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가라후토는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령이었던 북위 50도선 이남의 남사할린땅을 말함


당시 일본의 외지로 편입되었었고 가라후토청의 지배하에 있었다가 1943년 내지화 되었지만 불과 2년만에 소련 러시아령이 됌(소련군이 여기서 더 전진했더라면 홋카이도가 분단되었을수도 있다캄 ㄷㄷ)


주민구성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본인과 소수의 조선인(이후 사할린 한인), 토착민인 사할린 아이누가 주를 이뤘으나 토착민이 매우 극소수인 케이스라 대만과 조선같은 외지보단 내지인 홋카이도의 연장선쯤으로 여겨졌음.


도요하라(현 유즈노사할린스크)는 가라후토청의 소재지인, 명실상부 가라후토의 중심지였으며 1937년에 시로 승격된 유일한 가라후토의 도시임

격자식 도시 구조나 그 지역의 공인된 중심지라는 점에서 가라후토의 삿포로 포지션


저 땅덩어리에 인구 40만밖에 안되었고 도시라는 도요하라도 3~4만 따리의 변방이었지만 자원이 풍부해 여러 공장이 즐비하여 당시 가난했던 일본인들에겐 한철 크게 벌 수 있는 일확천금의 땅이었음


도요하라 외에도 홋카이도 왓카나이와 가라후토를 연결하던 치하쿠 연락선이 위치한 오도마리(현 코르사코프)가 제 2의 도시였고 광업 중심지이자 사실상 인구 최대 밀집지였던 에스토루(현 우글레고르스크), 혼토(현 네벨스크), 마오카(현 홀름스크)등의 주요 도시가 있었음


아래는 러시아 사이트까지 뒤져가며 긁어모은 도요하라의 사진들임

1933년 도요하라 평면도(지금도 여전하다)


지금도 유즈노사할린스크의 명물로 남아있는 가라후토청 박물관(1937년생)


30년대 이전 가라후토청 박물관


30년대의 가라후토청 청사


신기하게 생긴 불교 사원


도요하라 역


역 앞 거리(채색때문에 좀 이상해보이는데 같은 장소 맞다) 그리고 저 작은 원 안에 있는 건물은 도요하라 남자중학교


백화점이 있던 번화가


우체국이 있던 번화가


시립 병원


홋카이도 타쿠쇼쿠 은행 도요하라점(방금 백화점이랑 같은 거리에 위치)


청사랑은 또 별개의 시청







도요하라의 여러 거리들


비록 지금은 동네가 칙칙한 아파트로 도배당했지만 위 박물관처럼 의외로 많은 건물들이 아직도 꽤나 남아있으니 궁금하면 직접 가보는것도 나쁘지 않을듯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