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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시대 구분 중 중세의 초중기에 해당하는 삼국시대 이후부터 당나라 통일 이전까지의 분열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갤러리입니다.
감정의마천루(heisei1213)
Encore(zppx10) ㅇㅇ(220.85)(gonow123…) 카우디요(caudillo) 미다(tkrkdtl)
2020-07-21
중국의 역사 시대 구분 중 중세의 초중기에 해당하는 삼국시대 이후부터 당나라 통일 이전까지의 분열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갤러리입니다.
감정의마천루(heisei1213)
Encore(zppx10) ㅇㅇ(220.85)(gonow123…) 카우디요(caudillo) 미다(tkrkdtl)
2020-07-21
논어의 예법관련 구절들이 모인 팔일(八佾)편을 보면
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팔일(八佾)의 춤을 마당에서 추니, 이것을 차마 용납한다면 무엇인들 용납하지 못하리오”
三家者 以雍徹. 子曰 相維辟公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
세 집안에서 옹(雍)의 노래를 부르며 제물을 거두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제사를 돕는 제후와 천자의 단아한 모습’을 어찌 세 집 묘당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季氏旅於泰山. 子謂冉有曰 女弗能救與. 對曰 不能. 子曰 嗚呼 曾謂泰山 不如林放乎.
계씨가 태산에서 여(旅) 제사 지내자, 공자께서 염유에게 일러 말씀하시길 “네가 말릴 수 없었느냐?” 염유가 대답하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아아! 그렇다면 저 태산의 신이 임방만 못하단 말이냐”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체(禘) 제사에 있어 관의 의식 이후는 보고 싶지 않도다”
或 問禘 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어떤 사람이 체(禘) 제사의 뜻을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모르겠소. 그 뜻을 아는 자라면 천하의 모든 일들을 바로 이것을 보는 것 같이 잘 알 것이요. ”라고 하면서 자신의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공자께서 소(韶)음에 대해 말씀하시길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더할 나위 없이 착하도다.” 무(武)음악에 대해 말씀하시길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우나, 더할 나위 없이 착하지는 못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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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공자는 다양한 방면에서 당시의 예법을 잘 알고 있었음.
팔일(八佾)의 춤, 옹(雍),소(韶),무(武)의 음악, 여(旅), 체(禘) 제사 등등.
이런 예법들은 절대 공자가 뇌피셜로 만든게 아니고 당시에 널리 퍼져있었던 예법들이었음.
특히 공자가 탄식하는건 이런 예법들이 점점 망해가서 사람들이 제대로 안지킨다는거였음. 예를들어 팔일(八佾)의 춤이나 옹(雍)의 노래, 체(禘) 제사의 경우 천자만이 할 수 있었는데 고작 제후국인 노나라의 신하들이 함부로 이런 제사를 지내는 등 예법에서는 막장상황이었음.
이쯤만 해도 정통 주나라의 예법은 거의 망가져 있던 거임. 하긴 주나라 천자 뿐만 아니라 제후들 조차 실권을 잃고 대부들에게 휘둘리고 있으니까,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지.
그런 상황에서 공자가 한 일은 당시에 남아있던 예법들을 정리해서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것이었지. 각각의 제사들이 다 고유명사인걸 보듯이 공자의 예법지식 수준은 전문적이고 구체적이었음. 공자에게 태클을 거는 사람도 공자의 출신성분가지고 딴지를 건거지, 예법지식에 대해서는 뭐라고 안함.
그러면 공자는 이 지식을 어떻게 얻었나? 마찬가지로 논어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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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夏禮 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 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하나라의 예에 대하여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으나 기나라가 그것을 고증하기에 부족하고, 은나라의 예를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으나 송나라가 그것을 고증하기에 부족하다.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일 충분한 문헌이 있다면 내가 능히 고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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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말하듯이 책으로 공부함. 당시에도 당대의 예법지식에 대한 문헌들이 있었고 공자는 문헌들이 부족해서 예법을 고증하기 어렵다고 한탄할 정도로 책들을 통해 예법을 공부함.
즉, 공자는 당대의 예법을 모아서 정리하고, 그걸 토대로 정통 주나라의 예법을 회복해서 질서 있는 세상을 만들자! 라고 주장한거임.
그렇다고 공자의 업적이 당시의 예법을 정리만 한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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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으로서 어질지 않다면 예는 하여 무엇하며, 사람으로서 어질지 않다면 음악은 해서 무엇하랴”
林放 問禮之本. 子曰 大哉 問. 禮 與其奢也 寧儉 喪 與其易也寧戚.
예의 근본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참으로 큰 질문이로다. 예는 그 사치한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나으며, 장례는 그 형식을 다 갖추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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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원하는것은 예법을 통해서 "인간다움(仁)"을 회복하는 것임. 예법은 형식적 이지만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법이 말하는 본질(즉, 사람다움(仁)) 을 회복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음.
바로 이것이 공자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거고, 당시에 천자의 권위를 위해서 존재했던 예법이라는 개념을 공자는 창조적으로 재해석해서 유교의 근본원리인 仁을 바로 세운거임.
공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예법을 뇌피셜로 만든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예법을 형식적으로 정리한 것 아님. 과거의 것을 재해석 해서 현재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것이 공자가 한 일이고 그게 유학의 근본임. 물론 여기서 주공단을 비롯한 과거의 성인들은 진짜 성인보다는 권력자에 가까웠을 거임. 본인들의 권위를 위해서 예법을 창조했겠지. 하지만 공자는 기존의 예법을 재해석해서 자기만의 새로운 사상을 만든거지.
그리고 이런 예법 개념들은 공자의 제자들이 이어 받아서 훗날 <주례>, <예기> 등의 예법 경전으로 전승한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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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12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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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쪽바리 뇌피셜 반박 완료
ㅊㅊ
공자의 약점은 논어 팔일편 『자입태묘 매사문 시례야』에서도 보다시피 예법지식 연원이 책과 구전지식이라는 것이었고, 실전은 거의 해본적이 없었죠. 물론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이것을 '공자가 알면서도 물은 것이다. 알아도 묻는게 예이다' 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에 관해서 진짜 모르고 아는척하는거 아니냐는 아사노씨의 지적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거든요.
전통적인 해석이 지나치게 공자 쪽에 유리하다는 지적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어요. 님이 가져오신 子曰 夏禮 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 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구절도 지적해볼만한게, 기나라/송나라의 예법을 고증할 수 없다면서 하나라/은나라의 예법에 대해서는 자기가 능히 말할 수 있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공자가 당대에 예학 전문가로 유명했다는 것은 인정해요. 공자가 남아있는 예학을 끌어모아서 어떻게든 복원해냈고, 그것을 재해석해서 경전의 형태로 남겼다는 것도 위대한 업적이 맞죠.
다만 공자가 처한 환경상 그 예법이 얼마나 온전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밑글의 지적도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그 예법이 순정한 주나라의 예법이냐 아니냐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당대의 정치권력과 분리된 예법 그 자체를 사상으로 정립했다는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진갤러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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