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영입’ 등 색깔 택하며 JTBC 키우려 했지만...
홍라희 여사, BGF 등 ‘구원투수’ 등장 여부 주목
중앙그룹 계열사 JTBC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흘 만인 15일 JTBC, 그룹 지주사 중앙홀딩스 등 그룹 5개 회사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이어 중앙그룹의 모체인 중앙일보는 16일 지면을 통해 기업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 추진을 밝혔다.
중앙그룹의 경영난은 방송, 영화산업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거액을 들여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사들이는 등 무리한 투자가 직접 원인이다. 중앙그룹은 2026∼2032년 하계, 동계 올림픽과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단독 중계권을 5억달러에 확보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겨울 밀라노 동계올림픽 중계권은 KBS와 MBC, SBS 어느 지상파 방송사도 사지 않아 JTBC가 단독으로 중계했고, 이번 북중미 월드컵도 KBS에 140억원을 받는데 그쳤다.
중앙그룹의 부채 규모는 앞서 회생절차를 신청한 5개 회사의 재판부 배당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사건은 모두 정준영 서울회생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있는 회생2부에 배당됐는데, 서울회생법원은 중요 사건이나 부채 3천억원이 넘는 사건을 해당 재판부에 맡기고 있다.
16일 한 언론은 “다섯 건 중 네 건이 부채가 3천억원 이상인 대형 사건”이라는 회생법원 관계자의 전언을 보도하기도 했다.
중앙그룹의 모태인 중앙일보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65년에 창간한 삼성의 핵심 계열사였다. 중앙일보는 1980년대 초반까지 삼성그룹에서 비중이 가장 큰 회사였다.
이병철 회장은 중앙일보 창간 후 초대 사장을 맡았고 1968년부터 1980년까지 대표이사 회장으로 중앙일보 경영을 직접 챙겼다. 이건희 선대회장도 삼성그룹 경영에 참여하기 전, 동양방송에 입사했고 중앙일보 이사도 지냈다.
삼성전자가 삼성그룹의 얼굴이 된 것은 반도체산업 진출을 선언한 1982년 '도쿄선언'이 나오고도 한참 뒤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 삼성의 대표 계열사는 중앙일보와 삼성물산이었다.
1987년 11월 이병철 회장이 임종을 앞두고 있었을 때, 그의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 대기하던 직원들이 단 두 곳, 비서실과 중앙일보 총무부 소속이었다는 점은 당시 중앙일보의 삼성그룹 내 위상을 잘 보여준다.
2008년 초, 이건희 회장은 삼성특검에 의해 비자금 조성 혐의 등에 대한 수사를 받았다. 당시 이건희 회장이 정리해야만 했던 숨겨둔 지분 중 하나는 중앙일보였다. 중앙일보는 1999년 4월 보광과 함께 계열분리를 선언했는데 그전까지 중앙일보 주식 중 20.3%를 이 회장이 보유 중이었다.
그전부터 중앙일보의 경영권은 이병철 창업주의 사돈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에 대한 각별한 신뢰로 인해 누가봐도 이건희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현 중앙홀딩스 회장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보여졌다. 때문에 이건희 회장의 측근 및 법률 대리인들은 이 문제를 해소하자고 건의했지만 이 회장이 완강하게 버텼던 것이다.
당시 설득에 관여했던 인사는 “동서고금을 통해 처남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형의 인식은 한결 같더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회장은 반면 오늘날 각각 수조원과 수천억원에 달하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BW)에 대해서는 흔쾌히 자신의 측근, 비서진으로 주인을 바꿔주었다.
홍석현 회장은 2013년 진보성향 방송인 손석희를 JTBC 사장으로 영입했다. JTBC를 지상파를 뛰어넘는 방송사로 키우기 위해 손석희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색채를 선택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2016년 하반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촛불시위 정국에서 JTBC는 ‘태블릿 PC’ 보도 등 ‘적폐몰이’를 통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JTBC는 박 전 대통령과 삼성 및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유착 의혹을 선제적으로 제기, 이 부회장의 구속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이 부회장의 모친인 홍라희 여사가 동생인 홍석현 중앙일보 JTBC 회장을 만나 이에 대한 하소연성 항의를 함으로써 홍 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나기도 했다. 시중에서는 “외삼촌(홍 회장)이 조카(이재용)의 삼성을 차지하려 한다”는 루머까지 번졌다.
그때 삼성이 중앙일보와 JTBC에 대한 광고를 전면 중단한 것이 오늘날 중앙그룹 경영난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홍석현 회장은 노무현 정부때인 2005년 주미 대사를 지낸 바 있다. 남북문제 등에 대한 인식에서 노무현 정권과 코드가 맞았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그를 대권주자로 옹립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손석희라는 방송인을 JTBC의 얼굴로 세운 것이 우연은 아니었던 것이다.
선친인 고(故)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은 이승만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지만, 홍석현 회장 본인은 늘 이념적으로 모호하거나 진보에 경도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와관련, 과거 중앙일보와 TBC에서 오래 근무했고 퇴직 후 사우회에 깊이 관여했던 인사는 “여러차례 홍석현 회장을 만나 손석희 영입이후 JTBC와 중앙일보의 논조 변화에 대한 우려를 했지만 듣는 둥 마는 등 하더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중앙그룹의 경영난에 대해 “창업주의 정신을 받들지 못한 오너의 안이한 경영, 지적 이념적 허영심이 중앙그룹의 위기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의 인건비가 주된 비용인 중앙일보와 달리 JTBC와 같은 방송사업은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는 반면, 투입비용이 단기에 회수되거나 이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중앙그룹의 경영 정상화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삼성이 중앙일보를 삼성이 만들었고, 중앙그룹이 ‘범(汎)삼성 기업’으로 분류되는 만큼 삼성이 구원자 역할을 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이 나서 중앙그룹을 지원할 방법은 없다.
삼성전자 주식 위주로 25조원대의 현금성 자산을 가진 홍라희 여사가 나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중앙일보와 선친인 홍진기 회장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홍석현 회장의 친동생, 홍석조 회장이 이끄는 편의점 CU의 BGF그룹의 역할도 주목된다. 하지만 2026년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 재계순위 77위에 올라있는 BGF는 자산총액이 6.5조원에 불과하고 현금 동원여력도 1조원 미만으로 평가된다.
때문에 차제에 JTBC를 중심으로 한 방송계열사를 매각해서 그 돈으로 중앙그룹의 모체인 중앙일보만 살리는 방법이 유력한 해법이 제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와 체제를 지켜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