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토막파가 힘을 얻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에도 막부가 체제의 기반인 사무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하급 사족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에 있음.
도쿠가와가 전국시대와 같은 변수를 막기 위해 일본 사회의 지배계급인 사무라이들에게
부와 권력에 대한 접근을 철저히 봉쇄해 막부 굴리는 생체 기계부품 따위로 빡빡하게 통제했거든.
이런 빡빡한 체제에 대한 중하급 사족들의 불만이 레짐 체인지를 정당화해줄 이념과 대의에 대한 추구로 이어졌고,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기존 유학 이념은 이들에게 막부 굴리는 생체 기계부품이 아닌 일본 사회를 주도하는 주체임을 어필했음.
또 기존 유학 만큼이나 일본에서 유학의 한 일파로 시작했던 국학의 영향을 절대 뺄 수 없음.
이 국학을 통해서 기존 유학과 구분되는 일본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국수주의로 이어져 유학과 함께 양대 기둥이 되었고,
이 둘을 조합한 미토학이 막말 일본의 주류 담론으로 발전해 존황양이, 일군만민을 내세워 막번체제를 뒤엎으려는 움직임으로 발전함.
막부도 이걸 완전히 부정하지 못해 미토학에 심취한 요시노부가 공무합체를 앞세워 큰그림을 그렸지만,
그 큰그림이란게 요시노부가 개인적으로 가진 이에모치 쇼군과 고메이 천황과의 친분관계에 의존하는 마분지여서 쇼군과 천황이 죽자마자 찢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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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과 국학의 영향이 먼저, 그 다음에 그걸 토대로 '양이'도 주장했다가 열강한테 깨지고 나서 서구화 담론까지 쓰까된 형태였지.
맞음. 그래서 막말 유신지사들이 외치는 존황양이에서 실제 비중은 존황이 훨씬 높았고 서구문물에 심취했지. 물론 양이에 치우쳐진 진짜들이 없는건 당연히 아녀서 막말 당시 서양인 피살 사건들이 많았지. 문제는 막상 권력을 잡은 유신 과두집단이 서구화를 명분으로 자기들 고향인 조슈/사쓰마 사람들까지 포함해 혁명을 주도하고 지지한 사족과 백성들의 통수를 유혈낭자하게 쳐 권력을 독점하고 사이고처럼 통수 맞아 분노한 불만 여론을 의식하던 내부 인사들, 같은 학당에서 동문한 선후배들까지 모조리 조져 일본 사회가 극단화에 매우 취약해지고 말았지.
그럼 막부가 사족을 탄압한 게 자충수였나? 막부를 떠받칠 계급을 탄압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었지
탄압이라기보단 "넌 그 자리에 안주하면서 그 위를 넘보지 마"라고 선을 그어놓은 건데, 열도에도 결국 정치 사회적인 변수들이 잇달아 터져나오면서 틀이 헐거워지기 시작하지. 그래서 후대의 쇼군이나 로쥬들이 당시 상황에 맞춰서 임시변통의 개혁들을 내놓았지만 결국 쌓여가는 모순을 더는 감당못한 거고.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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