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검이 악마의 숨통을 끊었다.
─경멸받거라, 용사여.
그것이 한 악마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수고하셨어요, 용사님."
"이번에는 운이 좋았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후훗, 용사님께서는 항상 그렇게 겸손하시죠."
나의 소꿉친구, 나와 미래를 약속한 연인, 여신에게 선택받은 성녀.
언제나처럼 나에게 다가오던 그녀가 순간 멈칫거리며 당황한 듯 표정을 찡그렸다.
"음? 아르테아. 무슨 일 있어?"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들어서요. 기분탓이었던 걸까요?"
처음에는 그 정도에 불과했다.
약간의 불편함, 혹은 불쾌함. 그건 마을에 가서도 비슷했다.
"용사님께서 저희 마을에 방문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 역시 여신의 선택을 받은 한 명의 신도일 뿐이지요."
"…그런데, 용사님?"
"왜 그러시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불편하다는듯, 그리고 불쾌하다는듯 나를 대했고.
이러한 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분명해졌다.
"아르테아…."
"흐익?! 아, 요, 용사님이셨군요…."
"그, 혹시 반지는…."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요?"
"아, 아니야. 음, 늦은 시간에 미안."
"하아…. 다음부터는, 갑자기 말 걸지 말아주세요."
"미안해."
어린 시절 미래를 약속하며 선물했던 반지였다.
이제는 칠이 바래져 녹슬어버린 반지를 뭘 그리 끼고 다니냐며 물었을 때, 그녀는 '용사님께서 주신 거니까요…'라며 헤실헤실 웃어 넘기고는 했다.
─퍽.
"…계란?"
"윽, 냄새. 저, 용사님, 죄송한데 조금만 떨어져서 걸어주시겠어요…?"
마을 사람들이 나에게 계란을 던졌을 때에도.
화가 나거나 짜증이 일지는 않았다.
이게 그 악마의 저주 때문이라는 걸 깨달을 정도의 눈치는 있었으니까.
그보다는, 질색하며 거리를 두던 성녀의 반응에 조금 슬펐던 것 같다.
"…분명, 이번에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나는 용사니까."
그 순간이 되어서도.
나는 스스로가 용사라고 생각했다.
"아르테아. 비록 힘들겠지만, 우리 함께 이겨……."
"히익?! 제, 제 이름 부르지 말아주실래요? 어떻게 여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가…."
"……."
더 이상 성검이 나에게 응답하지 않게 되고서야.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르테아? 이게 무슨…."
"당신같은 사람이 용사라니,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흔히 성검의 선택을 받은 용사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지만.
사실 성검의 사용자를 결정하는 것은 여신을 대리하는 성녀의 일이었다.
만약 용사가 패배하거나 악에 물들 경우, 성녀는 성검의 소유권을 발동하여 성검의 사용자를 이전할 수 있었다.
"아르테아…?"
"내 이름 부르지 마 - !"
나는 더 이상 용사가 아니었다.
성검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도 용사가 되고싶다 노래하던 고향의 한 소년에게 돌아갔다.
어린 시절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었다.
"…이곳은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돌아가주시지요."
나에게 검을 가르쳐준 왕국의 성기사.
나의 스승이자 친우였던 그녀 역시 나를 외면했다.
"야, 내가 마법 새겨준 마법이랑 목걸이 내놔라? 아, 아니다. 네가 쓰던 거 받기도 싫고, 네가 내 물건 쓰는 것도 싫으니까 어디 묻어버리거나 태워버려라."
나를 응원해주던 마탑의 마법사.
나의 동료이자 친우였던 그녀 역시 나를 증오했다.
"하하……."
문득, 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동안 운이 참 좋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인 걸까.
"……."
옛날 생각이 떠올라 고향의 숲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여신의 선택을 받고, 그녀에게 성검을 건네받던 기억이 떠올랐다.
참 행복한 추억들이다.
나는 추억의 끝자락에 올라섰다.
"……."
바람이 불어왔다.
용사의 몸은 생각보다 튼튼해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 정도로는 쉽게 망가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 꽤 오랫동안 살아남아서는, 그제서야 내가 죽어간다는 걸 실감하겠지.
"…."
몸이 가볍다.
상쾌하다.
풍경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네.』
그리고, 악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절망하고있구나?』
떨어지던 몸이 느려진다.
검은색 바람이 나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안는다.
풀썩.
나는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뭇잎 틈새로 스며드는 하늘이 새파랬다.
『아, 그렇구나. 그 녀석, 재미있는 저주를 걸었네. 끔찍할 정도로 효과적이라서, 세계의 운명이 뒤틀리고 있고. 내가 깨어난 것도 그 때문인가?』
하늘을 가리며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까마귀는 땅에 내려앉을 적에 한 명의 소녀로 변해있었다.
기이한 일이다.
『알았다. 너,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구나?』
쪼그려 앉은 소녀가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에게 속삭였다.
『그런데 어쩌지? 이제 곧 세계가 멸망할텐데. 그 아이 때문에 운명이 너무 뒤틀려서, 잠들었던 악마들이 전부 깨어나고 있거든.』
한쪽이 부러진 뿔은 검은 산양을 닮았다.
그녀의 흑단같은 머리카락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네가 사랑하는 그 여자, 이대로면 세계와 함께 무너질텐데. 그래도 괜찮아?』
허나, 그런 모습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뱉는 이야기만이 나의 뇌리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제 그만 일어서는 게 어때? 너, 아직 더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몸이 무거워 살짝 휘청였지만, 곧 균형을 잡고 일어설 수 있었다.
『악마를 잡으려면 성검이 필요하겠네. 다행히, 내가 예전에 주워둔 게 하나 있어. 이게 너한테 필요할 것 같은데….』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먼지와 때로 얼룩진 검 하나가 들려있었다.
초라하고 너저분한 검이지만, 나는 그것이 성검이라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와 계약하겠어?』
아.
나는 아직 용사일 수 있구나.
그녀를 위해서 더 싸울 수 있구나.
『결정했으면, 이 검을 잡아.』
행복하다.
『좋아. 나의 계약자. 나는 절망을 먹는 베르티아. 부디 나를 위하여, 계속 절망해주기를 바라.』
"베르티아."
『응, 베르티아야.』
"악마가 어디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어?"
나는 웃었고, 악마도 미소지었다.
『물론이야.』
***
'이 정도로 맛있는 절망은 처음이네.'
용사라는 족속들은 전부 이런 걸까.
이럴줄 알았으면, 그날 용사 녀석을 잡아먹지 말고 조금 더 가지고 놀 걸 그랬어.
"베르티아."
『응?』
"다음 악마는 어디에 있어?"
『바로 가려고?』
이 녀석도 참 신기한 녀석이야.
이토록 강렬한 절망을 느끼고 있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웃으면서 싸울 수 있는 걸까.
"응, 조금이라도 더 악마를 사냥하고 싶으니까."
『나도 악마인 건 알고 하는 이야기지?』
어쨌든, 이 녀석을 이용해 최대한 힘을 되찾아야지.
***
『쯧, 괜찮아?』
"조금 허전하기는 한데…, 생각보다 그렇게 아프지는 않네."
'저게 팔이 잘려나가고 할 수 있는 말인가?'
너무 무리하게 싸운다 싶더니, 결국 악마에게 팔 한 쪽을 잃고 말더라.
하여간 어설픈 녀석이다.
'절망이 별로 늘어나지 않은 거 보면, 정말로 팔 하나 잘려나간 건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본데….'
조금 장난 좀 쳐볼까.
『아, 오늘 네 생일이지?』
"응? 아, 벌써 그렇게 되었나?"
『그러고보니, 오늘 성녀랑 그 꼬마 용사도 약혼하더라? 이제 네 생일은 성녀 약혼 기념일이네. 내년에 정식으로 결혼하면 결혼기념일도 될테고.』
"……어?"
절망이 차오른다.
그 어떤 사람보다도 달콤하고, 진한 향기를 풍기는 절망.
사랑스럽다.
『보여줄까?』
"…응."
권능을 약간 발휘해서, 다른 공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창을 만든다.
창 너머로 한 소년이 성녀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는 것이 보인다.
『감상이 어때?』
"아, 아아…."
절망이 넘쳐흐른다.
이토록 강렬한 절망이라면, 세계 하나 정도는 망가트릴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누구라도 일 년의 예비일이 지나기 전에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든다면, 외도의 죄를 물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이 예비일 동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여, 확신이 든다면 그날 진정으로 혼약을 맺을 것입니다."]
창 너머로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모습을 본 용사의 반응은….
"베르티아."
『응?』
조금 예상 외의 것이었다.
"내 팔을 고쳐줄 수 있지?"
『가능은 하지만, 미래의 회복을 당겨오는 거라 수명이 꽤 줄어들텐데?』
"고쳐줘."
『어째서?』
"두 사람의 약혼을 축하해주고 싶어."
『…어?』
예상치 못한 용사의 말에 잠시 넋을 잃었지만.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뭐, 좋아.』
"고마워."
잘려나갔던 팔이 다시 자라나자.
용사는 박수를 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약혼 축하합니다…. 약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성녀의…."
'이건 생일 노래 아닌가?'
바보같은 노래지만, 그 꼴이 썩 웃겼다.
용사에게서 흘러나오는 절망도 달콤하고 말이다.
『푸흐흣, 푸하핫 ─ .』
"약혼 축하합니다…."
노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약혼식이 전부 끝나고, 하객들이 전부 자리를 비우고 나서도.
약혼식 장소와 연결된 창을 꺼버려도.
계속.
끊임없이.
"약혼 축하합니다…."
『…쯧, 좀 적당히 하지 그래?』
아무래도 절망에 잡아먹혀서 망가져버린 모양이다.
이대로 모든 걸 포기해버리면 조금 아쉬울 것 같아, 케이크를 한 조각 소환해 용사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용사, 너도 태어난 거 축하해."
뚝.
박수를 치며 노래하던 것을 멈춘 용사가.
자신의 얼굴에 묻은 케이크를 슥, 치워내더니.
해맑게 미소지었다.
"고마워. 덕분에 힘이 났어. 자, 그럼 다음 악마 잡으러 가볼까?"
『…너 좀 모자라 보이는 거 알아?』
"마법사도 항상 그렇게 말하더라."
***
『적당히 하고 좀 자는 게 어때? 너 일주일 동안 한숨도 안 잔 거 알아?』
"하지만, 아직 악마들이 남아있잖아?"
『…하.』
이대로 가다가는 완전히 망가질 게 뻔하다.
그래서야 절망을 더 삼킬 수도 없으니, 억지로라도 재워야겠다.
『잠시 눈 좀 붙여.』
나는 마법으로 용사의 눈을 감기고, 꿈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걸로 좀 낫겠지, 생각하던 도중.
꿈에 빠져든 용사에게서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절망이 흘러나왔다.
『…어?』
'이런 게, 겨우 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절망이라고?'
이래서야 완전히 과식하는 꼴이다.
아니, 그보다 무슨 악몽을 꿔야 이렇게 짙은 절망에 가라앉을 수 있는 걸까.
호기심이 들었다.
'살짝 훔쳐볼까?'
잠에 든 용사의 머리 위로 손을 올린다.
'...?'
정신 방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의 내면을 훔쳐보는 게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이.
단순히 지쳐서 그렇다기에는, 오히려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그만큼 사랑에 고프다는 걸까.'
관심과 사랑.
그 모든 걸 누려왔던 용사기에, 잃은 지금 더 괴로우리라.
오직 행복했던 자만이 진정으로 절망을 안다.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용사가 어디에 있으려나~♬』
부드럽고 따스한 꿈이다.
햇살이 살갗을 간지럽히고, 살랑이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날씨가 좋다, 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놓으면 이럴까.
악몽에는 어울리지 않는 날씨다.
그 봄날의 한 가운데 용사가 있었다.
"우와, 형이 정말 용사야?"
"응. 그렇다고 하시네."
"그 바보 이반이 용사라니~."
"나도 용사하고 싶다! 완전 멋있어!"
용사의 옆에는 두 사람이 더 서있었다.
어쩐지 익숙한 얼굴에 기억을 되짚어보니, 성녀랑 그녀와 약혼한 용사 꼬맹이였다.
"아르테아, 너는 곧 성국으로 간다며?"
"으으, 성국 사람들은 서로 전부 존댓말만 쓴다고 하더라? 항상 벙긋벙긋 미소만 짓고. 어엄~청 답답할 것 같아!"
"푸흣, 그래도 가야지. 성녀잖아?"
"흐흫, 그렇지?"
세 사람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악몽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화목하고 따스한 풍경이지만.
분명, 용사는 절망하고 있었다.
"에디 너도, 분명 멋진 용사가 될 수 있……."
『….』
용사와 나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고.
나는 금방 눈치챘다.
아, 용사 이 녀석.
이게 꿈이라는 걸 알고있구나.
"이반?"
"형?"
"어,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손님이 온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며, 용사는 나에게 한 걸음 걸어왔다.
살갗을 간질이던 햇살이, 살짝 따가워졌다.
용사가 또 한 걸음, 나에게 다가왔다.
꽃가루의 향기가 너무 짙어서, 살짝 현기증이 돌았다.
"…."
『….』
"베르티아."
『….』
"나, 꼴사납지?"
용사의 뒷편에서 소년과 성녀가 미소지었다.
그제서야, 나는 문득 깨달았다.
절망은 구름과 함께 찾아오지 않고, 죽음은 비와 함께 파묻히지 않는다.
하늘은 언제나 무정하고.
사람은 모든 계절에 상처받는다.
『…』
모르겠다.
그 무엇보다 달콤해야 할 절망이, 초콜릿처럼 씁쓸하다.
그러니, 용사.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야 ─ .
*
"…아, 베르티아."
『….』
"나를 생각해서 재워준 거지? 어쩐지 좋은 꿈을 꾼 모양이라…, 조금 기분이 나아졌어. 고마워."
『…바보 아니야?』
"하하,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그립네."
그 미소를 보고서야.
내가 도망치려던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도 참, 악마답지 못하다니까.』
이 사람과 계약을 맺고 싶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추억하며 절망을 살아가는 이 사람을.
어느 순간이고 나에게 삼키어질 이 아이를.
잡아먹고 싶다.
"...베르티아? 무슨 일이야?"
『네 이름을 들려줘.』
"이름?"
『그동안 제대로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잖아?』
"...그렇네. 응, 확실히 그래."
물론 이름 정도는 알고 있지만.
때로는 형식이 더 중요할 때가 있으니까.
"나는 이반이야."
『나는 베르티아. 절망을 먹는 베르티아야.』
사람들이 말하길.
악마를 잡는 건 바보 이반이라.
머리가 망가진 악마가 이반의 손등에 입맞췄다.
*
─ 오만한 영웅아. 너는 그 오만 때문에 죽을 것이다.
악마의 창이 나의 검을 쳐냈다.
그 한 합을 나누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악마, 나보다 강하다.
그래서 미소를 흘렸다.
동료들과 함께 여행할 때는, 언제나 나보다 강한 악마만을 상대해왔으니.
그리워서, 행복했다.
─ 주제를 모르고 달려드는구나. 물러설 때를 아는 것도 미덕이다. 만용은 죄요, 핏값은 죽음이라.
"하하, 하하하!"
검을 휘둘렀다.
손아귀가 터져나가고, 팔이 욱신거리고, 온몸이 뻐근하다.
나는 아직 살아있었다.
─ 어리석은!
"하하하하! 하하…, 하?"
익숙한 향기가 났다.
나무 그늘에서만 맡을 수 있는 풀냄새를 닮은 향기다.
나는 악마와 싸우고 있던 사실마저 잊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아르테아…?"
─ 어딜 보는 것이냐! 오만하구나!
그녀였다.
그녀가, 나를 보고있었다.
나는 악마와 싸우고 있었고, 그녀는 그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익숙하다.
그립다.
행복하다.
"아아, 아르테아."
"…이반?"
악마의 창이 어깨를 꿰뚫었다.
검을 제대로 쥐기가 힘들다.
"오랜만이야."
"…."
그녀는 찡그린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노려보다가.
나를 향하여 손을 뻗었다.
상처를 치료해주려는 걸까, 기대하던 그 순간.
그녀의 속박 마법이 나의 몸을 묶었다.
"…아."
익숙한 감각이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
"23점."
"치이, 너무 야박한 거 아니야?"
사실, 너는 그때부터 꽤 약은 구석이 있었던 것 같아.
실망한 척 고개를 획 돌려버리고는, 내가 웃으며 위로해주려고 다가가자 몰래 기술을 사용했었지.
"읏차, 깜짝이야. 이건 빵점짜리네."
"뭐어! 맞지도 않았잖아!"
그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볼을 부풀린 모습이 참 귀여워서, 웃었던 기억이 나네.
"그러니까 빵점이지. 기회가 왔을 때 맞추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까."
"흥. 치사해."
"푸흣."
"웃지 마!"
*
아.
그랬구나.
너는, 이 기술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던 거구나.
계속 연습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토록 훌륭하게 완성했구나.
"푸흐...."
어쩐지 웃음이 흘러나왔다.
행복하다.
"백점이야."
악마의 창끝이 내 심장을 꿰뚫었다.
아, 지금 무척 두근거리고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심장이 멈춰버리다니, 조금 아쉬ㅡ.
.
.
.
"…어? 나, 방금 무슨 짓을 ─ ."
용사의 죽음과 함께 저주는 풀렸다.
결국 후회만이 남으리라.
#
그리고 계약한 악마가 계약에 따라 용사 영혼 거두면서 시작하는 후피집물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