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왕조로 압스부르고가 들어서고 왕조가 압스부르고에서 보르본으로 교체되기 전까지 16~17세기 약 200년동안 지속된 두 국가의 외교관계에 대해서 "스페인의 여력을 오스트리아에 퍼주다가 망했다"고 표현하는 경우를 많이 봤음.
사실 이걸 단순히 틀린 말이라고 지적하기는 어려움. 중부 유럽을 전장으로 한 17세기 30년 전쟁의 결과는 스페인의 패권 상실로 이어졌고, 그 스페인이 30년 전쟁에 끼어든 동기가 왕조 간의 혈맥으로 묶여있던 오스트리아와의 동맹관계인 것도 맞거든.
다만 30년 전쟁에 앞서, 왜 오스트리아가 30년 전쟁같은 무리수를 던지게 되었느냐에 대해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 생각함.
일단 압스 스페인-합스 오스트리아의 외교 관계에서 중요한 두 축은 첫번째로 저지대 문제와 두번째로 종교 문제라고 할 수 있음. 두 문제는 밀접한 연관이 있고, 사실상 첫번째 문제 때문에 두번째 문제가 파생되었다고 해도 살짝 과장은 있을지언정 틀린 말이 아님.
어째서 그러하냐? 일단 저지대 문제에 대해서 얘기해 보면, 사실 현대인이 보기에 스페인과 저지대가 상속으로 함께 묶인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이야기임. 스페인인이 마리 드 부르고뉴의 아버지인 용담공 샤를에 대해 쓰기를, "Este señor, sin tener nada que ver en el momento de su espacio vital, marcó la política de Aragón y Castilla.(그는 살아 있는 동안 스페인과 무관했지만 아라곤과 카스티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라고 했을 정도니까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리페 2세가 스페인과 저지대를 함께 물려받게 된 것은 결국 중세적 세계관의 상속법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음. 카를 5세는 저지대의 군주였고, 그 아들인 펠리페 2세는 카를 5세의 하나뿐인 아들로서 그 땅을 계승한 거임. 문제는 이때쯤 되면 이미 시대는 중세가 아니라 근대로 넘어갈 무렵, 즉 근세였다는 점인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면, 30년 전쟁에 스페인을 끌여들인 것이 근현대적 관점에서 어처구니 없는 짓이었다고 한다면, 스페인이 저지대를 상속령으로 들고간 것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임.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이베리아보다는 중부유럽에 가까울뿐더러 오스트리아와 신롬의 군주였던 막시밀리안 1세가 얻은 부유한 땅인 저지대를 스페인이 들고간 것이나, 왕조간 혈맥으로 묶인 스페인을 중부유럽의 전쟁에 끌어들여 스페인의 국력을 소모시킨 것이나 중세에서 근대로서의 전환기에 이루어진 과도기적인 실패 뭐 그런 느낌에 가깝다고 생각함.
아무튼 16세기 사람이던 카를 5세 입장에서는 이런 비판이 억울할 수는 있겠지만, 저지대를 동생인 페르디난트 1세 대신 아들인 펠리페 2세에게 상속한 것은 사실상 오스트리아와 저지대와 스페인 모두에게 출혈을 강요한 선택이었음. 내내 전쟁을 치렀던 스페인과 저지대도 그렇지만 오스트리아도 당장 오스만이랑 전쟁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정말이지 돈이 없었음. 돈이 없으니 뭐 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럼 두번째라고 언급한 종교 문제는 또 뭐냐? 일단 스페인이 저지대를 들고가기는 했는데, 지리적으로 프랑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던데다 당시 항해 기술이 딸려서 사실상 중부유럽에 있던 동맹국인 오스트리아의 협력 없이는 빡센 환경이었음.
여기서 오스트리아의 협력이라는 것은 당연하게도 저지대 반군들을 때려잡는 것을 돕는 것도 포함됨. 근데 얘네 또 신교도들이잖아? 오스트리아 군주는 신롬 황제직 맡고 있잖아? 신롬 제후들 한창 개신교 코인 탈 때잖아? 이렇게 되다보니 오스트리아 입장에서 저지대 문제에 관한 스페인과의 협력은 신롬 개신교 제후들이라는 벌통을 건드리는 것과 매한가지였던 거임.
실제로 강경 가톨릭 정책을 내세우며 30년 전쟁을 일으킨 신롬-오스트리아 군주 페르디난트 2세와 달리 16세기의 신롬-오스트리아 군주들인 페르디난트 1세-막시밀리안 2세-루돌프 2세는 아우구스부르크 화의를 필두로 한 종교적 유화책을 밀어줬던 편이었음. 근데 이게 또 저지대 문제로 골치아픈 스페인 입장에선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어서 여러모로 오스트리아에 압박을 가했는데...
펠리페 2세의 장남 돈 카를로스가 제대로 왕위 계승을 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 하여튼 그래서 펠리페 2세는 여동생 마리아를 통해 조카이자 사촌 막시밀리안 2세의 장남이기도 한 루돌프 2세를 스페인에 데려와서 교육시킴. 아들인 돈 카를로스가 계승을 하지 못하게 되면 조카인 루돌프 2세가 계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마는...
근데 이걸 다시 생각해보면 오스트리아 입장에서는 루돌프 2세가 확정상속인(군주의 장남)이고 스페인 입장에서는 루돌프 2세가 추정상속인(군주의 조카)인데 스페인에 데려가서 키운 거임. 오스트리아 입장에서는 무조건 다음 군주인데 그걸 스페인에 내놓아야 했던 거라니까? 친척이기도 하고 왕위 계승 서열도 높았다고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압박이 있었던 거임.
열정적인 가톨릭 신자였던 스페인의 펠리페 2세와 루터교로 개종할 생각까지 했었던 막시밀리안 2세의 관계가 나빴던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패권국 스페인이 오스트리아에 간섭하는 구도가 되니 아무리 사촌이었다고 한들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음. 아버지 세대인 카를 5세와 페르디난트 1세도 중부유럽을 대상으로 종교 강경책 vs 종교 유화책으로 의견이 나뉘었었으니 어찌보면 대를 이은 갈등이었던
뭐 여기까지 보면 대충 알겠지만, 페르디난트 2세같은 강경 가톨릭파 군주는 그냥 나온게 아니라 스페인 측에서 그걸 원했기 때문에 나왔던 쪽임. 실제로 페르디난트 2세는 스페인식 가톨릭 교육을 받은 군주였고, 오스트리아가 16세기 내내 스페인이랑 제후들 눈치 봐가면서 하던 유화책과는 정반대로 강경책을 내세움.
페르디난트 2세가 가톨릭 꼴통인 것도 맞았지만, 오스트리아 측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음. 저지대는 스페인이 들고가서 돈도 없이 가난한데다 스페인에서는 가톨릭 강경책 하라고 허리 찌르고, 제후들은 개신교 믿겠다고 드러누우니 16세기 내내 이도저도 못하고 둘 사이에서 눈치보던 오스트리아 입장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스페인 골수에 빨대 꽂고 가톨릭 강경책 코인 탄 결과가 30년 전쟁이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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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스페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가 저지대를 갖고 있었다면 나았을려나?
평범하게 생각하면 걍 페르디난트가 스페인 왕 하고 카를이 신롬-저지대-오스트리아 군주 하는게 맞지 않았을까 싶은데 역시 당대 계승법을 어기는 건 힘들었을 것 같긴 함...
여러 관점이 있지만 난 개인적으로 스페인 압스부르고 본가가 오스트리아를 일부러 유기한거라고 생각했음 압스부르고 왕조의 본류는 오스트리아가 맞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재정적/국제적 위상은 부르고뉴와 스페인으로 옮겨갔고 카를 5세는 신앙의 수호자로서의 오스만의 대한 방어/개신교에 대한 징벌을 동시에 수행해야했음
일단 카를 5세는 오스트리아에 애착 없었긴 해 페르디난트 1세에게 오스트리아(보헤미아랑 헝가리 동군하기 이전) 통으로 주는 것도 싫어서 반갈하려 했었으니
그런데 그전에 신교도 제후들이 정말 개새끼들이라 온갖 반역질에 왕가에 똥뿌직뿌직싸고 그래서 신교도들에 강경정책할수밖에 없게만듬
그거에 대한 평이랑은 별개로 스페인이 자기 등골 뽑아가면서 개입하게 된 배경같은 느낌이랄까
프로테스탄트 동맹은 3년컷이고 만악의 원인은 모든 것의 배후에 있던 프랑스라 리슐리외 척결 못하면 결국 나긴 했을듯
뭔가 터지긴 했겠지만 30년 전쟁급으로 커진건 이것저것 맞물린 결과라고 봐서...
대붕이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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