 문제는 이 로스비프 샐러드가 꽤 많은 양이라 거의 3인분 정도의 양이었다고 하는데 장인, 장모 따로 한 개씩, 그리고 처남 또한 하나, 박가네는 1개로 나눠서 먹은 것. 주문을 받던 종업원이 로스비프 샐러드 4접시라고 주문받자 잠시 머뭇하면서 “이거 양이 많습니다만”이라고 알려주자 장인, 장모 그리고 처남이 괜찮다고 대답했다고. 이후 요리가 나와서 세팅한 후 앞접시 필요하시냐고 묻자 3명이 동시에 ”필요없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먹었다고 한다.[55] 메가모리(メガ盛り)라는 말도 있는데 주로 도전용으로 제공하는 많은 양을 가리키는 방송용 조어에 가깝다. 그 밖에 게키모리(激盛り), 바쿠모리(爆盛り) 등의 단어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56] 특히 야키소바 기가맥스. 4,132칼로리라는 어마어마한 양과 기름을 자랑하며, 포장지에서 대놓고 '성인 하루 권장 칼로리의 2배이니 조심해서 드시기 바랍니다.' 라고 쓰였다.[57] 통칭 (인조)바란, 이개비[58] 이는 과거 수도가 교토였던만큼 교토의 고급요리는 최대한 미적감각과 조리를 최소화하며 재료소재의 맛을 중시했던 지역이었고 그 교토의 영향을 오사카가 받은 것이다. 단, 일본 내에서 덜 짜다는 거지 첫 일본 여행을 오사카로 가는 한국 사람들은 요리가 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59] 교토 요리는 '쿄' 요리로 불리기도 하며 대개 매우 고급스럽고 정갈하며 깔끔한 특색이 있다. '가이세키'라고 하는 일본의 코스 요리 역시 대표적인 쿄 요리 중 하나이다.[60] 이는 오랜 시간 일본의 정치 중심지였던 관서 지방과는 달리 전국시대 이후 새로운 정치 중심지로 부상하고 급격한 개발로 발전된 관동 지방의 역사적 요인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 스시 역시 '니기리즈시' 또는 '에도마에'라고 불리는 쥠 초밥 스타일인데, 이 역시 빠르게 초밥을 제조해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한 일종의 패스트 푸드였다. 과거 스시는 간사이에서 발족한 하코즈시였는데 밥을 쌓고 향신채를 올린 뒤 네타를 올려서 강하게 누른 뒤 칼로 써는 방식이었는데 이 만드는 시간마저 길다고 만들어진 게 니기리즈시다.[61] 일본식 카스테라 발원지가 데지마관을 통해 유입된 나가사키시이며 나가사키시 카스테라는 카스테라 밑면에 설탈 알갱이도 씹힐 수 있도록 해놨으며 흑설탕을 이용한 쿠로보우라는 과자도 있다.[62] 더운 지역에서 날 음식은 잘못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냉장고 발명 이전에는 여름에 상한 스시를 잘못 먹어 식중독에 걸리는 경우가 일본 본토에서도 많았는데 그보다 여름에 더 더운 오키나와에서는 더 했을 것이다.[63] 일본 가고시마 역시 가고시마 특산품인 흑돼지, 그리고 가고시마에 속한 아마미 제도에서 생산되는 흑설탕을 사용해 일본 본토와 다른 독특한 음식 문화를 이루기도 했다.[64] 홋카이도에 대한 일본 본토 세력의 본격적인 진출과 개발은 1869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홋카이도를 당시까지 일본 세력이 전무했거나 아예 무관계하다가 급작스럽게 침입해 들어간 것처럼 여기는 것도 곤란한데, 15세기 이후 마츠마에(松前) 번이 지금의 하코다테를 중심으로 에조치(蝦夷地; 홋카이도의 옛 이름)의 아이누들과 교역했기 때문이다. 마츠마에 번은 12개소의 관(館)을 세웠는데 이 한자의 일본어 발음은 '타테'로, 바로 '하코다테(函館)'가 마츠마에의 관 중 하나였다. 즉, 마츠마에 번은 일본인으로서 아이누 사회에 간섭하고 개입하며 활동하던 홋카이도 역사의 한 주자였다.[65] 19세기 말엽 홋카이도 개척을 위해 일본 정부가 초빙한 미국의 농업고문단이 들어와 활동하면서 이들의 식생활이 홋카이도에 이식된 것도 크다. 20세기 초반 삿포로에는 이미 양식 레스토랑이 있었을 정도. 또한 하코다테에서 고토켄(五島軒)이라는 카레 요리집이 개업, 현재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66] 농담이 아니라 재료의 신선함과 퀄리티가 차원을 달리한다. 특히 아이스크림이나 버터, 치즈의 경우 홋카이도산이란 광고가 붙는 것만으로 소비자에게 제품 퀄리티의 신뢰와 맛을 기대하게 할 정도.[67] 한국과 달리 일본은 선종, 밀교 계통이라도 본사급 사찰에 모여 집단 수행하는 기간 동안에만 한시적으로 먹으며, 그 외는 사사롭게 육식하는 것이 용인된다.[68] 으깬 두부에 채썬 연근, 우엉, 당근 등을 섞어 반죽한 뒤 튀긴 음식.[69]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에 위치한 겐초지(建長寺)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오리지널 켄친지루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고 간장이나 된장 국물에 큼직하게 썬 채소(주로 무·당근·토란·곤약)를 넣는 레시피였다.[70] 설날만 되면 튀기고 지지는 요리가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요리 문화와 극도로 대조적이다.[71] 한국에서 명절 제수용품 판매량으로 불경기/호경기를 가늠하는 것처럼, 일본은 오세치 요리 전문업체의 준비량이나 판매량을 통해 소비자 체감경기를 가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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