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새로 태어난 날이기도 하고, 내가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날이기도 하고
더 늦었다면(시작한 게 막 만 25세가 됐을 때네)어떻게 됐을지...
크게 감흥이 있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격려가 되는 정도인 것 같아
더 어릴 때부터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건 자각하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정체화한 건 고1(만 15세) 때였어...예고라는 특수한 환경이 날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네... 딱히 두발 규제는 없었는데 그땐 머리를 기르자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목소리가 낮은 것도 특별히 스트레스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렇게 고등학교 3년, 학부 4년 중 3학년까지를 평범한 남학생으로써 버텨 왔는데...디포를 방치하니까 우울증이 심하게 도지더라고
그래서 우울증만 있는 척 하다가 엄마한테 커밍아웃을 했는데 실패했고...일단 어릴 때 충동조절 문제로 다니던 개인병원에 가서 풀배터리랑 상담을 받았는데...원하는 진단을 받기는 커녕 하다못해 항우울제조차 주지를 않아서 돈(내돈이 아니어서 망정이지)과 시간만 낭비하게 됐어
학부 4학년 때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이때도 정체성이 확고하기보다는 이 모습을 시험해 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막연히 머리카락 잘려서 남자처럼 보이는게 싫어서 그랬던 것 같아(단순히 머리를 기른다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넓게 보면 그때까지가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엄빠는 군대가라고 아우성이었고 나는 어떻게든 안 가고 버텼지
그때는 트랜지션을 해서 군면제를 받기보다는 이왕 우울증 진단이 메인으로 나왔으니 그걸로 공익을 받자고 생각했고...바이너리랑 논바이너리 사이에서 고민하다 스스로가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서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했어
대학원에 들어가고 3학기 동안을 계속 다녔는데 그동안 우울증/디포가 더 악화돼서 휴학했고 그걸로 4급 보충역 처분을 받았고...1년 동안 쉬긴 했는데 우울증은 여전히 심했어...HRT 없이도 괜찮을 것 같다가 디포가 더 심해져서 호르몬 시작했고, 복학하고 나서는 논문제출서류 누락으로 졸업 유예되고 토플도 망쳐서 박사과정도 당장 못 가게 된다던지 일이 여러모로 꼬였었어...그래도 올해 3월에 결심을 굳혀서 5급 전시근로역도 받았고, 이번 학기에 졸업하고 토플 다시 볼 예정이야...퀴퍼도 뒷풀이만 갔지만 언젠간 그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일본여행 가면 추구미와 맞는 옷도 많이 사서 입고 다니고...단독 연주회도 하고...하고 싶은,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을 최대한 많이 하기 위해 노력 중이야
일단 정신적으로 변한 건
HRT 받으면서 우울증도 거의 다 나았고 정체성도 확고해졌어(극초기에는 여성에 가까운 논바이너리였는데 지금은 확실한 여성으로)
물론 여러 사정 상 원하는 외적 표현을 하지 못하는 건 여전히 스트레스지만...
옛날에는 우울해서 앞이 마냥 캄캄했다면 요즘에는 여러 목표들도 세우고 이전보다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어...물론 ADHD 때문에 처음 실행에 옮기기가 어렵더라고
한 학기 동안이긴 하지만 퀴어동아리를 들어가면서 적극적으로 원하는 이름으로써 날 소개하고 또 그렇게 불리고, 이제 갓 HRT 시작한 동족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줄 정도로 정신적 여유도 생겼어
디포도 호르몬 맞기 전에는 막연했는데(ex. 내가 왜 여자가 아니지?) 지금은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고 좀 더 구체적이 된 것 같아(ex. 목소리와 이름 등)
내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나니까 여성적 동질감이 천천히 하지만 강하게 내면화되는 것도 신기하면서도 기분 좋았어...그걸 기반으로 여동생하고 대화를 하다보니 가장 큰 성과 중 하나가 나왔어...날 언니로 받아들여 주더라고
사실 처음 여동생한테 커밍아웃했을 땐 별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나나 동생이나 우울증이 심해서 서로 싸울 때도 많았거든...그래도 둘 다 정신적 여유가 생기고 나니까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
물론 아직 불안한 것도 있어... 토플이라던지, 아직까지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던지...그래도 해결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신체 변화:
피부: 많이 건조해져서 샤워하고 나면 반드시 보습제를 발라줘야 하더라고
근육량: 어느 정도 힘이 빠진 것 같긴 한데 큰 차이는 모르겠어
머리카락: 4년 동안 기르고 상한 부분 잘라내고 하니까 가슴 중간까지 오는데...허리까지 기르고 보라색 시크릿투톤으로 염색하려고
지금도 여전히 관리 핑계, 사회적 인식 핑계 대면서 머리카락 자르라고 하는데 무시하고 있어...다른 사람들, 나아가 사회가 그런 것까지 간섭한다면 그건 디스토피아나 다름없으니까
가슴: 모양이 아직 덜 잡혔지만 풀 A컵은 넘겼어 엉덩이도 그렇고 지방재배치는 아직 진행중이니까 살 빼면서 지켜봐야 될 것 같아
가족들은 아직 신체적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데 몇 달 더 지나면 추궁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애당초 전시근로역 처분받은 것도 비밀로 하고 있으니까
얼굴: 워낙 살이 많이 쪄서 아직은 모르겠어...일단 다이어트를 한 다음 화장으로 남상이 커버가 안 되면 FFS를 받아야 할 것 같아
털: 일단 수염이랑 다리털 제모가 급선무인데 이것도 금전이슈로 기약이 없네...그나마 많이 약해져서 일단은 면도기로 밀고 있어
예정된 수술/행정절차:
VFS는 고민중이야...되도록 수술 없이 여목 연습을 하려고 하는데 적절한 톤과 밸런스는 잡혔는데 이걸 실제 대화에 쓰기에는 아직 어려울 것 같아
SRS는 진짜 먼 얘기같고... 또 여친은 언제쯤 사귈 수 있을지...
개명/정정은 되도록 동시에 하고 싶은데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불안하네...등본열람금지 조치가 특수한 경우에만 허용되기도 하고 그 행위 자체로 의심을 살 수 있어서 신중해야 할 것 같아
정리하자면 사실 HRT 외에는 진행된 게 없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누군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지는 확실해진 것 같아
자신답게 사는 그날까지 다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