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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2014/01/29(水) 01:07:37.24ID:M3yeakvd0
벌써 10년도 더 된 얘기인데 뒤쪽 세계 같은 걸 본 적이 있어.
당시 나는 친구가 없는 외톨이 중학생이어서
방과후나 점심 시간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을 읽었어.
작은 도서관이어서 1년 쯤 다니니까 관심 있던 분야의 책은 다 읽어버렸어.
다음은 어느 분야 책을 읽을까 생각하던 중 어떤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어.
제목은 [지지 않는 해]라는 책이었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 책은 도서관 가장 안쪽 책장의 맨 아랫단에 꽂혀 있었어.
책이라기보다는 소책자에 더 가까울지도 몰라.
표지는 태양에 달이 녹고 밑에 있는 인간계와 인간도 녹은 것 같은 그림이었어.
그 표지를 본 순간 원자폭탄을 나타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아.
내용도 기묘했어.
어떤 페이지에는 종이에 꽃을 말려뒀고, 또 어떤 페이지에는 문장으로
「해가 지지 않는다. 해가 지지 않으면 숨을 수가 없다.」
이렇게 적혀 있기도 했고 또 다른 페이지에는 이상한 그림이 끝없이 그려져 있었어.
거의 모든 페이지 그림에 해가 다 그려져 있었는데
딱 한 페이지만 레몬이 테이블에 놓여있을 뿐인 그림이 있었어.
테이블에는 [환영합니다] 이렇게 적혀 있었어.
그리고 여기서 또 깨닫게 된 게, 그 책은 페이지 번호가 도중부터 엉망이었어.
레몬 그림은 중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페이지였어.
꺼림칙한 기분과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 책을 다시 꽂아둘지 고민했는데
호기심에 이기지 못하고 계속 책을 읽어갔어.
아무리 그래도 책을 찢어서 늘어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페이지 순서대로 읽어가니까 레몬 그림은 그냥 표지였고
다음 페이지부터 나오는 해가 서서히 모습을 바꾸어 인간을 녹였고
마지막에는 해가 인간 형태가 되는 구도가 완성됐어.
그때였어.
멀리서 뭔가를 외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날 힐끔거렸어.
어쩐지 눈빛이 번뜩이는 것처럼 보였어.
나는 도서관에 있기 불편해져서 밖으로 나왔어.
그러자 어쩐지 공기가 탁한 느낌이 들었어. 평소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너무 신경 쓰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가기 시작했는데
평소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음에도 처음 보는 경치가 펼쳐졌어.
난 무의식적으로 계속 걸어갔어. 왜인지 불안하지는 않았던 게 기억나.
한동안 걸어가 보니 처음 보는 방파제에서 낚시꾼 몇 명이 낚시를 하고 있었어.
바다는 먹물처럼 새까맣고 하늘은 빨간색에 가까운 분홍색이었던 게 기억나.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가 낚시꾼 양동이 안에서 날뛰고 있었어.
낚시꾼은 가까이 다가온 나를 보고 잠깐 놀란 것 같았지만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낚시에 집중했어.
그래서 나도 거기서 떨어지려고 하던 그때였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어.
[잡아먹힌다.]
[네?]
그 말에 대답한 순간 까마귀처럼 생긴 새가 내 손을 쪼았어.
그와 동시에 낚시꾼이 양동이에 들어있던 물고기를 새한테 던졌어.
새들이 그 물고기에 몰려들었어.
낚시꾼은 어떤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
[서둘러.]
나는 그 방향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어.
중간에 딱 한 번 돌아봤는데 해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낚시꾼과 새, 경치도 증발해갔어.
536 ::2014/01/29(水) 01:38:09.13ID:mhxL8A7s0
>>535
재밌다
538 ::2014/01/29(水) 02:12:53.86ID:M3yeakvd0
거기서 나는 눈을 떴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침대 위에 있었어.
근처에 있던 간호사에게 말을 걸자 바로 의사를 불러줬어.
의사 얘기에 따르면 나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쓰려졌고
한 달 내내 병원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해.
머리맡에는 반 애들이 적어준 편지가 있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도착했고 두 분 다 오열하는 바람에 달래느라 고생했어.
539 ::2014/01/29(水) 02:14:32.46ID:M3yeakvd0
후일담은 3개 있어
1번째
뒤쪽 세계에서 날 도와준 낚시꾼은 내가 어렸을 적 돌아가신 삼촌이었어.
삼촌이라고 해도 멀리 살아서 2, 3번밖에 만난 적이 없대.
옛날 앨범에 같이 찍은 사진이 있었어.
그 후에는 매년 반드시 성묘를 가고 묘 앞에 근황 보고를 꼭 하러 가.
2번째
뒤쪽 세계에서 새한테 쪼인 상처는 현실에도 있었어.
나는 뒤쪽 세계를 처음에는 임사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몸에 남아있는 쪼인 상처는 뭐였던 건지 지금도 의문스러워.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었다고 착각하면
몸에 상처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는 걸 들어본 적 있는데 그걸까.
참고로 쓰러졌을 때는 전혀 외상이 없었다고 해.
만약 온몸을 새한테 쪼였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아.
3번째
실은 내가 정신을 잃은 동안 반 애 1명이 자살을 했어.
K라는 남자애였고 나랑은 거의 엮인 적 없는 흔히 말하는 양아치였어.
주변 평판도 별로 안 좋았어.
어떻게 평판이 나빴는지는 생략하겠지만
반 애들이 쓴 편지 속 걔가 쓴 부분에 [지지 않는 해]라고 적혀 있었어.
걔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놀랐어.
며칠 후 읽을 생각은 없었지만 학교 도서관에 다시 한 번 그 책을 찾으러 가봤어.
책은 그곳에 없었어.
그 후 K와 친했던 S한테 물어보니 K는 내가 기절하기 전에 읽었던 책을 읽고 싶어했대.
S는 말렸다는데 K는 말을 듣지 않았고 도서위원한테 물어봐서 책을 빌려 갔대.
그걸 읽은 시점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 책을 저주받은 책이라고 하며 태워버렸다고 해.
그 후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K는 이상해졌고 최종적으로는 목을 매고 자살했다고 해.
그 편지는 이상해지기 직전에 쓴 것이었어.
그 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평범하게 일을 하고 있어.
독서는 지금도 좋아해.
하지만 작가가 적혀있지 않은 책은 읽지 않게 됐어.
541 ::2014/01/29(水) 02:43:25.67ID:C5x0QSvT0
재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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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흥미롭네요
그 책을 한 번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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