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웨딩 시대, 결혼예배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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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18.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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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결혼식을 꿈 꾸시나요?

마 전에 뉴스 기사 중, '노웨딩 시대'에 관한 기사를 봤다. 말 그대로 요즘은 결혼식을 하지 않고 있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는 기사였다. 노웨딩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례없는 결혼식부터 가족과 친한 지인만 초청하는 스몰웨딩도 인기인 거 같다.

반가웠다. 진작 이런 방향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11년 전, 내가 결혼할 때도 최대한 간소화해서 결혼을 했었다. 웨딩촬영도 하지 않았고, 예물과 예복도 생략했다. 이건 비단 물질을 줄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보다 더 본질적인 것에 포커스를 맞춰 결혼을 하고 싶었다.

이모! 저는 언제 결혼할 수 있을까요..?

왜 결혼예배를 드려야 할까?

세상은 결혼식을 하지만, 크리스천은 결혼예배를 드린다. 왜 크리스천은 결혼을 예배로 드려야 할까. 말그대로 이 결혼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우리는 그 앞에서 언약을 맺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결혼식과 결혼예배는 같은 자리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이 전혀 다르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다. 하객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모이고, 얼마나 화려했는지, 얼마나 근사했는지가 오래 기억된다.

그러나 결혼예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다. 두 사람은 무대 위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언약의 당사자가 된다. 우리가 사랑해서 만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불러 세우신 자리다. 그래서 결혼예배의 핵심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결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결혼이 사람의 일이라면, 사람의 마음이 식으면 끝난다. 감정이 주인이면, 감정이 떠날 때 관계도 떠난다. 오늘날 수많은 결혼이 무너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을 결혼의 토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토대가 아니라 열매다. 토대가 흔들리는 것 위에 집을 지으면, 그 집은 결국 무너진다.

하지만 결혼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맺은 언약을 우리가 지키는 게 아니라, 그 언약을 세우신 분이 붙드신다.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이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감정이 식는 날에도 우리를 붙드는 것은,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그 언약의 주인이다.

크리스천에게 결혼은 '식'이 아니라 '예배'여야 한다. 예배는 본질적으로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다. 결혼을 예배로 드린다는 것은, 이 가정의 주권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처음부터 고백하는 것이다.

저는 신혼여행을 아쿠아리움으로 가고 싶어요!

결혼의 본질은 무엇일까?

'노웨딩'이나 '스몰웨딩'은 단순히 비용을 아끼는 트렌드가 아니다. 오히려 크리스천에게는 본질로 돌아가는 회복일 수 있다. 화려한 식장, 값비싼 예물, 길게 늘어선 하객 명단을 걷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하나님과, 그 앞에 선 두 사람과, 그들이 맺는 언약만 남는다. 이것이 결혼의 본질이다.

11년 전, 내가 웨딩촬영도, 예물도, 예복도 생략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줄이고 싶었던 것은 비용이 아니라 군더더기였다. 정말 남겨야 할 단 하나,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에 집중하고 싶었다.

세상은 묻는다.

'결혼식은 어디서 해?'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

'집은 어디에 구했어?'

하지만 하나님은 물으신다.

'너희는 내 앞에서 무엇을 약속했느냐?'

'앞으로 너희 가정의 주인은 누구냐?'

'감정이 식어도, 내 안에서 계속 사랑할 수 있느냐?'

크리스천의 결혼은 이 질문에 답하는 자리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식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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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만빠

reform dad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