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 팬덤이 키우며 30년 지난 IP, 이제는 아동층의 트렌드로
"일본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동방 프로젝트가 대세라는 게 사실인가요?"
최근 업계 지인과 대화하면서 받게 된 문의다. 커뮤니티를 통해 '동방 프로젝트(동프)' IP 근황 정보가 떠돌았고, 일본 초등학생과 중학생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로 유입이 계속된다고 알려진 것. 특히 '동프' 상품이 주력인 아키하바라 가게에 부모님을 동반한 여아 손님이 급증했다는 증언에 놀라는 반응이 나왔다.
선뜻 믿기 어려운 이유는 동방 프로젝트의 역사 때문이다. 1995년 시작해 무려 30년이 흐른 IP다. 마이너 장르인 탄막 슈팅 게임에서 유저 반응을 얻기 시작해 동인 역사에 거대한 획을 그었다.
당시는 남성 '오타쿠'들의 아이콘 중 하나였고, 지금도 국내에서는 서브컬처에 깊이 발을 담글 때 만나게 되는 대상이다. 지금까지도 기업보다 동인 팀 이미지가 강하지만, 캐릭터와 음악 등 게임 속 요소가 롱런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작품에 협업과 오마주가 잇따랐다.
대표적 예시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명 아이템인 '요우무의 유령검'이 바로 동프 캐릭터 '요우무'의 무기를 모티브로 한 이름이다. 인기 챔피언 '럭스'의 콘셉트와 궁극기도 '마리사'라는 캐릭터에서 따왔다. 블리자드 역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속 수많은 패러디 가운데 동프 캐릭터를 열정적으로 사용하곤 했다.
■ 현재 '동프' 팬층은? 아동+청소년이 '과반'
이런 전통의 IP에 저연령 유입 돌풍이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부분 사실에 가깝다. 팬층의 저연령 비중은 꾸준히 상승했으며, 이미 10여년 전부터 늘어나는 속도가 급격히 가속화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새삼스러울 정보도 아니다.
거의 매년 실시하는 동방 프로젝트 인기투표 설문에서 이 변화는 확실하게 체감된다. 2014년 시점 투표에서도 참여자 중 15세~19세 비율이 32%로 높은 편이었으나, 14세 이하는 4.5%에 불과했다. 그런데 2024년 투표는 14세 이하 참여자가 17%로 급증했다. 15세~19세 역시 40%에 달해 미성년자 비중이 과반을 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성비 변화도 크다. 10년 전 11%에 불과했던 여성 비율은 2024년 투표에서 약 24%까지 올랐다. 기존 팬덤에서 이탈자도 많기 때문에 퍼센티지 상승이 모두 절대적 숫자는 아니지만, 아동층과 여성층에서 괄목할 만큼 유입이 쏟아지는 것은 확실하다.
■ "우리 딸이 그린 레이무 그림 좀 보세요"
리듬게임 '동방 탄막 카구라'가 2022년 공개한 데이터도 비슷하다. 이 게임은 수익성과 콘텐츠 문제로 일찍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월간 유저만 수십만에 달할 만큼 호응은 높았다. 그중 14세 이하 유저만 33%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아동층 돌풍을 실감하게 했다.
구글이나 X(트위터)에서 '동방project 무스메'를 일본어로 검색하면 이런 현상을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다. 2020년경 이후로 "딸이 동방 캐릭터 그림을 그렸다"는 글의 이미지나, 어린 딸을 따라 동프 매장을 다녀왔다는 이야기가 급증했다.
2023년 말 직접 찾아갔던 아키바 현장도 다르지 않았다. '프로젝트 세카이'와 '홀로라이브'가 대형 매장들의 1층을 휩쓸던 시기인데, 그 옆에서 계속 한 자리를 지키는 '동프' 진열대가 있었다. 사업 구조 한계로 MD 공급이 많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학생층 사이에서 대중적인 수요가 계속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커뮤니티 유저들은 장벽 없는 감성을 먼저 꼽는다. 2차 창작만 접할 경우 의식하지 못할 수 있으나, '동프'의 캐릭터 디자인과 주제는 지극히 건전하고 직관적이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이 불호가 거의 없는 깔끔한 미형이 많아 이를 향한 인기가 높게 나타난다. 여아들의 '워너비 캐릭터'인 셈이다.
■ 모두가 함께 만드는 매력은 늙지 않는다
여성 아동층이 '열광한다'는 표현은 과장이 섞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IP를 통틀어 최고 인기를 달릴 만큼의 존재감은 아니다. 다만 아동 유입 급증으로 평균 연령층이 매해 어려지고 있다는 것, 여성 성비가 크게 늘었다는 점, 그로 인해 IP 전체에 다시 돌아오는 활기 모두 현재 벌어지는 현상이다.
'동방 프로젝트'는 서브컬처와 게임을 통틀어 희귀한 역사다. 거대 자본을 통한 확장이 단 한번도 없었고, 엄청난 명작 콘텐츠가 나온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 '매력'으로 30년 동안 팬들을 잡아두면서 어린 팬들도 급증하는 트렌드세터 역할을 한다. 동인계의 자발적 창작과 소비를 바탕으로 자가발전하고 성장을 거듭하는, 서브컬처 IP가 선순환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다.
저연령층 팬덤이 당장 시장 파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더욱 긴 수명을 이어나가고, 문화적 영향력을 더욱 탄탄히 다지는 원동력이 된다. 조만간 아동용 아케이드 게임 신작으로 '동방 프로젝트'가 일본 시장을 휩쓰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