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보단 똥묘사 중간에 나옴.
고딩때 쓴 글 리메이크 함.
등장인물은 클로이 제외 모두 18세 이상 성인임.
내 인생은 이 개같은 사건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완벽하게 평탄한 편이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엔 항상 내 주변에 꼬맹이들이 바글거렸고, 용돈을 벌겠다고 굳이 땡볕 내리쬐는 집 앞 잔디밭에 레모네이드 가판대 따위를 세울 필요도 없이 부모님은 내 지갑을 항상 두둑하게 채워주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주변엔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인싸들이나 성격 좋은 녀석들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 집이 뒷마당에 거대한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에 사는 갑부라고 볼 수는 없어도, 결코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자란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전형적인 중산층이었다.
운도 존나게 좋은 편이었다. 지금 이딴 끔찍한 일을 겪고 있는 게 어찌 보면 내 평생의 운을 다 써버린 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상황을 더 좆같이 해석하면서 스스로를 갉아먹고 싶진 않다.
풋볼을 하는 내내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고작해야 며칠 밴드를 붙이면 낫는 좆밥 같은 찰과상만 입었다. 대학도 코치님의 추천과 내 성적으로 꽤 이름있는 곳에 수월하게 들어갔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20대 초반까진 주말마다 열리는 파티에서 술도 꽤 퍼마셨다. 하지만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추태를 부리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다른 병신들 마냥 레드솔로컵에 담긴 맥주를 정신없이 처마시다가 일어나자마자 바지에 오줌을 지린 채 질질 짜거나, 독한 보드카 700ml를 병째로 비운 다음 남의 집 침대에서 뒹굴면서 구토를 해대는 역겨운 짓거리는 내 인생에 없었다.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15살부터 친구들 무리에 껴서 몰래 담배를 뻐끔거리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한 번도 호흡기에 좆같은 타격을 입거나 폐렴에 걸려본 적이 없었다. 술 담배 안 하면서 툭하면 감기에 걸려 골골대는 샌님 새끼들과 달리 난 잔병치레 하나 없이 무식하게 튼튼했다. 뭐 지금은 나이도 먹고 슬슬 건강에 쫄려서 연초에서 전담으로 갈아타긴 했지만, 내 신체 조건 하나만큼은 존나게 건강하고 축복받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 지금은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연초 하나 피우는 것에도 쫄아버리는데다 주말에 술을 좀 마시면 다음 날은 거의 반시체가 되어 학교 복도를 걸어 다녀야 하는, 어느 학교에나 널려 있는 흔해 빠진 체육 교사일 뿐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흔히들 말하는 완벽한 자크였다.
내 입으로 떠벌리는 게 존나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금요일 밤마다 경기장 조명 아래로 여자애들이 몰려와 풋볼 경기를 본 이유의 8할은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9학년 핏덩이들부터 12학년 졸업반까지, 여자애들은 관중석에 죽치고 앉아 내 등번호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6피트 2인치의 키에 190파운드가 나가는 탄탄한 근육질 몸매였으니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9학년 여자애들이 보통 같은 학년의 풋볼팀 꼬맹이들을 보러 와서 그 새끼들의 이름을 오리 마냥 꽥꽥거리면서 불러대면, 그 위 학년 여자애들은 저 핏덩이 새끼들 눈이 다 삐었냐며 대놓고 비웃기 바빴다. 하지만 내 이름이 호명되고 내가 헬멧을 쓰며 필드로 나갈 때면,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치어리더고 범생이고 로너고 할 것 없이 모두가 합창하듯 내 이름을 미친 듯이 연호했다.
내가 생각해도 진짜 씨발 존나게 잘난 체하는 것 같다. 여기서 화룡점정으로, 내가 덩치만 믿고 나대는 좆같은 양아치 짓은 전혀 안 했고, 프롬 파티에서 퀸을 차지할 정도로 예쁘고 다정한 치어리더 브리아나와 데이트를 했으며, 결국 그 첫사랑과 무사히 결혼까지 골인했다는 사실까지 덧붙이면 인터넷 게시판에 굴러다니는 개빡치는 기만글의 정석이 완성된다.
내 인생은 누군가에겐 평생을 바쳐도 못 이룰 꿈일 거다.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씨부릴 이 끔찍한 사건을 다 듣고 나면, 도저히 깨어날 수 없는 지독한 악몽이 될 거다. 구라 안 치고 진심으로.
내가 12학년 새 학기, 그러니까 나랑 내 친구들이 대다수 만 18살이라는 갓 성인이라는 맞이했을 때, 어떤 여자애 하나가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이름은 기억도 안 나고 사실 뇌에서 의도적으로 지워버리고 싶다. 학교의 모두가 그 애를 까마귀라고 불렀고 나 역시 그렇게 불렀다. 본명이 아마 에리였나, 아리, 아니면 엘레나. 씨발 하여튼 기억도 안 나고 중요하지도 않다.
까마귀. 진짜 소름 돋을 정도로 존나 찰떡같은 별명이었다. 키는 아무리 크게 쳐줘도 4피트 8인치에서 9인치 정도밖에 안 되는 비정상적으로 왜소한 체격이었다.
언제 감았는지도 모르게 새까맣게 염색한 머리는 항상 기름과 땀에 절어 감초 구미마냥 떡져 있었고, 한여름이라는 상황에도 발목까지 내려오는 칙칙하고 조잡한 검은색 긴팔 원피스만 처입고 다니는 강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년은 반짝거리는 걸 병적으로 좋아했다. 까마귀의 손톱에는 항상 은박지를 대충 가위로 오려 붙인 듯한 싸구려 은색 폴리시나, 빛을 받으면 파리 똥구멍처럼 반질거리는 검은색 폴리시가 지저분하게 발라져 있었다. 그 피가 안 통하는 것처럼 창백하고 기분 나쁘게 길쭉한 손가락엔 얇고 뾰족한 은색 반지를 한 손가락에 세 개씩 겹쳐서 끼고 다녔다.
게다가 구석에 처박아둔 걸레에서나 날 법한 쉰내가 풍기는 거무죽죽한 책가방에는, 달려있는 모든 지퍼마다 은색 별이랑 하트 모양의 싸구려 키링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다. 그 앙상한 몸으로 학교 복도를 걸어 다닐 때마다 그 좆같은 키링들이 서로 부딪히며 짤랑, 짤랑거리는 신경 긁는 소음이 온 복도에 메아리쳤다.
사건의 발단은 무능한 선생 새끼들 때문이었다. 학교 선생들은 지들이 귀찮은 전학생을 챙기기 싫어서 직무유기를 시전했고, 결국 평판이 제일 좋고 성격도 만만한 나를 교무실로 불러냈다.
그 대가리가 반쯤 벗겨진 안경잡이 선생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진짜 미안한데 네가 우리 학교 스포츠팀 주장이기도 하고 애들한테 제일 모범이잖아. 저기 저 전학생이 학교 지리를 전혀 몰라서 그러는데, 점심시간에 시설 위치 좀 알려주고 적응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대학 추천서에 아주 좋게 써줄게."
나는 속으로 쌍욕을 삼키며 힐쩍 소파에 앉아있는 까마귀를 봤다.
"저... 선생님, 저 솔직히 쟤한테서 하수구 냄새 같은 게 나서 좀 그런데요.... 좀 있다가 연습도 해야하는데 제가 꼭 해야 합니까?"
선생은 난처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딱 한 시간만 고생해 줘. 네가 워낙 다정하고 애들한테 잘하니까 부탁하는 거잖니."
나는 점심시간에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어차피 교사들한테 점수를 따두면 나중에 대학 갈 때 유리할 거란 계산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내 인생 최고의 병신 짓거리였다.
식당에서 밥을 대충 같이 먹는 둥 마는 둥 한 뒤, 까마귀를 데리고 학교 구석구석을 탐방시켜 줬다.
"여기가 체육관이고, 저쪽 복도 끝이 과학실이야. 그리고 식당 급식 맛은.... 하여튼 맛없으니까 웬만하면 도시락 싸 오거나 음식 등교 전에 싸오고, 수요일에 나오는 페퍼로니 피자나 금요일에 나온 매운 양념에 절인 닭고기만 그나마 사람 먹을 수준이니까 참고해. 우리 학교 교장 선생은 복도에서 뛰는 걸 쥐잡듯이 잡으니까 그것만 조심하면 돼. 내 말 듣고 있어?"
내가 나름대로 친절하게 다 설명해 주는데도, 이 까마귀 년은 내가 떠드는 내내 내 눈을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기분 나쁜 은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으로 자기 뜯어진 손톱만 불안하게 만지작거리며 내 뒤를 뽈뽈 쫓아다닐 뿐이었다. 가끔 내 굵은 팔뚝이나 다리 쪽을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져서 찝찝했지만 꾹 참았다.
탐방이 다 끝나고 복도 갈림길에 섰을 때였다.
"뭐 더 궁금한 거 있어? 없으면 난 이제 연습하러 가봐야 하는데."
그러자 까마귀가 고개를 아주 살짝 들더니, 모기만 한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마워."
그러고는 그 짤랑거리는 좆같은 소리와 함께 휙 뒤돌아 가버렸다.
내 여친 브리아나는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별다른 질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목에 팔을 두르며 나보고 음침한 전학생까지 챙겨주는 역시 다정하고 착한 남친이라며 내 볼에 키스하고 칭찬해 줬다.
근데 문제는 이 미친 까마귀 년이 그날 이후로 날 본격적으로 스토킹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처음엔 그저 우연인 줄 알았다. 내가 아침에 트럭에서 내려 등교할 때면 항상 내 뒤로 한 3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그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멈춰 서서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경기하거나 방과 후에 헬멧을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미친 듯이 태클 연습을 할 때면, 항상 관중석 제일 끝자리, 그늘진 펜스 구석탱이에 쭈그러져 앉아 mp3를 듣는 척 했으나 나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짓거리가 며칠, 몇 주가 지나면서 거리가 점점 기분 나쁘게 좁혀지기 시작했다. 식당에서도 내가 앉은 테이블에서 불과 세 테이블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내 쪽만 응시했다.
특히 브리가 까마귀년이 내가 아침마다 만드는 그 병신 같은 샌드위치, 버터에 튀기듯이 구운 식빵 사이에 기름 범벅인 베이컨을 쑤셔넣는 샌드위치를 똑같이, 베이컨의 굽기 농도와 베이컨 갯수까지 배껴와 그걸 내 가슴팍을 쳐다보며 기름을 식탁에 쏟아내며 씹어먹는다는 사실을 알자 소름이 끼치다 못해 역겹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애써 신경을 껐다. 사실 굳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내가 10학년 때, 몸무게가 225파운드는 족히 나가는 씹돼지 여드름년이 억지로 쑤셔 넣은 미니스커트를 처입고 내 앞을 지나가다가 일부러 넘어지는 척하며 내 발밑에 주저앉아 지 엉덩이 짝이랑 땀에 절은 티팬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넘어져서 아프다며 신음을 낸 뒤 트월킹을 갈겨댄 개좆같은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 안구가 타들어 가는 줄 알았다.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그 미친 지랄에 비하면, 몸집이 5피트도 채 안 되는 왜소한 까마귀 년이 좀 떨어져서 쳐다보는 정도는 그냥 좀 찜찜할 뿐이었다. 최소한 나한테 말도 안 걸고 내 눈깔을 썩게 만드는 안구 테러 짓도 안 했으니까 쿨하게 무시하기로 한 거다.
풋볼팀 라커룸 새끼들도 까마귀의 스토킹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오히려 낄낄거리며 존나 재밌는 구경거리로 여겼다.
샘이 내 등을 치며 낄낄거렸다.
"봤냐? 오늘도 그 미친 까마귀 년이 관중석 구석에서 너 연습하는 거 존나 음침하게 쳐다보고 있더라. 저러다 밤에 네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는 거 아니냐?"
엔리케도 거들었다.
"차라리 학교 뒤뜰 구석에서 대마초나 뻐끔거리며 찌그러져 사는 에모 남자애들이나 고스족 새끼들이랑 까마귀를 단체 미팅 시켜주는 게 어때? 끼리끼리 어울리게 말이야."
근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 음침한 에모 새끼들조차 까마귀한테서는 포저의 기운과 시궁창 냄새가 나고 눈빛이 기분 나쁘다며 극혐한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다 같이 라커룸 바닥을 구르며 웃었다.
하지만 오직 브리아나만이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하교할 때 내 손을 잡고 걷던 브리아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내가 내일 점심시간에 걔한테 가서 적당히 하라고 단호하게 말할까? 만약 쟤가 너한테 나라는 여친이 있는 걸 몰라서 저러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확실히 말해줘야지."
브리, 그냥 무시해. 쟤가 나한테 직접적으로 해코지하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 내가 보기엔 걔, 우리가 복도에서 이렇게 손잡고 다니는 거 뻔히 보면서도 일부러 저러는 것 같단 말이야. 아까 우리가 복도에서 키스할 때도 저 구석에서 눈도 안 깜빡이고 쳐다보더라. 눈빛이 진짜 기분 나빠. 뭔가 속으로 끔찍한 상상을 하는 것 같다고."
나는 피식 웃으며 브리아나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6피트 2인치가 넘고 몸무게가 거의 190파운드인 근육 덩어리 풋볼 주장이, 5피트도 안 넘고 몸무게가 90파운드나 나갈까 말까 한,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바싹 마른 여자애 보면서 쫄아있는 게 남들이 보기에 더 좆같이 웃기지 않을까? 그냥 걔가 미쳐서 내 목이라도 조르겠다고 달려든다고 쳐도, 저 정도 덩치는 진짜 한 손으로 바닥에 꽂아버릴 수 있어. 너무 신경 쓰지 마, 브리. 괜히 엮이지 말고 그냥 우리 학교 끝나고 웬디스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아, 씨발. 진짜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좆같이 멍청하고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다.
그때 브리 말대로 상담 교사한테 당장 달려가서 그 미친 까마귀 년이 날 쫓아다니고 관음한다는 털어놓고 접근금지 명령이라도 내리게 했어야 했다. 아니면 부모님한테 말해서 학교에 항의를 하든 경찰을 부르든 개지랄을 떨었어야 했다. 그럼 적어도 지금 겪는 이 숨통이 꽉 조이는 끔찍한 상황까진 안 왔겠지. 그렇게 다들 좀 찜찜해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하던 어느 날,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는 개같은 사건이 터진 거다.
그날은 유독 평범했다. 날씨가 기분 나쁘게 우중충하다든가, 반대로 불안해질 정도로 햇살이 쨍쨍하다든가 하는 불길한 징조조차 없는, 아주 적당히 나른하고 지루한 수요일 낮이었다.
잔디밭에서 구르는 지옥 같은 오후 전술 연습이 끝나고, 풋볼팀 애들이랑 나는 샤워실에서 흙먼지를 싹 조진 다음 알몸으로 물기를 뚝뚝 흘리며 남자 라커룸으로 우르르 들어섰다. 수건을 허리에 단단히 둘러 중요 부위를 가린 애들도 있었지만, 난 워낙 몸에 열이 많아서 그냥 젖은 수건을 어깨에 대충 걸치고 모든 걸 다 드러낸 상태였다. 누군가 기습하면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는, 완전히 무방비한 알몸 상태였다.
샘이 젖은 머리를 털며 나한테 물었다.
"학교 끝났는데 뭐 할 거냐? 이번 주말에 그, 누구더라? 그 유학생 진휘인가 하는 애 집에서 풀 파티 크게 한다는데 갈 거냐? 진휘네 부모님 주말 내내 여행 가서 집 비우신대. 걔네 집엔 술도 존나 많을 거라더라."
나는 라커 쪽으로 걸어가며 대답했다.
"아니, 오늘 브리 독감 심하게 걸려서 학교도 못 나왔잖아. 주말 파티는 패스할게. 그냥 집 가서 얌전히 브리랑 영상 통화나 하고 전공 공부나 해야지."
엔리케가 어이없다는 듯이 낄낄거렸다.
"존나 의외네. 난 네 뇌까지 단백질 근육으로 꽉 꽉 찬 줄 알았는데. 공부는 무슨 씨발."
"내 꿈이 체육 교사라고 했잖아. 니들 같은 생각 없는 병신들이랑 달리 대학 가서 제대로 전공 살리려면 성적 관리는 어느 정도 해야지."
이런 시답잖고 더러운 농담 따먹기를 하며 내 개인 라커 앞까지 걸어갔다. 익숙하게 다이얼 자물쇠 비밀번호를 맞추고 철제 문을 덜컥 여는 순간, 내 주변의 공기가 거짓말처럼 좆같이 가라앉았다. 등골을 타고 시퍼런 얼음물이 쏟아지는 듯한 소름이 쫙 돋았다. 방금 전까지 내 라커 속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새끼들이 지들이 주말에 마트에서 일하는 늙다리 아줌마 꼬셔서 공짜로 말보로 담배랑 버드와이저 맥주를 얻었다며 낄낄대는 병신 같은 허풍 소리만 백색소음마냥 방안에 잔잔하게 울리고 있었다.
숨을 들이켜는 순간 썩은 계란과 암모니아가 섞인 듯한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씨발, 무슨 시궁창 썩는 냄새가 나냐?"
그리고 완전히 열린 라커 안을 본 순간, 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까마귀가 내 비좁은 라커 안에 몸을 짐승처럼 둥글게 말고 쭈글쭈글하게 처박혀 있었다.
환각이 아니었다. 평소 같은 그 떡진 머리칼, 땀과 알 수 없는 오물로 얼룩진 조잡한 검은 원피스, 칠이 반쯤 벗겨져 너덜거리는 검은색과 은색 폴리시가 칠해진 손톱. 다 평소 복도에서 보던 그 역겨운 모습 그대로였지만, 한 가지가 확실히 기괴하게 달랐다.
바로 그 년의 표정이었다. 난 학교에서 까마귀가 누군가를 향해 웃는 걸 맹세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인간의 안면 근육이 그렇게 찢어지듯 기괴하게 움직이며 웃을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항상 바닥만 보던 그 둥글거리던 눈깔은 초승달처럼 기형적으로 수축해 있었고, 피가 배어 나오는 축축한 잇몸과 심각한 부정교합으로 이리저리 삐뚤삐뚤한 누런 치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랫턱을 사람의 골격이 허용하는 한계치까지 흉측하게 내밀고, 수건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서 있는 내 몸뚱어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모가지 깊은 곳에서부터 긁어내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쿡쿡... 쿡쿡쿡..."
그 좆같은 면상과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에 나는 뇌가 완전히 정지되어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이 미친년이 씨발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내가 돌처럼 굳어있자, 내 뒤에서 냄새를 맡고 다가온 샘과 엔리케가 라커 안을 보고 경악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 미친 창년아! 당장 안 기어 나와?!"
덩치 큰 샘이 분노하며 그 애의 떡진 머리채와 가느다란 모가지를 억센 손으로 거칠게 쥐어잡고 라커 밖으로 질질 끌어내려 했다. 처음 몇 초 정도는 그 애도 아무런 저항 없이 종이 인형처럼 순순히 끌려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일어난 일은 물리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짓거리였다. 그 년은 뼈와 가죽밖에 없는 그 앙상한 몸뚱이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괴력으로 자기 모가지를 잡은 샘의 안면을 주먹으로 퍽 소리가 나게 후려갈겼다.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200파운드가 넘는 샘이 코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며 라커룸 타일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고는 엔리케의 손아귀에 잡힌 자기 머리카락이 두피 째로 한 움큼 뜯겨 나가 피가 터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짐승 새끼처럼 네 발로 바닥을 박차며 나한테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 끔찍한 와중에도 그 기괴한 쿡쿡거리는 웃음소리는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 년이 내게 달라붙었을 때, 난 그 애의 팔다리와 모가지가 몸집에 안 맞게 징그러울 정도로 뱀처럼 길쭉하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그 기다란 두 팔이 내 얼굴과 목을 뱀처럼 꽉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그 더럽고 축축한 혓바닥을 뱀처럼 쑥 내밀어 내 볼과 입술, 젖은 가슴팍을 미친 듯이 핥아대기 시작했다.
"씨발! 떨어져! 이 좆같은 씨발년 당장 떼어내!"
나는 기겁을 하며 그 년의 앙상한 어깨를 붙잡고 떼어내려 짐승처럼 몸부림쳤다. 한 손은 개뿔, 평소 벤치프레스를 밥 먹듯이 하는 내 양손으로 온 힘을 다해 밀어내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수 톤짜리 콘크리트 벽이 날 짓누르는 것 같은 벅찬 완력이었다. 대체 그런 짐승 같은 괴력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서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폭발했다 쳐도, 그 추잡하고 뼈만 남은 팔에서 성인 남성을 압도하는 힘이 나온다는 건 상식적으로 절대 불가능했다.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등골이 서늘해질 뿐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그제야 구석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느라 라커 쪽을 못 봤던 다른 녀석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기겁했다. 뚱뚱한 아줌마 따먹은 썰을 늘어놓던 주둥이를 다물고, 팬티나 땀에 젖은 티셔츠만 급하게 대충 주워 입은 채 밖으로 미친 듯이 뛰쳐나갔다. 복도를 가로질러 교사들에게 미친 전학생 까마귀 년이 남자 라커룸에 몰래 쳐들어와 샘의 얼굴을 박살 내고 주장 알몸에 들러붙어 지랄발광을 하고 있다는 정신 나간 상황을 악을 쓰며 알렸다. 결국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온 건장한 남자 체육 교사 세 명과 학교 경비원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와 그 빌어먹을 까마귀 년의 팔다리를 바닥에 거칠게 짓누르고 온몸을 깔아뭉개고 나서야 짐승처럼 발악하며 밖으로 질질 끌려나갔다.
까마귀의 발악하는 비명소리가 복도 끝으로 멀어지고 나서야, 보건 교사가 구급상자를 들고 허겁지겁 도착했다. 얼굴과 목은 타액으로 범벅이 되고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내 처참한 몰골, 그리고 까마귀한테 주먹질을 당해 코뼈가 완전히 주저앉은 채 벽에 대가리를 부딪혀 피를 철철 흘리며 훌쩍이는 샘의 상태를 보고 기겁하며 곧바로 911에 신고를 때렸다.
그리고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가장 좆같은 진실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떨리는 다리로 서서 빈 라커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라커 안쪽 철판에는 까마귀가 교실이나 체육관에서 몰래 찍은 내 사진들이 빈틈없이 덕지덕지 도배되어 있었다. 내가 물을 마시는 모습, 벤치에 앉아 쉬는 모습, 심지어 체육복을 갈아입을 때 몰래 찍은 등판 사진까지 있었다.
거기다 라커 바닥에 처박아둔 내 여벌 옷가지와 아끼는 조던 운동화들은 온통 그 년이 입에서 흘린 끈적한 타액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역겹게 핥아댄 자국이 말라붙어 번들거렸다. 가장 충격적인 건 그 위로 역겨운 똥오줌을 싸갈겨 놨다는 사실이었다. 씨발, 옷에는 지린내가 진동을 했고 신발 안쪽에는 갈색 오물이 묻어있었다. 왜 라커 문을 열자마자 그 지독한 암모니아와 썩은 내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내 자신을 패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경찰이 도착하고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교장실에서 긴급 면담이 열렸다.
"내 아들 코뼈가 산산조각 났어! 네 년이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저 미친년 당장 소년원에 처넣어버려!"
샘의 아버지가 핏대를 세우며 까마귀를 향해 악을 썼다.
내 어머니는 내 옆에서 손을 붙잡고 눈물만 뚝뚝 흘리고 계셨다.
"우리 아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저런 끔찍한 일을 당해야 하죠? 접근금지 신청부터 할 겁니다."
그 난장판 속에서도 까마귀는 교장실 구석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내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 기분 나쁜 은색이랑 검은색이 섞인 길쭉한 손톱으로 무릎을 득득 긁어대고만 있었다. 아무런 반성도, 두려움도 없는 텅 빈 눈깔이었다.
까마귀는 결국 그 일로 당장 학교에서 쫓겨나 퇴학 처리를 당했다. 퇴학이 결정되기 전, 분노로 이성을 잃은 샘의 어머니가 까마귀를 향해 달려들어 싸대기를 미친 듯이 후려갈기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쌍욕을 퍼붓는 통에 경찰이 말려야만 했다.
그 사건 이후로 당분간 나는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안정을 취해야만 했다. 다행히 브리랑 같은 풋볼팀 애들이 우리 집에 수시로 찾아와 날 위로해 줬다.
브리가 내 품에 안겨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며 말했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진작에 그 년한테 찾아가서 따끔하게 경고하고 떼어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바보 같았어."
나는 브리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네 잘못이 절대 아니야, 브리. 그 미친년이 작정하고 내 라커에 숨어들어 벌인 일인데 네가 어떻게 막아. 제발 자책하지 마."
우리는 거실 소파에서 서로를 꽉 껴안은 채 그 끔찍했던 기억을 지우려 애썼다. 풋볼팀 새끼들도 처음엔 까마귀가 날 스토킹하는 걸 좆밥 취급하며 비웃고 농담거리로 삼았던 터라, 내 방에 병문안을 와서 존나게 미안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난 그 자식들에게 딱히 화가 나진 않았다. 그 누구도 그 비루먹은 뼈다귀 같은 년이 라커룸에서 그런 폭주 기관차 같은 미친 짓을 벌일 줄은 상상조차 못 했으니까.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운 나쁜 고등학교 시절, 미친 개싸이코 스토커 년한테 제대로 잘못 걸려서 똥 밟고 넘어간 썰이라고, 누구나 한 번쯤 재수 없으면 겪을 수 있는 좀 심한 범죄 피해 경험 정도로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정말 이야기의 끝이 거기서 마무리되었다면, 나도 굳이 두려움에 떨며 이딴 곳에다 과거를 들추어 글을 싸지르고 있진 않았을 거다.
까마귀가 퇴학당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온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은 소문이 퍼졌다. 샘이 코에 붕대를 감은채 내 방에 찾아외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들었어? 그 까마귀 년 말이야. 어젯밤에 동네 외곽 뒷산 공터에 있는 커다란 떡갈나무에 굵은 동아줄로 목매달고 뒈졌대."
나는 주스가 담긴 컵을 들고 있던 손에 땀이 배는 걸 느끼며 물었다.
"그게 뭔 개소리... 아니 확실한 거야? 누가 발견했는데?"
"비 내리던 밤에 공터를 떠돌면서 잘 곳을 찾던 노숙자가 악취가 진동을 해서 다가갔다가 썩어문드러져 가는 시체를 발견했대. 벌써 뒤진 지 몇 주가 훌쩍 지난 상태였다더라. 소름 돋는 건, 오랫동안 올가미에 목이 매달린 채 비바람을 맞으면서 방치되는 바람에, 시신이 부패하면서 목 근육이 다 끊어지고 중력을 받아서 모가지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기괴하게 길쭉하게 늘어나 있었대. 시신 수습하던 경찰도 그거 보고 토했다더라."
머리칼이 쭈뼛 서는 끔찍한 죽음이었지만, 솔직히 내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는 더 이상 내 등 뒤를 살피며 짤랑거리는 소리에 쫄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차라리 잘 뒈졌다고 안도하는 좆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그 사건의 충격도 점차 희미해졌다. 나는 무사히 12학년을 마치고 졸업장을 땄다. 브리랑 같은 주립 대학에 진학해서 남들처럼 술도 마시고 도서관에서 밤도 새우며 평범한 캠퍼스 라이프를 즐겼고, 졸업 후엔 원하던 대로 근처 고등학교 체육 교사로 취업도 성공했다. 그리고 직장을 잡은 지 얼마 안 돼서 우리는 양가 부모님과 친구들의 많은 축복 속에 성당에서 아름다운 결혼식까지 올렸다.
브리와 결혼한 이후의 내 삶은 그야말로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우리는 천사처럼 예쁜 딸 클로이를 낳았고, 남들처럼 은행 대출금 갚으면서 주말엔 마당에서 바비큐도 구워 먹는 아주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내 인생의 한구석을 지독하게 갉아먹던 까마귀라는 이름의 좆같은 기억도, 라커룸에서 맡았던 찌린내도 일상의 바쁨 속에 묻혀 뇌리에서 완전히 흐릿해져 갔다.
하지만 폭풍은 가장 고요하고 완벽할 때 찾아온다 했던가. 우리 딸 클로이가 훌쩍 자라 유치원생쯤 되었을 때부터, 내 완벽했던 인생의 톱니바퀴가 다시 좆같이 꼬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딸내미가 동네 외곽에 있는 공터 쪽으로 혼자 자전거를 타고 놀러 나가는 횟수가 비정상적으로 잦아졌다. 동네 꼬마들이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나 앞마당에서 놀지, 굳이 그 잡초 무성하고 버려진 곳에 갈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 바로 그 까마귀 년이 목을 매달고 덜렁거렸던 그 저주받은 공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의 유치원 교사가 방과 후에 나와 브리를 교실로 조용히 불렀다.
"아버님, 어머님. 바쁘신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클로이가 요즘 그리는 그림들이 좀...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해 보여서요. 혹시 집에서 아이가 폭력적이거나 혹은 공포 영화 같은 매체를 여과 없이 접하나요?"
나는 브리와 눈을 맞추며 당황해서 대답했다.
"절대 아닙니다. 저희 부부는 애 앞에서 뉴스조차 조심해서 틉니다. 클로이는 넷플릭스 전체이용가 만화나 디즈니 만화밖에 안 봐요. 무슨 그림이길래 그러시죠?"
교사가 책상 위에 내민 스케치북을 펼친 순간, 내 심장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서툰 크레파스 선으로 그려진 그림 속에는, 얼굴이 백지처럼 창백하고 모가지가 뱀처럼 존나게 긴 여자가 커다란 나무에 밧줄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서 우리 딸 클로이가 빙그레 웃으며 그 매달린 여자한테 초콜릿 바 하나랑, 자기가 평소에 제일 아끼고 매일 혹시 몰라 들고 다니는 보라색 반창고를 손을 뻗어 건네주는 장면이 아주 적나라하고 섬뜩하게 그려져 있었다.
씨발, 진짜 좆같은 문제는 그 그림 속 여자의 디테일한 생김새였다. 사시에 창백하긴 해도 오랫동안 염색을 다시 못해서 정수리 쪽만 원래 색인 갈색 머리가 자라나 있고 밑으로는 시커멓게 떡진 머리, 비정상적으로 길고 앙상한 팔다리, 길쭉한 손톱. 누가 봐도 영락없는 10년 전 라커룸에 처박혀 있던 그 까마귀 년의 모습이었다.
교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클로이가 이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러더군요. 공터에서 아빠의 옛날 친구를 만났는데 그 언니가 목이 길어져서 아프고 아빠를 너무너무 보고 싶어 하며 엉엉 울고 있다고요. 그래서 자기가 달래주려고 반창고랑 초콜릿을 줬다고 하더라고요. 부모인 두 분이 혹시 집에서 이상한 사이비 종교 의식 같은 걸 집안에서 행하시거나 학대를 하시는 건 아닌지, 원장님과 진지하게 상담을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먼저 부른 겁니다."
우리는 사색이 된 얼굴로 대충 먼 친척의 비극적인 장례식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것 같다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얼버무리고 도망치듯 유치원을 빠져나왔다. 나는 그 길로 클로이를 차 뒷좌석에 태워 근처 성당으로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 신부랑 수녀를 붙잡고 내 과거 이야기까지 털어놓으며 악마가 씌인 것 같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하지만 십자가를 쥔 신부는 온화한 표정으로 개소리를 지껄였다.
"형제님, 그저 아이들의 풍부하고 예민한 상상력일 뿐입니다. 우연의 일치로 무서운 꿈을 꾸었을 수도 있지요. 너무 걱정 마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며 주님께 매일 밤 기도를 올립시다."
그 꽉 막힌 인간들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꾹 참고, 다음 날 아주 비싼 돈을 주고 유명하다는 소아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온갖 그림 검사와 뇌파 검사를 다 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허탈했다.
"클로이에게는 스트레스성 틱이나 조현병, 망상 장애의 징후는 전혀 없습니다. 아주 건강하고 지능도 높은 아이입니다. 그저 일시적인 스트레스 반응일 수 있으니 푹 쉬게 해주세요."
결국 우리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당분간 애가 그 빌어먹을 공터 근처는커녕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완전히 막아버렸다. 유치원도 무단으로 쉬게 하고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집 안에만 꽁꽁 붙들고 있었다. 브리는 직장까지 휴가를 내고 하루 종일 애 옆에 붙어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만화를 틀어줬다. 다행히 집 안에만 가둬두니 시간이 지나면서 애는 이상한 그림도 그리지 않고, 다시 전처럼 평범하고 밝게 거실을 뛰어노는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간신히 악몽에서 벗어나 일상의 평화를 되찾았다고 안일하게 착각했다.
그러던 며칠 전,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이 치는 비 내리는 밤이었다.
브리는 며칠간 애를 돌보느라 신경을 곤두세워서 너무 피곤했는지 1층 거실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곯아떨어져 있었고, 나는 2층에 있는 클로이 방에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애랑 같이 동물 그림책을 읽으며 놀아주고 있었다. 방 안은 보일러를 틀어 따뜻했고 수면등의 노란 불빛만 은은하게 켜져 있었다. 밖에서 치는 빗소리가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근데 책을 한참 읽어주던 중, 갑자기 방 안의 온도가 급격하게 영하로 떨어지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코끝이 시려올 정도로 서늘해지더니, 방 안을 채우던 빗소리와 1층 냉장고 모터 소리 같은 모든 백색 소음이 일순간 물속에 잠긴 것처럼 먹먹하게 사라졌다. 클로이가 갑자기 내 팔을 꽉 잡고 있던 작은 손을 탁 놓더니, 고개를 휙 돌려 블라인드가 쳐진 굳게 닫힌 창밖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초점이 없는 멍한 눈으로 내 잠옷 옷깃을 세게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아빠, 목이 긴 언니가 창문 밖으로 찾아왔어."
그 순간 내 온몸의 핏줄에 얼음 조각이 쑤셔 박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흉곽을 부수고 튀어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쳤고 등골을 타고 시베리아 한파가 몰아쳤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을 만큼 경악했지만, 애가 놀라서 패닉에 빠질까 봐 주먹을 뼈가 하얗게 질리도록 꽉 쥐고 억지로 안면 근육을 통제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그래? 우리 공주님. 그 언니가 창밖에서 우리 클로이한테 뭐라고 하는데?"
클로이가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언니는 매일 혼자 공터에서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만 하면서 슬퍼했는데, 오늘은 아니야."
"무슨 소리야, 클로이? 언니가 왜 슬퍼하지 않아?"
"지금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엄청 엄청 활짝 웃고 있어. 입이 양쪽 귀까지 쫙 찢어질 정도로 웃으면서, 이제 아빠 보러 방 안으로 들어오겠대."
씨발. 내 눈에는 창밖에 미친 듯이 쏟아지는 시커먼 빗줄기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당연하지. 여긴 우리 집 2층이고 창문 밖은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허공이다. 소방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오지 않는 이상 누군가 거기 공중에 떠 있을 수는 없다.
근데 그 순간, 유리창을 누군가 날카로운 손가락 마디로 둔탁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을 찢고 들어왔다.
쿵. 쿵. 쿵.
유리가 박살 날 듯한 거친 힘은 아니었지만, 소름 끼치도록 일정한 간격이었다. 그러더니 찌그러지고 기형적으로 길게 늘어난 성대와 썩어버린 식도에서 억지로 쥐어짜 내는 듯한 기괴한 쇳소리가 두꺼운 유리창을 뚫고 들려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예전 고등학교 라커룸 안에서 알몸인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냈던 그 좆같고 끔찍한, 성대가 빠진 듯한 소리가 들렸다.
"쿡쿡... 쿡쿡쿡..."
그 악마 같은 웃음소리가 창문 틈새를 비집고 내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앞뒤 잴 것 없이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르며 클로이를 이불째로 거칠게 들쳐 업은 뒤, 미친 듯이 방문을 박차고 나가 1층으로 연결된 나무 계단을 거의 굴러떨어지듯 뛰어 내려왔다.
"브리! 브리, 씨발 당장 일어나! 당장 경찰에 전화해!"
우당탕거리는 굉음과 내 비명소리에 잠에서 깬 브리가 경악하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금 우리 세 식구는 1층 거실 구석, 주방 식탁 밑에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며 모여 있다. 브리는 상황을 파악하고 완전히 패닉에 빠져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경찰과 911에 번갈아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붙잡고 덜덜 떨고 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는 먹통이 된 듯한 지지직거리는 소음만 들릴 뿐이다.
하지만 그 끔찍한 와중에도 내 품에 꽉 안긴 클로이는 계속해서 닫힌 현관문 쪽으로 몸을 비틀며 발버둥을 치고 있다.
"아빠, 문 열어주자. 언니가 밖에 비 와서 너무 춥대. 아빠 냄새 맡고 싶고 아빠 꼭 안아주고 싶대. 문 열어줘, 응? 내가 가서 열어줄게!"
그리고 씨발, 방금 전까지 2층 내 딸 방 창문에서 나던 그 쿵쿵거리는 소리가, 이제는 우리 집 1층 현관문 바로 너머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손잡이가 미친 듯이 덜그럭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쿵. 쿵. 쿵.
"쿡쿡. 쿡쿡쿡."
나를 데리러 온 그 짐승 같은 썩은 웃음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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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때 쓴 글 확인 해보니 이렇게 브리가 까마귀 목 조르는 엔딩이었는데 이건 내가 봐도 아니고 챈 분위기에 안 맞고 유치해서 모호하게 끝냄
단어 서술
- 자크(Jock): 흔히 미국에선 스포츠를 잘하고 관심 있어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 쉽게 말해 미국 고등학교 인싸 포지션 애들. 창작물에선 주인공처럼 착한 경우도 당연히 많은 편이나 반대로 너드들 괴롭히는 양아치 느낌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음.
- 6'2ft: 187cm 정도.
- 5'0ft: 152cm정도. 까마귀의 키는 이보다 작은 대략 4'8ft(142cm)에서 4'9ft(144cm).
- 225 파운드: 대략 102kg
- 190 파운드: 대략 86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