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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댓글 영역
맞음 물질적인 발전은 생각보다 빠르게 가능함 경제연산에서 ㄹㅇ 문제인 건 어떤 외부적 동기도 없이 순식간에 국가의 제도 전반이 바뀌는 거지 저건 핵신에서 빗겨갔다고 봄
외부적 동기는 산신령이 트립시켜준 빙환트 주인공 이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나 싶네 웹소계열 대역이라는 장르 특성상
@ㅇㅇ 외부적 동기라는 건 조선 입장임 경식이가 아니라
@대붕이1(218.153) 그 빙환트 주인공 자체가 조선 입장에선 외부인이라는거
@ㅇㅇ 그 얘기가 아님
@ㅇㅇ 광무개혁 예시로 많이들 들어서 그걸 얘기하자면 그때가 1897년인데 이미 서세동점 확실해졌고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는 상황임. 당대인들에게 개혁을 설득할 외부적 동기가 충만했다는 거지 근데 경식이는 '일단 하자'랑 '하니까 잘됐으니 계속 하자' 이상으로 개혁의 절박함을 설득하지 않았다는 얘기임
@대붕이1(218.153) 사회계층들이 죄다 왕이 시켜도 '시이발 백성들 굶어뒤지건 말건 무조건 아무튼 지금도 잘 사는데 절대 못 변하겠습니다'하는 전개로 200화 정도 채워야하나?
@ㅇㅇ 맨날 이런 얘기하면 항상 극단적으로 남의 의견 몰아가면서 피폐물 찍으라는 거냐고 욕하는 사람들 많은데 난 그런 주장 한 적 없음 왤케 흥분람
@ㅇㅇ 한 번 식혀요.. 댓글 쓴 사람은 그냥 부드럽게 잘 말하고 있는데 너무 열나있음
저 밑글이 맨날 나오는 시비고 내용도 안 맞아서 화날 수 있는데 댓글 쓴 사람은 님 본문에도 동의한 사람임
정통성 빵빵한 왕이 실적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개혁 추진한느데 안될게 있음? 반대하는 세력은 초반에 쓸어버렸고, 무슨 왕권만 강화하는 개혁이 아니라 백성들 본인도 엄청 수혜를 입는데. 부자가 될 수 있다<- 존나 큰 동기임
@대붕이1(218.153) 그리고 서세동점은 개혁에 대한 큰 동기이기도 하지만 큰 거부감도 줌. 일단 남의 거고 침략자로 인식하니까. 근데 여기선 아님. 개쩌는 임금님이 우리 잘먹고 잘살라고 바꿔준거지. 물론 거부하는 세력도 있겠지 근데 그건 계속 쓸어버리는 묘사가 마왔고 무슨 유교적 신념이 있는게 아니라 먹고사는 것도 벅찬 일반 백성 입장에선 안따라갈 이유가 없음
@대붕이1(218.153) 무슨 소린진 알겠고 외부 충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변할 수 있나 싶은 의구심은 합당한데 개인적으로는 초반에 나오는 기근으로 서울에 몰려든 난민도 동인으로 충분하다고 봄. 조선 사대부들도 기근으로 백성들 유랑하는거 고치긴 해야한다고 생각했잖아. 방법을 몰랐을 뿐이지. 우리가 현대인이라 전근대에 기근으로 유랑민 몇만이라고 하는게 그냥 일상이라 느껴질 뿐이고 현장을 본 사람 입장에선 다를거임
@ㅇㅇ 그러니까 경제 정책의 효과가 비교적 빠르게 나오는 근현대에도 개혁의 시행과정과 효과는 즉발적이지 않고 정치적 설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임. 연산군만큼 정통성 강력한 왕들도 경제연산에 나오는 것 같은 국가개조급의 혁명을 벌이려면 더 힘들겠지
@ㅇㅇ 사실 시간 문제는 소설적 허용으로 넘어가도 상관없다고 봄. 수십 년 두고 개혁하고 시간 스킵하면서 했으면 지금처럼 뽕이 좋지는 않았을 거 같아서
@ㅇㅇ 그치만 국가 경제의 근본은 사회적 제제도들이 어떻게 갖춰졌느냐에서 오고 사회적 제제도를 만드는 과정이 정치인데 지금 경식에는 이미 자본주의인 국가의 경제관료처럼 움직이지 군주이자 정치인으로 안 보인달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서 그랬음
@대붕이1(218.153) 국가를 개저하는 혁명이 아님. 물론 결과적으론 그렇지만 경식이의 초반 정책을ㅠ생각해보셈. 조선시대내내 국가적 과업이었던 곡창 문제 해결하고 수혈주거하던 난민들 집지어주고 일자리 준게 시작임. 당장 해결해야 되는데 못하던 것터 사작해서 자기 주장들을 가지고 실적을 엄청나게 쌓았고 그 와즁에 반대세력은 척결함.
@ㅇㅇ 그리고 작중에도 아직 성리학이 내재화 되지 않은 시기라고 나오는데 꼴통 성리학자면 모를까 일반적인 유교 관점에선 백성들 쥐어짜는 부국강병이면 모를까 백성들 잘먹고 잘살게 해주는 걸 부인 하기 쉽지 않음. 근데 그 방법론이 유교랑 반대되니까 초반에 혼란을 겪는 노신들이 나왔고.
@ㅇㅇ 동기라는 게 그냥 개혁을 해야한다 이상으로 개혁을 어떻게 할지 설득하려면 선례가 있느냐 없느냐가 큰 거 같음 근대화시기에는 좋든 싫든 서구에 성공사례가 있으니 설득과 동인이 비교적 간단히 제공되지만 경제연산의 조선인들은 어떤 선례도 없이 오직 젊은 왕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에 국가의 명운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그부분이 더 조명됐었으면 했음
@ㅇㅇ 밖에 나와서 아이피 바뀌었는데 댓글 단 사람임
@대붕이2(121.133) 그니까 처음부터 국가의 명운을 걸라고 요구한게 아니잖아. 실패했던 저화 정책 성공시키고 굶어 죽고 움마에서 살던 난민들 구제하고, 조선시대 내내 문제였던 곡창 해결하고. 이정도면 이미 미친명군이라 그이후로는 대개혁해도 이상할거 없음.선례 얘기했는데 작중에서 계속 세조 나 태종 갖다붙었다고 나옴
@ㅇㅇ 본인 글쓴이인데 중간에 너무 거칠게 반박한 면 있는 거 같고 이건 서로 의견이 다르구나 하고 넘어갈 부분이 맞는거 같으니 두 사람도 그만해주길 바람
@대붕이2(121.133) ㅇㅇ 그 부분은 그럴 수 있다고 봄
@대붕이2(121.133) 1.국가 개조 혁명 아님. 엄연히 현안부터 처리했눈데 그현안이 ㅈㄴ 어려운 것들이라서 자기 능력 증명하기에 츙분함
2. 선례도 있음. 태종이니 세조니 정책들 갖다 붙여서 설득하는 내용 계속 나옴. 또 1의 내용이 충분히 선례가 될수 있음.
내말은 이거임
1a당 40근이면 1ha는 100a니까 4000근 아님? 2.4톤 - dc App
아 잘못 씀 1반은 10a임
뒤에 72만톤이라 쓴거보니 잘못 쓴거 같더라 - dc App
그리고 면화생산 안되는 곳에서는 삼베,칡섬유도 가능하기 때문에 쓸곳이 많음 - dc App
삼베랑 아마 생산이 많을듯?
@ㅇㅇ 삼베는 종이가 부산물이고 아마는 아마씨유가 같이 나오니까 잉크와 저급지 관련한 문구류산업을 이끌어갈듯 - dc App
OTL에서는 한반도를 딱 원료산지로만 개발했으니까 그렇지, 여기서는 도시랑 공업단지 들어서고 이것저것 다 들어서야 하는데 어떻게 저 퍼포먼스가 나옴? 공업하고 파이 나눠먹어야 해서 저정도 수확량 나올수가 없음 - dc App
그래서 OTL보다도 생산량 딸리잖아
애초에 열강들이 '원료산지' 따로 만든 이유는 본토생산력이 부족해서가 아님. 비교우위상 본토는 다른거 돌려야해서 원료 생산같은 허드렛일 대신해줄 따까리가 필요했기 때문임 - dc App
찾아보니 직조기 대수도 OTL 일제하 조선이 더 많더라
본문도 무슨 플랜테이션 돌린 거 아니고 농가에서 부업으로 한거임. 일제가 엄청 일을 잘해서 겨우 가능한 수치도 아니고 파이가 나뉘었더라도 훨씬 조직적으로 재배하고 부업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키우면 충붐히 가능하다 보는데
@해적사냥 열강들이 식민지를 원료 수급지로 삼았다는건 대표적 오류고 실제론 대부분 유럽 + 아메리카 내 교역으로 얻음...
@ㅇㅇ 그야 '기기 댓수' 자체는 많지. 면포 생산량도 봄? 한번에 수만필 짜내는 공장용 직조기랑 가내수공업 비스무리한 직조기를 똑같이 1로 잡으면 글케 나옴. 글고 이것도 원료산지 문제랑 같은게 조선이 '저가 노동력 비교우위' 갖춘것일뿐임 - dc App
@ㅇㅇ 너 혹시 어제자 돆재 보고 그런 소리하는거냐? - dc App
@해적사냥 서울대 연구서나 논문 쪽에도 비슷한 이야기 많이 다룸. 서양 식민주의의 유산이라고 논문 있으니 찾아보셈
@ㅇㅇ 교역량 자체는 유럽 내가 더 많았다는거지 핵심 원료는 식민지에서 온거 맞음.... 예를 들어 영국의 차 수입같은 경우 수입량의 절반은 유럽 대륙에서 왔는데 진짜로 유럽에서 차 생산해서 영국에 판거겠냐. 걍 제국주의 시대쯤 가면 본토에서의 원료 생산이란게 가성비가 잘 안나올 시즌 맞음 - dc App
@ㅇㅇ 내가 알기로 그 얘기하는 사람들이 보통 대항해시대 말~제국시대 초기를 잡고 얘기하는거로 아는데 저 시대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얘기임 - dc App
@해적사냥 영국 초기 산혁 당시 목화는 미국, 이집트 산이고 양모랑 아마는 자국산이 대부분이었고, 이탈리아 비단 산혁 역시 자국산 원료로 굴러감. 철도 대부분 스웨덴 등 유럽산이었고. 석탄은 영국산.
@ㅇㅇ 인도가 원료 공급지로 유의미해진건 19세기 중반 이후의 일
뽕나무 문제 크지않나? 무상일수 때문에 북쪽지방은 생육기간이 짧고 누에를 따뜻하게 키워도 누에에게 먹일 신선한 뽕잎이 없으면 어떻게 키움 양잠 영상 보니까 쉬지않고 뽕잎 갉아먹더만
애초에 중국강남같은데서 누에고치 n모작했던 게 뽕잎이 남아돌아서 그걸 어떻게든 누에한테 처먹일려고 하니까 그런건데 누에만 따뜻하게 하면 어쩌누
뽕나무 밭도 한 번 검색해보셈. 뽕나무는 3년만 키워도 수확 가능하고 나무가 작아서 밭 수준으로 밀식 가능함. 그리고 누에는 1개월만에 다 자라서 고치 만들기 때문에 부화일 조정해서 뽕나무 잎 많은 봄여름 동안 바짝 노동력 투입하는게 더 중요함.
@ㅇㅇ(112.169) 강남에서도 뽕나무는 봄여름에 자라서 가을에 열매 맺고 겨울엔 잎 진다...
강남에서는 이른봄부터 늦가을까지 계속 뽕잎이 뿅뿅 나오는데 북부는 서리내려서 뽕잎이 늦게 나고 일찍 지잖아 절대적 생산량 자체가 기후영향받는 건 그냥 어쩔수가 없는거임....
@ㅇㅇ(112.169) 양잠 주기가 곡물이랑 비슷한 줄 아는데 뽕나무는 내한성 강한 나무라서 가을에 잎 떨구고 새순상태로 겨울을 난 다음 얼음 녹을 때 다시 잎 자람. 그리고 봄 되어서 잎 충분히 커지면 누에알도 깨어나고. 그런데 누에는 그때 한달 먹고 다 자라고 부화해서 알 낳고 끝나는데, 뽕나무는 그 뒤로도 4달은 더 자람. 그래서 누에 부화 시기를 늦춰서 늦게 자라는 뽕잎도 다 활용하는게 중요하지 따뜻한게 관건이 아님.
@ㅇㅇ(112.169) 뽕나무 자체는 발해에서도 자랄 정도로 내한성 강하고 관건은 누에알을 차갑게 보관해서 늦게 깨어나게 하는거고 이건 되려 중국에서도 화북에서 얼음 활용해 잘 써먹은 기술임
경제연산이 은근히 일본제국시절 수준 잘 써먹더라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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