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선은 칼집을 내어 데쳐낸 애호박에 볶은 소고기와 각종 버섯, 당근, 계란지단 등을 넣어 만든 경상도 지방의 향토음식이다. 선은 소고기, 닭고기, 민어, 광어, 버섯 등의 고급재료를 사용하고 만드는 방법도 손이 많이 가는 고급음식이다.
우리 전통음식은 만드는 방법과 용도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중에 가지선, 오이선 등과 같이 ‘선’자가 붙는 음식종류가 있다. 선이란 한자어로 반찬의 뜻을 지닌 ‘膳(선)’을 말한다. 파자(破子) 해보면 月(육달월 변)과 善(좋을 선)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육달월 변은 고기 肉(육)이 변형된 글자이고 善(선)자는 풀을 뜯어 먹는 양의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한자가 발생한 고대 중국에서 양고기를 최고의 음식으로 쳤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굳이 뜻을 새기자면 ‘좋은 음식’ 정도가 될 것이다.
선을 조리하는 방법에는 보통 찌는 법과 끓이는 법이 있다. 가지, 배추, 오이, 호박 등의 식물성 재료에 칼집을 내고 다진 육류, 생선, 버섯, 계란 등의 부재료를 그 속에 소로 채워서 찜통에 쪄내거나 장국을 부어 잠깐 끓여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외에도 조선 시대의 고조리서에 의하면 주재료에 소를 채우지 않거나 쪄내지 않아도 선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조리서로 1670년경에 장씨 부인이 지은 『음식디미방』에는 동아선을 만드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는데 소를 채우지 않고 동아만으로 조리해낸 경우이다. 그 만드는 법은 “늙은 동아를 도톰하게 저며서 살짝 데친다. 간장에 기름을 넣어 붉은빛이 나게 달인다. 삶은 동아는 물기를 없앤 후 달인 간장에 담갔다가 따라 버리고, 달인 새 간장에 생강을 다져 놓고 동아를 담가두었다가 쓸 때 식초를 쓴다”고 하였다.
선은 소고기, 닭고기, 민어, 광어, 버섯 등의 고급재료를 사용하고 만드는 방법도 손이 많이 가는 고급음식이다.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된 ‘조선왕조궁중음식’의 기능보유자였던 고(故) 황혜성씨에 의하면 선은 ‘좋은 음식’이라는 뜻과 같이 본래 궁중의 일상적인 찬품(饌品, 반찬)으로 사용된 궁중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는 조선의 마지막 주방상궁이었던 한희순(韓熙順, 1889~1972) 상궁의 제자이다. 그가 전수받은 궁중음식 중 선 음식의 종류로는 가지선, 두부선, 어선, 오이선, 통오이선, 호박선 등이 있다.
호박선은 궁중음식이 궁궐 담을 넘어 민간으로 나가 경상도지방에서 반가(班家)를 중심으로 정착된 향토음식에 해당한다. 궁중음식이 민간에 전래되는 경로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왕실과의 혼인을 통하여 전파되는 경우이다. 왕실의 미혼여성인 공주나 옹주는 사대부가에 출가하여 궁 밖의 민가에서 여염집 부녀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자연스레 궁중음식이 민간에 전래되었다. 다음은 국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대신과 고관, 궁중 궐내각사에서 근무하는 관료와 서리들이 있다. 이들은 궁중을 수시로 출입하거나 궁궐에 부속된 건물에서 근무하면서 국가의 잔치 등에 참석하여 궁중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국왕이 특별히 고관대작이나 공신, 관리들에게 음식을 하사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은퇴 또는 기타 사유로 출궁한 궁인들을 통해 궁중음식이 민가에 소개되었다. 한희순 상궁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경상도지방은 비록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역이지만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불릴 만큼 성리학의 본 고장으로 인정받았고, 중앙에서는 이른바 영남 남인(南人)이라는 정치세력을 이룰 정도로 예전부터 안동(安東)을 중심으로 많은 급제자와 관료를 배출하였다. 이들이 서울에서 거주하면서 관료생활을 하다가 귀향하거나 낙향할 때 궁중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일례를 들자면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씨 부인의 아들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은 현종과 숙종 때 퇴계의 학통을 잇는 영남학파의 거두인 동시에 출세하여 이조판서에까지 이르렀던 인물이다.
호박선이 처음으로 소개된 문헌은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발견된 19세기 말엽에 저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이다. 이 조리서에서 호박선은 '남과선(南瓜膳)'이라는 명칭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그 만드는 법이 오늘날의 호박선과 동일하다.
어린 호박 주먹만 한 것을 쪼개어 어슷어슷하게 등으로 어여서 푹 찐 후에 황육 두드려 볶아서 또다시 곱게 다져 파 마늘 후춧가루 기름 꿀 갖추어 양념 넣어 볶아 표고느타리 석이 채 치고 실고추 계란 부쳐 채쳐 섞어 소를 어인 사이로 잘 넣고 그릇에 담은 위에 초장에 백청 타서 붓고. 고추 석이 계란 채쳐 얹고 잣가루 많이 뿌려 쓰라.
『시의전서』는 1919년경 당시 상주군수로 재직 중이던 심환진(沈晥鎭)이 상주의 한 반가에 소장되어 있던 조리서를 괘지(罫紙)에 필사하여 두었던 것이 그의 며느리인 홍정(洪貞)에게 전해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조리서의 특징은 경상도 지방의 반가음식부터 궁중음식까지 조선 후기 400여종의 음식 조리법을 상세하게 수록하고 있다. 19세기말 경상도 지방의 한 조리서에 호박선 만드는 법이 수록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조선 후기에는 호박선이 경상도 지방에서는 널리 알려진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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