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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글] 에드워드 7세의 죽음 - 下

    Ashige_goo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6.06.29 13: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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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 7세의 여성 편력은 어릴적부터 퍽 유명했다. 도덕주의로 들어찬 빅토리아 시대라지만 개중에서도 유별나게 억압적이었던 부모,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강압에도 불구하고 성년이 되어갈 무렵의 왕세자는 무지무지하게 복잡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다. 결혼 전부터 그랬다.


     결혼 후에도 에드워드는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왕세자비-왕비 입장에서는 나빠졌다. 젊은 날의 그는 자기 사생아를 밴 것이 거의 분명한 여자도 내치며 겉으로나마 깨끗해보이려는 노력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정부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달리 말하면 알렉산드라 왕비는 어느순간부터 자기 남편의 불륜녀와 무도회장에서 만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체 하고서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맞바람이 있었다면 억울하지 않기라도 하지. 알렉산드라는 에드워드에게 아주 충실했다. 신혼이 지나고, 아이를 여럿 낳으며 신혼이 끝난지 오랜 시점이 되어서도 남편을 '천사 같은 버티' 라고 부르며 남편을 거의 숭배하듯이 섬겼다. 스스로를 무한대에 가깝게 속인 것은 덤이다.


     남편의 친구인 랜돌프 처칠 - 그 유명한 윈스턴 처칠의 부친이다 - 이 에드워드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불륜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물들을 직접 그녀에게 들이대고서야, 그녀는 남편에 대한 자기기만적 기대를 접을 수 있었다. 이때가 결혼 13년차. 남편은 속죄의 의미로 열흘동안 아내와 단 둘이서만 저녁을 먹었고, 참회하는 척을 했지만 - 이 와중에도 둘 모두 에드워드의 바람기는 잠시 중단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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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남편에 대해 조금 냉담해졌다고 해서 그녀의 충실함이 아주 꺾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인내했다. 남편을 원망하더라도 다정하고자 노력했다. 남편의 바람기에 도무지 못버틸 때면 덴마크의 친정으로 가거나, 아니면 샌드링엄 하우스에 은거하며 아이들의 양육에 집중하며 내면으로 도망치며 자신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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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이름의 여왕이 통치하는 시절이라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으나 - 이 시대는 이혼이 금기시되던 빅토리아 시대. 알렉산드라는 계속 참으면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갔다. 대중들은 이 옷 잘 입고 자선사업 잘 하는 다정한 어머니, 인내하는 아내이자 며느리인 알렉산드라를 사랑했다. 그녀의 남편이나 시어머니보다 더.


     단, 알렉산드라는 이 대중들의 사랑을 남편의 사랑의 대안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어느정도 능동적으로 여론을 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러면서도 남편을 사랑하기를 멈추지는 않았고,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에드워드 7세의 전기문 작가들과 알렉산드라 왕비의 전기문 작가들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다.


     비대한 몸에도 불구하고 움직이길 멈추지 않고 여자 곁을 맴도는 왕 때문에 그 기대는 오랫동안 보답받지 못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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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왕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클럽도, 경마장도, 정부들의 응접실도 찾아가지 않는다. 가만히 누워있을 뿐이다.


     왕비는 왕의 측근들에게 자신은 "돌처럼 굳어버려 울 수도 없고, 이 모든 일의 의미를 깨달을 수도 없으며,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하며 비탄을 표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측근들은 그녀가 잠든 아이 처럼 가만히 누워있는 왕의 주변을 맴돌며 그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모습도 보았다. 국왕의 총신 중 하나인 에셔는 이 풍경에 대해 "그녀가 그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자신의 청춘의 연인이자 — 내가 굳게 믿기로는 — 평생의 연인이었던 남자를 완전히 소유하게 된 여성의 행복이었다." 라고 회고했다.


     이 모습을 본 사람 중 하나인 피셔 제독도 묘한 평을 남겼다 - "나는 왕비가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있었소."


     왕비는 오랫동안 방부처리된 왕을 독차지했다. 서거 나흘 차부터 왕을 관에 안치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왕비가 왕과 떨어지기를 거부한 탓에 나흘이 더 걸린 것이었다. 여드레째가 되어서야 왕의 시신이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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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사적인 순간은 끝났다. 5월 14일, 왕의 시신이 알현실에 안치되었다. 사흘 뒤인 5월 17일 11시. 운구 행렬이 시작되었다. 죽은 왕의 관은 포차 위에 실려 크림색 실크 덮개에 덮여 있었으며, 그 위에는 왕관과 홀, 보주가 놓여 있었고 검은 말들이 이를 끌었다. 새 국왕, 조지 5세가 가신단을 이끌고 뒤를 이었으며, 그 뒤로 왕실 여인들을 태운 아홉 대의 마차가 뒤따랐다.


    대중들은 관, 또는 선홍색과 금색의 스테이트 마차에 올라탄 알렉산드라 왕대비를 보며 남자는 모자를 벗었고 여자들은 고개를 숙여 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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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시신은 이후 사흘간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되었고 대중들에게 공개될 예정이었다. 왕의 시신을 대중들에게 공개한다는 사실, 그리고 하필이면 웨스트민스터 홀이 찰스 1세의 재판이 이루어진 불길한 곳이라는 점 때문에 왕실 인사들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에드워드 7세가 시작한 '대중적 군주정'의 이미지를 위해 이 결정은 끝끝내 관철되었다.


     안치가 완료되고 왕실 인사들이 떠난 5월 17일 오후 4시. 마침내 웨스트민스터 홀이 개방되었다.


     둑길을 따라 1마일에 달하는 줄이 늘어섰으며 맨 앞줄에는 '매우 남루한 차림이지만 지극히 경건한 모습'의 재봉사 세 명이 서 있었다.


     문이 열리자 "이제야 그분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는군요." "이제야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라고, 추모 행렬에 끼어 있던 노동계급 소녀가 외쳤다.


     다만 들어와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발소리를 죽이기 위해 카펫이 깔려두기까지 했기에 왕이 안치된 홀은 매우 조용했다.


     침묵 속에 추모의 흐름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날 밤, 많은 이들이 오전 6시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검은 우산의 숲을 이룬 채 8시간을 꼬박 대기했다. 대기에는 계급도 존재하지 않았다. 귀족, 중산층, 노동계급이 모두 섞여 있었다.


     다음 날, 5월 18일엔 추모를 위한 줄 4마일 길이에 6열 횡대로 늘어났고, 마지막 날인 5월 19일에는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12열 횡대의 줄이 7마일이나 이어졌다. 그날 오후, 카이저의 방문을 위해 홀이 폐쇄되었다.


     왕은 죽고 나서야 여드레 동안 아내에게 돌아와 그녀의 혼잣말을 가만히 들어주었듯, 죽고 나서야 사흘동안 대중과 직접 마주하여, 수없이 많은 남녀 노동자들의 행렬이 관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더 타임스>는 인류 역사상 군주의 서거가 이토록 광범위하고 인상적인 슬픔의 발로를 불러온 적은 없었다고 평했다.


     그리고 다음 날. 국장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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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고전으로 남은 8월의 포성의 첫 문장을 인용하자면, "1910년 5월 아침, 영국왕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에 참석한 아홉 명의 국왕들로 구성된 가마 행렬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중에서 특기할만한 사람은 단연 빌헬름 2세. 삼촌과 관계가 썩 좋지 못했고 영국과의 관계가 끔찍했던 그는 불쾌한 조문객이 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정작 장례식에 참여했을때는 비교적 얌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국을 모욕하기에는 제격인 사람, 삼촌의 불륜녀 케펠 부인이 자신을 만나려 하는 것도 거절했으니까.


     단, 왕들의 행렬과 관 마차 사이 주인을 쫄쫄 따라가던, 곧 카이저인 자신의 앞을 거니는 에드워드 7세의 애완견 Caesar을 보고선 불쾌해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지엄하신 왕들이 아닌 평범한 대중들에 대해서라면, 국장을 보기 위해 많이도 몰려나왔다.


     화이트홀의 인도는 사람들이 너무 빽빽하게 들어차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였고, 하이드 파크에는 20만 명에서 3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줄은 100야드 깊이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행렬을 보기 위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으며 경찰은 그들을 막기 위해 나무 몸통에 가시철사를 감아두기까지 했다. 많은 이들이 전날부터 한 끼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으며, 1,600명이 응급 처치를 받았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거리는 시끌벅적할 법 했지만, 막상 운구 행렬이 지나갈 때 군중은 기묘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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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간, 파리 뤼 다게소의 성공회 교회에는 대통령 아르망 팔리에르, 영불 협상의 주역 테오필 델카세, 그리고 앞으로 아주 중요한 일을 할 조르주 클레망소 등 일련의 프랑스 정치인들이 모여들어 왕의 죽음을 추모했다. 프랑스 대통령이 성공회식 예배에 참석하여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영불관계는 참으로 다른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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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선왕이 된 에드워드 7세는 조지 5세의 의중을 따라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 묻혔다.



     이렇게 에드워드 7세의 죽음은 마무리되었고, 조지 5세의 시대가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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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에드워드의 시대는 아직 죽지 않은 것 같았다. 에드워디안 정치적 방법론과 그 시대의 위기 모두 살아있지 않은가.


     물론, 추모 열기는 잠깐 에드워드 통치 후기를 들끓게 하던 위기들을 잠재워두었다. 아일랜드인들과 얼스터인들은 잠시 목소리를 낮췄고 노동자들과 여성참정권자들 역시 잠시 운동을 자제했으며 자유당과 보수당 지도부는 스무차례 이상 비공개 회의를 열어 전쟁이 아닌 타협을 모색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는 잠깐에 불과했다. 1910년 겨울이 되면 문제가 다시 끓어 넘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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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정 위기 문제는 그나마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선왕은 보수당 지도부의 정권 인수 의사를 확인한 후 여차하면 자유당을 찍어 누를 생각이었으나, 아들에게 자신의 판단과 자신이 가진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아는 또 다른 사람인 비서관 놀리스는 다소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새 왕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저 오만불손한 로이드 조지가 "유쾌하지만 머리 속엔 별게 없다"고 평한 미숙한 왕 조지 5세는 자유당이 제시한 안 - 그러니까 재총선에서 자유당이 우위를 점하면 국민들이 자유당을 지지해줬다는 것으로 알아먹을 것. 그러니 왕은 귀족원에 자유당계 귀족들을 대거 임명해 보수당의 귀족원 지배를 종말시킬 것. - 을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1910년 12월에 열린 총선에서 자유당은 1당 위치를 사수했고, 왕은 약속한 대로 자유당계 귀족들을 서임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귀족원은 순수성이 완전히 끝장나느니 위험을 회피하자, 즉 헷징하자는 Hedgers와 도랑 속에 쳐박히더라도 끝까지 싸우자는 Ditchers로 나뉘어 분열했으나, 끝내 Hedgers가 이겼다.


     귀족원의 거부권을 무한하고 강력한 것이 아니라 2년간의 지연에 불과한, 하원이 3회 연속으로 통과시키면 무시될 수 있는 것으로 격하한 Parliament Act 1911이 통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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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래드스턴 시대의 개혁 대부분을 틀어막은 귀족원 거부권이 사라지자, 영국 자유주의자들과 아일랜드 온건주의자들은 마침내 희망을 보았다. 급진주의가 아닌 신사들의 토론과 타협으로 합법적 개혁을 이루어낼 순간이 마침내 도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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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더 이상 에드워디안 방법론이 통할 곳이 아니었다.



     총리 H. H. 애스퀴스의 여성 참정권에 적대적인 태도, 그리고 자유당 자체의 미온적이고 타협에 천착하는 태도. 그로 말미암은 타협책 법안들의 격추는 여성참정권 진영의 격앙을 이끌어냈고, 이는 서프라제트들의 급진화와 테러리즘으로 이어졌다.


     노동운동 역시 1911년부터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자유당 내각은 연금과 보험을 도입/확대하고 법원의 적대적 판례를 깨는 친 노조적 법안들을 통과시켰지만, 현장에선 기존의 방식 곧 조정위원회, 중재, 공식 교섭 따위가 먹히지 않는다고 느꼈다. 철도/항만/광산 등 기간 산업을 중심으로 파업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1911년엔 903건의 파업이 있었고, 1912년엔 857건의 파업이 있었으며, 1913년에는 1,497건의 파업이 있었다. 1914년 역시 파업성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아, 상반기만 해도 파업이 거의 천여건에 달했으며, 광산-철도-운수 노동자들이 한데 뭉쳐 삼각 동맹Triple Alliance을 형성했다. 국가 기간 산업을 완전히 장악하고 잠시동안 국가를 멈출 수 있는 힘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파업을 하나 하나 각개격파하며 임시로 상황을 수습하던 에드워디안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다소 곤혹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문제는 아일랜드였다. 자유주의자들과 아일랜드 의회당원들은 더블린에 아일랜드 전역을 총괄하는 자치의회를 만드는 Home Rule을 다시 쏘아올렸다. 19세기 말에 두번 거부된고로, 이번이 세번째였다. 귀족원은 거부했지만, 앞서 말했듯, 1911년 의회법 이후 귀족원은 거부자가 아니라 지연자에 불과. 결국은 통과될 예정이었다.


     영국 자유주의자들은 로이드 조지가 Home Rule에 대하여 남긴 말, '이 땅의 모든 시민적 자유에 필수적인 모든 것을 위해 싸우는 일'로 반응을 요약할 수 있겠다. 즉, 이를 환영했다. 아일랜드를 자치라는 형태로 온건히 해방하는 것은 글래드스턴 시절부터 전해내려온 오랜 꿈이기도 했다.


     아일랜드인들 역시 대부분 환호했다. 공화주의 정당 신페인의 창립자 아서 그리피스는 "이것을 자유라고 부른다면 사전 편찬자들이 우리를 속인 것"이라고 말했지만 대부분의 아일랜드 인들은 그를 무시했다. 아일랜드 의회당의 오랜 꿈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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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얼스터의 개신교도-연합주의자들을 격앙시켰다. 이들은 Home Rule을 Rome Rule로 규정하며, 곧 죽어도 바티칸의 지배 하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방해왔다.


     여태까지는 보수당-귀족원을 장악한 보수 엘리트들의 보호 때문에 입법의 선에서 보호받았으나, 이제는 그렇지도 않은 상황. 얼스터 연합주의자들은 행동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1912년 9월 28일. Home Rule이 하원에서 입법 절차에 들어가고나서 대략 반년 뒤. 오십만여에 달하는 얼스터인들이 Home Rule에 반대하는 얼스터 언약Ulster Covenant과 얼스터 여성 선언Ulster Women's Declaration에 서명했다. 1913년 1월에는 얼스터 의용군Ulster Volunteer Force가 창립되며 얼스터 무장의 효시를 알렸다.


     웨스트민스터가 초당적으로 단호하게 대처했다면 얼스터의 저항도 찍어눌렸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영국 보수 엘리트들은 자유당식 아일랜드 개혁에 동참해줄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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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세대의 아리스토크라틱한 밸푸어와 랜스다운을 대체한 보수당 지도자, 보너 로가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대중정치의 시대에 맞게 선동과 강한 수사법을 채택한 그는 얼스터의 Home Rule 저항을 옹호하며 "어떤 수위의 저항이라도 내가 지지하지 않을 정도는 상상할 수 없다"고 선언했고, 이후 웨스트민스터 안에서 얼스터 연합주의를 후원했다.


    보너 로가 독특했던 것은 아니다. 영국 보수 엘리트 대부분이 얼스터 연합주의에 공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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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 커러 사건Curragh Incident 또는 커러 항명Curragh Munity이다.


     자유당 내각은 얼스터 연합주의자들의 무장과 조직화를 경계하며 얼스터의 군수창고와 무기고를 보호하기 위해 주둔군을 움직일 계획을 짰다. 주둔군 사령관 아서 패짓 중장은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정부의 지시를 장교들에게 전달했는데, 이게 좀 괴이했다. 물자 보호를 위해서 움직일 준비를 한다, 고 말하면 될 것을 얼스터 지역에 군사 작전이 임박했고 이 작전에서 얼스터 연고 장교들은 빠져도 괜찮다(그러나 연고가 없으면 사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패짓의 이 의뭉스러운 행적은 정부 명령의 집행 가능성을 무너트리는 은밀한 사보타주가 아니었는가, 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아일랜드 주둔군 장교들은 패짓의 이 말을 얼스터 연합주의자들에 대한 무력 진압 준비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군사행동을 일체 거부했다. 윗선에 의사를 전달한 70명의 장교 중 57명이 해임을 선택했으며, 3기병여단 여단장 고프 준장이 나서 장교들의 불복종 운동을 지휘했다.


     점입가경인 것은 군 상층부의 행태였다. 자유당 내각 전반이 사태 수습을 위해 동분서주 하는 동안 전쟁장관 J.E.B 실리와 참모총장 존 프렌치(세계대전기 영국 원정군을 졸렬히 지휘한 바로 그 사람)는 고프 패거리에게 견책이나 강등, 제대 처분이 아니라 '군이 얼스터 진압을 위해 동원되지 않겠다'라는 보장을 주었다. 이외에도 많은 화이트홀의 고관들이 이 불복종자들을 격려했다.


     자유당 내각과 언론은 이에 분노했으나,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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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군은 딱히 평화를 사랑하고 불필요한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군대가 아니었다. 이들이 해외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 것이고, 국내적으로도 군은 피털루부터 조지 왕의 재임 초기를 화끈히 달군 노동자 파업/시위 진압에 이르기까지 필요하다면 발포도 거리끼지 않는 과감함과 잔인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그들이, 얼스터 연합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진압을 거부했다.


     영국군 상층부와 보수당, 귀족원을 지배하는 영국 보수 엘리트들에게 있어 식민지인, 아일랜드인, 영국 노동자들과 달리 얼스터 개신교 엘리트들은 그들과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동족 의식을 느끼는 것이야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허나, 자유당과 아일랜드 의회당이 믿은 것 -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 합법주의, 다수결 기반 입법 절차가 어찌 되든, 이를 관철하는데 있어 그 실행권을 틀어쥔 보수 엘리트들이 드러누워버리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드러난 것은 문제적인 일이다. 이는 단순히 문민통제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 이상의 문제였다.


     아일랜드인들은 더 이상 아일랜드 의회당의 약속을 믿지 않게 되었다. 얼스터 의용군이 무기를 밀수해오고 본격적으로 무장하는데 웨스트민스터가 제대로 막지 못하는 상황이니 물론 웨스트민스터도 믿지 않았다.


     에드워디안 자유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세상에서, 아일랜드인들은 본격적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얼스터인들의 무장에 대응해 1913년 창설되었던 아일랜드 자원군Irish Volunteers이 대폭 확대되었으며 온건주의적 아일랜드 의회당과 그 풀뿌리 조직, 연합 아일랜드 리그United Ireland League는 이들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했다. 위기는 나선형으로 점증되어갔고 1914년 7월이 되면 조지 5세가 어전회의에서 내전이 다가온 것 같다고 탄식할 정도가 되었다.


     에드워디안 삼대 위기 모두 커져만 가고, 기존의 대응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 같은 암담한 상황.


     이 시점에서, 자유당 내각과 왕실은 잠깐 위기들을 동결하는 순간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에드워드 7세의 죽음으로 생긴 몇달의 동결은 태부족했으니, 기왕이면 몇년 정도.


     단, 그건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할 것이었다. 한 왕의 죽음은 고작 몇달을 벌었다. 몇년을 벌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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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천만이 죽어야 했다.


     또한 세계대전은 동결제인 동시에 용매제였다. 여성과 노동자들은 전시 산업 체제에 참여하며 스스로의 발언권을 키웠고 반대로 아일랜드인들은 웨스트민스터에 희망을 완전히 잃었다. 에드워디안 위기들은 에드워디안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1914년 8월 3일, 밤. 그제는 독일이, 어제는 프랑스가 총동원령을 내렸다. 또 어제는 독일이 벨기에에 최후 통첩을 전달했으며 그날 당일엔 독일이 프랑스에 선전포고했다. 발칸에서 시작한 불씨는 유럽 전역을 태우기 시작했고, 영국 외무부는 아우스터리츠 이래 가장 우울한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 순간, 자유당 내각의 외교를 이끌고 있는 외무장관 에드워드 그레이는 밤이 찾아오는 모습을, 거리의 등불이 켜지는 모습을 친우와 보며,


    “유럽 전역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그것들이 다시 켜지는 걸 보지 못할 걸세.”


     라는 말을 남겼다.



     참으로 그러했다. 어두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 글을 열며 시작했던 것들 - 에드워디안 시대의 황금빛 오후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분쇄될 시간이었다. 푸른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기던 중상류층 청년들은 솜이나 파스샹달 따위에서 산산조각이 날 예정이었고, 아가씨들 역시 과부로 전락할 것이었다. 더해, 그들의 부요한 삶을 뒷받침하던 채권과 하우스 메이드로 대표되는 초저가 노동력들도 모두 사라질 예정이었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에드워디안 시대의 종막이 찾아온 것이다. 에드워드 7세는 이렇게 진정으로 죽었다.


     Wait and see하며 온유하게 위기를 관리하고, 신사 여러분들의 타협과 토의를 통해 입법으로 천천히 세상을 바꿀 교양 넘치는 노인들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영국은 다른 것이 필요했다. 가장 어두운 시간을 Their Finest Hour로 기억되게 만들 고집쟁이 불독이라던가 말이다.









     마치기 전에, 잠깐 시계를 돌려보자.


     1910년 5월 19일 밤. 에드워드 7세의 시신 공개가 종료되고, 그에게 완벽한 정적이 허락된 즈음. 사교계 명사들이 찾아와 왕을 보게 해달라고 난리를 피우다 쫓겨난 직후. 네 대의 차량이 웨스트민스터 궁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차에서는 윈스턴 처칠을 필두로 한 처칠가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 웨스트민스터 홀에 입장을 시도했다. 웨스트민스터 홀의 관리자인 맥도넬은 왕의 안식과 자신의 관리인으로서의 직무를 내세우며 처칠가 사람들을 막아세웠다.


     윈스턴은 자신의 내무장관직을 포함하여 많은 것을 내세워 맥도넬을 비켜세우고 홀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으며, 한동안 격렬한 언쟁이 벌어졌다.


     결국은 윈스턴이 항복했다. 처칠가 사람들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맥도넬은 윈스턴의 이 행동에 대해 '제아무리 처칠이라지만 이럴줄은 몰랐던, 몰상식함이 극에 달한 무례하고 놀라운 사례'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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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의 사람 중 그 누구도 55년 뒤 저 강퍅한 청년 정치인이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될 것임을, 그리하여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되는 영광을 누리리라고는 상상치 못했으리라.





    출처



    Bertie : A life of Edward VII


    The Edwardian Crisis : Britain 1901-1914


    Queen Alexandra: Loyalty and Love

    추천 비추천

    12

    고정닉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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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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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ㅿㅿㅿ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와 하편!

      06.29 19:03:26
    • ㅇㅇ(211.209)

      여왕이 보수적인 시대에서 살면서 자기기만으로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는 암시건게 아니라 트루-럽이었다는게 놀랍고
      에드워드가 그냥 빅토리아 뒤를 이은 평범한 왕은 아니었구나

      06.29 20:21:4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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