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물넷 대학생이 보는 20대의 정치 성향" 화제의 글 쓴 고은강 씨
"20대,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첫 세대"
"먹고사는 문제 해결 못하는데 '정의' 외치라는 건 비현실적"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6·3 지방선거 후, 소셜미디어에는 '20대가 정말 보수화·극우화되고 있는가'를 묻는 글이 쏟아졌다. 서울시장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 69.8%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는 결과가 나온 후였다. 오세훈 시장이 당선된 후, 기성세대는 저마다 청년을 '이해해 보려' 하는 글들을 쏟아 냈다.
그 사이에 한 편의 글이 등장했다. '스물넷 대학생이 보는 20대의 정치 성향'이라는 제목으로 한 대학생이 친구들의 말을 모아 쓴 이 글은 며칠 만에 널리 퍼졌다. 젊을수록 진보 성향 후보를 지지할 거라는 통념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 그는 20대가 취업과 내 집 마련, 성공을 위해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그는 "너희 힘들구나", "너희 극우화됐구나" 같은 평가보다, 왜 20대가 이런 선택을 내리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자고 썼다. 2030의 생각이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이 대학생의 글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400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1900명이 글을 공유해 갔다.
이 글을 쓴 고은강 씨는 국제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후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는 "세상을 양쪽의 눈으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자신의 가치관과는 별개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넓은 시야를 갖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더 심해질 극단의 시대에 넓은 시야야말로 기발한 대안과 타협점을 찾아낼 능력"이라고 믿는다. 6월 25일 고은강 씨를 만나, 페이스북에 올린 글 너머의 더 자세한 생각들을 물어봤다.
"침몰하는 대한민국호에서 내 구명조끼 확보하기" |
고은강 씨가 6·3 지방선거 직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요약하면, 20대의 시대정신은 "망해 가는 대한민국에서 나의 인생 지키기"다. 수능부터 취업까지 이어지는 '능력주의'와 '경쟁'은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룰이 됐다. 경쟁의 조건은 저마다 다르다. 부모가 서울에 집이 있는지, 남성이라 군 공백을 겪는지, 여성이라 안전을 걱정하는지에 따라 같은 20대라도 선택이 갈라진다. 그는 20대를 "가슴으로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일자리와 주거, 안보와 군 형평성, 여성을 향한 범죄 같은 실제적인 의제를 함께 풀 정치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고은강 씨는 인터뷰에서 20대의 시대정신을 더 직관적인 비유로 설명했다.
"구멍이 나서 침몰해 가는 대한민국호에서 나의 구명조끼를 확보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문제가 없었던 시대는 없지만, 어느 시점부터 배에 구멍이 나 있었고 물은 계속 차오르고 있죠. 한정된 것을 놓고 다툴 수밖에 없는 현실, 그게 침몰하는 배라는 비유로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고은강 씨는 자신의 말이나 글이 '정답'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주변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에서 길어 올린 관찰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보기에는 인구 구조와 지방 소멸, 성장 둔화가 '대한민국호'를 가라앉히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출생은 줄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기존 인구 구조로 가능했던 국방이나 경제성장 자체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청년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빠져나가면서 지방은 경쟁력을 잃고, 그만큼 서울 집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봤다. 지방 일자리에서 인력이 외국인으로 빠르게 교체되며 생기는 갈등도 같은 흐름에 있다고 봤다. 고은강 씨는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사회 갈등이 커지는 건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나타났던 현상이다. 우리도 비슷한 국면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개인주의화되는 20대에게 중요한 가치, '공정' |
'침몰해 가는 대한민국호'의 비유에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는 갑판 위에서는 청년 남녀가 구명조끼를 두고 손가락질하며 싸우고, 정작 배의 회의실에서는 여야 정치인들이 구멍과 상관없는 이야기로 다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민생이나 향후 수십 년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정책이 논의되기보다는 정쟁과 네거티브 등 싸움만 이어지는데, 청년 입장에서는 구멍을 막을 권한을 가진 '선장'에게 좀 더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영남과 호남에서 20대 표심이 조금씩 바뀌는 것도, 한 지역을 오래 맡았던 당에 책임을 묻는 형식이라고 봅니다."
그는 2030 세대의 투표 결과를 '탈이념화'로 설명했다. 이념이 아니라 현실의 득실을 따져 표를 정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논리에 종속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긍정적으로 보자면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첫 세대"일 수 있다고 했다.
20대가 공정과 '내로남불'에 민감한 이유를 '경쟁 시스템에 대한 순응'에서 찾았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리라 이미 체념하고 있기에, 결과의 공정성보다 기회의 공정성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경쟁을 통해 얻어 낸 자리는 기꺼이 인정해 주는데, 비례대표나 할당제로 올라온 청년 정치인은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는 게 아니라, 기회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가지를 먼저 제안했다. 먼저는 타인의 평가로 내 삶을 채점하는 시선을 거두고 '사다리'를 늘리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를 내 시험지 채점하는 용도로 쓰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로 자기 삶을 평가하는 문화부터 풀려야 한다. 그리고 원하는 경쟁 구도가 있다면 사다리를 더 놓아서 겨뤄 볼 수 있게 해 주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2030이 개인주의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공동체성과 연대가 부족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회식과 음주가 줄고, MT 문화가 옅어지고, 서울 주요 대학에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단체에 속해 있어도,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걸 존중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 공동체 자체보다 '내 삶에 도움이 되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동체라는 단어에 매기는 배점 자체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모든 청년들에게 집 한 채씩 있다면, 공동체와 연대의 가치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청년이 훨씬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정치 활동도 늘어날 거고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가치에 높은 배점을 주라고 말하는 건, 타당성을 떠나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비교'하고 '평균값' 올리게 만드는 소셜미디어 |
고은강 씨는 경쟁만큼이나 '비교'가 20대의 삶을 고달프게 한다고 했다. 절대적 지표로는 살기 좋아지고 있지만 상대적 박탈감은 오히려 심해졌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누가 어디 살고 무엇을 가졌는지, 어디로 여행 가고 무엇을 먹는지, 그리고 연인·배우자에 대한 기준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평균을 계속 올라가게 한다고 했다. "기존 인간관계의 네트워크가 아닌 낯선 사람들의 릴스를 보면서 박탈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럴수록 더 문제가 심해질 것 같다"고 했다.
온라인에서는 젠더·정치·사회 등 모든 면에서 격렬한 갈등이 벌어진다. 고은강 씨는 온라인상에서 혐오 표현과 멸칭, 분노가 넘치지만 현실의 친구들은 온건한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온건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한국 개신교가 극우 세력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온라인에 비치는 극적인 목소리가 일반화되는 거지, 현실의 교회 대부분은 온건하다"고 말했다.
"줄을 쭉 세우면, 온라인에서는 양 끝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요. 현실에서는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상대 의견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죠. 어쩌면 현실의 분노는, 온라인의 극단적인 목소리를 향한 분노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고은강 씨는 가짜 정보가 퍼지는 방식을 직접 들여다보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초등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중국인 무비자 입국이 화두에 올랐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게시물이 퍼지던 때였다. 친구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 자리에서는 '설마' 하며 넘겼지만, 그는 게시물을 따로 받아 들여다봤다. 우파 스피커들을 중심으로 같은 경고가 반복해서 올라오고 있었고, 공유 수가 1~2만 회에 이르는 게시물도 있었다. 그 주에 그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한 형이 "무비자 입국이 시작된다던데 진짜 큰일 나는 것 아니냐"고 물어 왔다. 더 자세히 조사하려고 인스타그램에서 관련 게시물을 저장하기 시작하자, 이번엔 그의 알고리즘이 통째로 선동성 콘텐츠로 바뀌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 경험에서 그는 양산형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책임질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자극적으로 게시물을 올린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언론사나 기자가 이름을 걸고 올리는 게 아니라, 평범한 운영자가 조회 수를 좇아 두 줄짜리 검증되지 않은 문구를 올리면 그게 빠르게 퍼지고 쉽게 믿어진다"고 했다. 릴스 같은 숏폼은 전체가 아닌 맥락의 단면만으로 상황을 판단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고은강 씨는 보수적인 교회 환경에서 자란 크리스천이기도 하다. 개신교인으로서,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시선 역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개신교 일부가 광장의 정치와 결합하는 흐름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같은 청년 기독교인으로서 그 마음을 부정하기보다 방향이 아쉽다고 했다.
"주류 기독교도, 극우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가장 먼저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행동한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 자체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다만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기독교를 향한 시선이 나빠지고 불편해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는 것도 체감해요. '과격한 기독교'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건 의도와 결과가 어긋나는 안타까운 지점이죠.
사회에서 인정만 받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도 없고, 그게 건강하다고 보지도 않아요. 성경에 바탕을 둔 목소리에 더해서, 약자나 소수자를 향한 섬김과 배려도 사회에서 그만큼 조명됐으면 좋겠어요. 기독교가 빛과 소금의 역할로 더 폭넓은 가치를 보여 주고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청년은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교회에 젊은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는 아우성이 들린 지 오래다. 고은강 씨는 교회가 생존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힘을 주고 위로를 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이 회복되고 충전되는 예배가 없으면 청년의 니즈를 채울 수 없어요. 교회에서 봉사나 행사를 다 없애더라도, 모두가 진심으로 예배드리고 에너지를 얻는 방향이라면 그게 훨씬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교회 가는 게 에너지를 뺏기는 일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샘처럼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 일이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