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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도랑물을 식수로…농촌의 어두운 민낯
입력 2016.03.23 (09:04) 수정 2016.03.23 (09:32) 취재후
■ 현대판 노예, 또 발견

지난달 경북 상주의 '현대판 노예 이광길 씨' 보도 이후, 많은 제보를 받았습니다. 한결같이 저임금을 받고 수년째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중 경북 성주의 한 마을에서 50년 동안 남의 집 농사일을 돕고 산다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판잣집에 살면서 온종일 주인집 참외 농사일을 한다는 노인. 임금은 일 년에 2백만 원, 그러니까 한 달에 16만 원 남짓이라고 했습니다. 제보자는 이 노인이 밥은 제대로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농사일을 하고 있는 고판준 할아버지농사일을 하고 있는 고판준 할아버지


찾아간 곳은 참외 농사가 한창인 비닐하우스 단지였습니다. 그곳에서 제보자의 말대로 150㎝ 정도의 키에 씻지도 못한 몰골로 농사일하는 노인을 발견했습니다. 연세가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1940년생이라고 했습니다. 올해 77살, 고판준 할아버지입니다.

샌드위치 패널로 벽을 세워 비닐로 감싼 할아버지의 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작은 방에는 밥솥과 탁자 등 살림살이가 있었습니다. 바닥엔 흙먼지가 덮여 있었고, 일하며 입었던 옷이 여기저기 널려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도랑물을 길어 식수로 쓴다고 했습니다. 농경지 사이에 난 조그마한 도랑. 그 도랑 주변에는 농약병과 비료 포대가 가득했습니다. 이 물을 벌써 수년째 먹고 있었던 겁니다.

라면국물에 만 밥으로 식사하는 고판준 할아버지라면국물에 만 밥으로 식사하는 고판준 할아버지


고 씨는 이런 생활이 지겹다고 했습니다. 벗어나고 싶다는 말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가진 게 없다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버텨가며 지내는 생활.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경북 상주 이광길 씨 처럼, 고용인 박 모 씨가 폭언이나 폭력은 휘두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턱없이 적은 월급에 비참한 생활공간…. 박 씨는 이런 열악한 상황을 알고도 고 씨를 6년이나 방치했습니다.

■ 지역사회 똘똘 뭉쳐 고용인 박 씨 두둔

취재 뒤에 성주군의 고위 공무원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고용인 박 씨가 지역에서 덕망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지역사회 파장을 고려해 기사를 축소해 달라는 요청도 했습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공무원도 박 씨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조목조목 박 씨의 견해를 대변했습니다. 박 씨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성주군의 한 지역 신문사에서도 전화가 왔습니다. 저희의 취재가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다고 했습니다.

“돌봐주고 있다”고 주장하는 고용인 박 모 씨“돌봐주고 있다”고 주장하는 고용인 박 모 씨


고용인 박 씨의 항변과 공무원들의 요청, 그리고 지역신문사의 주장 모두, KBS가 취재한 내용은 엉터리라는 겁니다. 고판준 할아버지를 눈으로 보았고, 저간의 사정을 귀로 들은 데다 카메라에 영상으로 이 모든 걸 담았는데, 고용인 박 씨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이번처럼, 한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지역사회 전체가 한 사람을 감싸드는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보도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또 바로잡아야겠지요.

경북 성주군 월항면사무소경북 성주군 월항면사무소


그런데 고판준 할아버지가 50년 동안이나 지역사회에서 방치됐던 것이 지역사회의 이런 태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민, 특히 그 지역사회의 명망가나 유력자면 무조건 감싸드는 폐쇄성이 고 씨를 '현대판 노예'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들 중의 누구 하나도 같은 '성주군민'인 고 씨의 처지를 설명하거나 두둔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현대판 노예'로 만드는 농촌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성주군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이광길, 고판준 씨 지금 어디에?

보도 이후 고판준 씨는 성주군의 도움으로 한 양로원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이곳에 온 고 씨는 그동안 씻지 못했던 몸을 씻고, 손발톱도 정리한 뒤, 속옷과 겉옷도 새것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밝은 형광등 불빛과 깨끗한 이불…. 고 씨는 사실상 처음 누려보는 것들입니다.

이곳에서 고 씨는 심리치료도 받고, 친구도 사귀면서 앞으로 살아갈 방안을 찾을 생각입니다. 고 씨만 원한다면 계속 이 양로원에 남아도 됩니다. 고 씨는 원래 일을 하던 사람은 일하면서 살아야 한다며, 독립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양로원 고판준 할아버지양로원 고판준 할아버지


상주의 이광길 씨는 최근 경북 예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 병원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나눔펀드'로 이광길 씨를 돕기로 한 겁니다. 이 병원에서 광길 씨를 수십 년 동안 괴롭혔던 척추측만증도 치료하고, 완치된 이후에는 병원에서 일하며 생활할 예정입니다. 물론 광길 씨는 법이 정하는 수준의 월급도 받게 됩니다.

예천 요양병원에서 새 삶을 시작한 이광길 씨예천 요양병원에서 새 삶을 시작한 이광길 씨


■ 마을 주민들은 왜 알고도 내버려뒀나?

이광길 씨와 고판준 씨 취재를 하면서 의아했던 것은 마을 사람들이 두 사람의 부당한 처지를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왜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의 처지를 외면한 걸까요? 전문가에게 물어봤습니다.

"현대판 노예들이 제때 신고가 되지 않는 이유는 농촌의 특수성도 한몫합니다. 1차 산업 중심인 농촌은 혈연과 지연이 강력히 결속된 집성촌으로 이뤄져 있어 타인의 불합리를 바로 잡기 어렵습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 이웃 간의 결속이 약자를 함께 돌봐주는 순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공공의 범죄나 무관심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무는 역기능도 합니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농촌에서는 마을 이장의 권한이 막강한데, 이장의 묵인하에서는 사실상 노인들의 문제 제기는 어렵습니다."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문근 교수>

■ '탁상복지'..농촌 복지는 먼 나라 얘기

정부는 2018년까지 행정 말단인 '읍면동 주민센터'를 '복지 허브'로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행정의 말단 단위에 복지시스템을 구축해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도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농촌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고판준 씨가 사는 경북 성주군의 경우를 보면 면사무소 한 곳에서 담당해야 할 마을이 22곳 입니다. 1~2명뿐인 복지 담당 공무원이 이곳을 돌며 '맞춤형 복지'를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겁니다. 읍면동 복지 허브 사업을 '도시형 복지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해 농촌에선 '마을 이장'을 복지 전달체계의 최일선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고판준 할아버지를 고용한 농민 박 모 씨가 마을 이장입니다.

박 씨는 고 씨의 불행한 처지를 면사무소에 알리지 않았고, 오히려 악용했습니다. 이 때문에 고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도 선정되지 못하다가, 보도 이후에야 기초수급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마을 이장'이 눈 감으면 농촌에서는 사실상 '복지 허브'도 '맞춤형 복지'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전형적 사례입니다.

농촌의 실정에 맞는 복지시스템이 구축돼야 합니다. 지연과 혈연으로 묶인 '집성촌 사회', 사회적 약자에 둔감한 폐쇄적인 농촌 문화에 맞는 복지 제도가 마련돼야 합니다. 면사무소 책상에 머물러 마을 이장에게 의존하는 '탁상 복지'로는 제2의, 제3의 현대판 노예를 막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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