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센스뉴스 = 김성수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존재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가족, 학교와 직장, 친구와 이웃 등,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삶의 만족과 행복 역시,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재산을 가졌더라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너진다면, 삶의 만족감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큰 부와 명예가 없더라도 좋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높은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 즉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다.
역지사지는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유교 전통에서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겨 왔다.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떻게 느낄 것인가? 내가 저 사람의 위치에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자세다. 시대와 문화가 달라져도 역지사지는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으로 여겨져 왔다. 그 이유는 많은 갈등이 서로의 입장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 사이의 갈등과 단절에 대한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상대방의 상황이나 감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비난과 공격이 쉽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직장에서는 세대 간 갈등이 나타나고,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 부족이 문제로 지적되며, 사회적으로는 정치적 성향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믿는 분위기가 강해질수록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는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서 시작된다. 부모는 자녀를 위한 마음에서 간섭을 하기도 하고, 자녀는 부모의 걱정을 잔소리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상사는 직원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성과를 요구하고, 직원들은 상사의 책임과 부담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불만을 키우기도 한다.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의 희생과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갈등이 발생한다. 많은 갈등은 악의에서 비롯된다기보다, 상대방의 처지와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장 생활에서도 역지사지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조직은 다양한 세대와 성격,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이다. 각자의 생각과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만을 고집하면, 갈등은 피하기 어렵다. 상사는 직원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고, 직원 역시, 조직의 목표와 관리자의 책임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료 간에도 서로의 업무 부담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배려할 때 협력이 가능해진다. 결국, 뛰어난 인재가 많다고 해서 좋은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건강한 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다.
사업과 비즈니스에서도 역지사지는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소비자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어떤 가치를 원하는지?를 이해하는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고객 중심 경영 역시,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역지사지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성공한 기업들은 기술과 자본뿐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경쟁력을 키워 왔다.
갈등 해결에서도 역지사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갈등 상황에서는 상대방 역시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감정적인 대립을 줄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해는 곧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려는 과정 자체가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사회에서는 공감 능력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만이 가진 공감과 소통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과 기술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만이 가진 중요한 역량으로 평가받고 있다. 뛰어난 학력과 전문성을 갖추었더라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역지사지는 단순히 남에게 맞추거나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과 무조건 참거나 희생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건강한 인간관계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원칙과 가치 역시, 지켜 나가는 관계를 의미한다. 역지사지는 일방적인 양보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출발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은 이해받기를 원하면서도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는 인색할 때가 많다. 존중받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데 소홀할 때도 있다.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 거울과 같은 측면이 있다. 내가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할 때, 상대방 역시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모든 관계가 노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관계를 정리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많은 관계는 작은 이해와 배려, 그리고 상대방의 처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마음에서 회복될 수 있다.
결국, 인간관계의 본질은 기술이나 화려한 말솜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며, 진심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다.
역지사지는 오랜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온 삶의 지혜이며,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더욱 필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삶의 행복과 만족 역시, 결국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 한 번 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는 마음이야말로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일 것이다.
김 성 수
現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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