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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명개벽 제41호  
발행일1923년 11월 01일  
기사제목동해의 一點碧인 鬱陵島를 찻고서  
필자李乙  
기사형태논설  
동해의 一點碧인 鬱陵島를 찻고서
李乙
동해에 突出한 鬱陵島야 너는 잘 잇드냐. 깁흔 곳에 숨은 네 얼골 속절업시 그리워하던 나의 열정 뉘라서 알아주랴 만은 琴湖, 兄山의 광야를 돌아서 日月, 石屛의 天險을 넘어 산 거듭, 물 거듭 文化調査의 거름, 今日이 나로서는 千載一遇의 絶好機이다. 더구나 아모리 하야도 結緣의 길이 업뎐 成年總角的인 나로서 맛츰내 너의 선을 보게 되얏슴에야 그 狂喜가 엇더하랴.
海國一夜의 인류애
출발점을 寧海 大津港으로 하게된 때는 正이 初伏日 下午 一点이얏다. 부두에 列立하야 一路平安을 齊祝하는 當地 인사 다수의 성원을 어든 나는 朝鮮郵船金海丸우의 一人이 되야 사정업는 기적 一聲 어느덧 觀魚臺를 뒤에 두고 竹邊을 향하야 北走한지 須臾에 다시 羅針을 돌니어 東折하야 烟波千里를 一瀉하얏다. 이로부터 斗轉月落刻 一刻 밤이 깁허지자 아아 의외 태산가티 일어나는 淘湧蕩漾하는 怒濤激浪은 점점 위험을 가하야 온다. 원악 船暈에 强氣가 부족한 나의 短軀는 발서 風打浪打 依地업시 寢臺中에서 격거못보던 회전운동을 시작하야 寸暇를 겨를치 못하얏다. 이것을 나의 약점에 붓칠 뿐이랴. 二百十七噸에 불과한 선체의 公麽를 凌駕하는 샙바람(南風)의 亂暴에야 엇지하랴. 그러나 一毛의 利를 다토던 이방인도 囊槖을 기울이어 慰耤하며 避席外面하야 제법 예절을 찻던 남녀도 서로 붓들고 呼天한다, 이러케 동일한 경우를 당한 舟中은 도리어 동병상련 四海一室의 자애가 橫溢하는 것 갓다. 이해의 충돌, 빈부의 차별, 계급의 爭鬪, 懊惱, 憧憬, 咀呪의 세계로부터 버서 난 이날 밤, 그야말로 나의 반생을 처음 늣긴 刹那!
해면에서 一瞥한 全島의 外形
一寸의 縷命을 櫓頭에 걸어노코 鰐浪鯨波에 나붓기어 가즌 고난을 備嘗하던 一夜는 다시 風靜浪息의 曙天으로 옴기어 彼岸에 접근하야 온다. 入港의 준비를 豫報하는 기적소리에 驚起한 나는 蒼皇이 갑판 우에 올나서서 망원경의<74>힘을 빌어 멀니 鬱島전체의 외형을 一瞥하얏다. 一手로 움킬 듯한 全島의 影子속에 凸峯凹壑이 원시림의 萬綠에 포위되야 紅日로 더부러 빗을 다토는 선명한 山色, 層岩絶壁이 병풍과 가티 茫洋한 해양 중에 둘니어 兀硉한 孤島를 수호하면서 侵迫하는 怒濤를 격파하야 永㥘의 戰을 지속함은 恰似 이 지도상으로 본 『지불올타』가 연상되며 따라서 絶海千秋의 로맨쓰가 적지 안은 別區로 알어진다.
山門이 半開된 道洞港
竹邊에서 一折하야 七十六浬의 전속력으로 풍랑을 破碎하고 寸寸推進하는 기선은 어느덧 曉色이 稀薄하야 오는 해안을 迂回하야 上午 九時 예정대로 道洞港에 碇泊되얏다. 가는 곳마다 四顧無親한 나에게 남달니 주는 것 업시 고맙은 사람은 경찰계의 종사자들인 듯 하다. 피난처로 알고 안심하야 상륙하는 약자를 붓들고 『당신이 00씨 이지요. 숙소는 어듸로 하실 터이오.』라고 뭇는 소리는 다시 蓬萊島의 眞境을 차자 들어오던 俗客의 신경을 變動케 하는 것 갓다. 그러나 엇지 되얏던지 절에 간 색시的인 나는 그들의 인도하는 대로 客苦를 풀게된 것만 다행으로 역일 뿐이다.
듯듯듯 거 건 듯건듯건댄 道洞(본명 道房)은 최초 日本人 岩鶴이란 자가 鳥取縣 방면으로부터 도래하야 이 곳에 雜貨商의 貨房을 舖設한 후 도민 다수가 蝟集하야 互相 교역함으로 本洞名을 道房이라고 하얏다 한다. 目下 洞內의 주민은 朝鮮人 百二十戶, 日本人 百三十七戶가 잇다. 本洞은 비룩 峽中에 介在하얏스나 全海岸中에 船隻出入의 가장 이편을 주는 관문이 되는 관계상 台霞洞으로부터 官公署가 이곳으로 移設된 후 수산조합이며 釜山稅關出張所도 본항 내에 逐次 排置되고 다시 日露戰時에 敷設되야 元山을 경유하야 각지 陸線을 연락하는 海底電線이 이곳으로 통과되고 또한 內日本의 境港과 직통되야 월 일회의 생산품무역의 互市를 개시하고 쌍방의 경제적 調和를 力圖하는 것이며 다시 매주<75> 定期郵船의 寄港日을 市日로 하야 내외의 物産이 집중됨을 보면 本洞은 실로 一島中 유일의 도시가 된다. 그러나 이곳도 발서 남의 세상가티 뵈인다. 烏賊魚의 産地라 한다 만은 그 이익이 뉘의 손에 도라가며 木物이 名産이라 하지만은 자본주의를 발휘하야 이권을 攫取하는 자 그 누구이냐?
島內 一周의 四日間
태양의 열을 밧는 海面의 水蒸氣, 聖人峰頭를 것칠적 마다 霏霏이 나리는 踈雨. 수일 동안을 두고 遠方來客의 困憊를 풀어줌도 만족하거니와 다시 霽天의 輕風은 颯颯이 吹動하야 無冠宰相의 短策을 催促하야 먼저 北路를 열어 全島를 요리할 만한 氣焰을 吐케한다. 道廳後山麓에 올나 一般夫의 開通地로 名傳하는 沙工넘이라는 杏南洞의 連鱗한 八板家를 俯瞰하고 다시 방향을 變하야 等外新路로부터 苧洞(모시게)으로 넘어가서 村翁의 指端을 따라 日露戰役에 爆沈된 露艦의 戰跡을 구경하고 다시 窮谷의 험로를 밟아 臥達嶺에 올나 臥牛形의 竹島(대섬)를 조망하얏다. 竹島는 目下 本島 農會의 所有冬苗圃로 죽림이 繁茂하고 삼림 기타 木茸과 약재가 多産하는 외에 大豆와 玉蜀黍의 작물도 不少하야 이것만으로도 一家産의 생활이 裕足하다고 한다. 島內에는 朴在天이란 자가 本島개척과 동시에 이 無人島에 들어가서 一戶를 新說하고 지금까지 제법 자유로운 생활을 향락한다고 한다. 그러나 도중에는 식수가 업서서 경찰서로부터 일주 一桶水의 공급을 밧음은 너무나 유감이다. 다시 石圃洞으로 향하는 길에 무인도인 觀音島와 三本立의 怪岩을 一瞥하고 燭臺形의 竹岩을 지나 왕년 慶北視察使 尹始炳이 本島를 관찰하는 당시 기념으로 일홈 지은 天府洞을 環視하고 芮船倉이라는 昌洞의 객사에서 一泊하게 되얏다. 昌洞은 北面의 중심지로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가 잇는 외에 目下 신축 중인 사립학교가 잇다. 이것을 飢者甘食이라 할는지 記者의 甘食이라 할는지 엇더턴지 朝夕으로 식탁에 오르는 꽉새고기와 貼鰒의 珍錯이 客子의 구미를 도두어줌은 실로 昌洞主婆의 음식솜씨를 발휘하는 것 갓다.
二日은 다행이 朴敬鎭군의 指路로 다시 于山古都의 洪門洞(본명 紅箭門洞)을 지나 高坂을 넘어 石屛과 雲林에 포위된 羅里洞(일명 白合洞)의 大噴火口에 들어가 入島後 처음되는 白雲深處 七十餘戶의 山村을 구경을 하고 그 길로 바로 小羅里洞으로 넘어가서 大噴泉을 차자 들어갓다. 이 湧泉의 水量은 一次의 十斗이상을 초과하고 한번 이 수면에 접근하면 骨冷, 魂淸, 幻世의 늣김을 堪禁할 수가 업다. 이 곳에서 해안으로 나리어 腹背로 漁船을 呑吐하는<76> 孔岩과 意氣沖天한 錐山(송곳산)의 奇絶을 歷見하고 光岩에서 午餐을 노닌 후 그만 朴君을 떠나게 되얏다. 이로부터 나의 동작을 가티하게 된 것은 다만 三尺을 短笻뿐이다. 生面江山에서 이러케 朴君의 慇懃한 사랑을 바다보기는 천만예상외로 생각하는 나는 滿腔의 謝意를 표하고 急急이 前路를 물어 平里를 것치어 老人峯을 엽헤두고 玄圃洞(거문개)에 일으러 暫間 歇脚하는 길에 해안의 暗黑한 水石과 于山시대의 유물인 古墳의 數箇所를 一望하고 이 곳으로부터 香木洞의 통로와 分岐된 台霞洞의 행로를 一貫하야 黃土坎(황토금)을 넘어 台霞洞으로 나려가서 一泊하얏다. 黃土坎은 고래 海賊 搜討使가 일차 본도로 들어오면 반다시 이 곳에서 黃土를 取하야 歸朝후 鬱島賊搜討의 증거물을 삼아 獻上하엿다는데 이 黃土이야말로 金色이 玲瓏한 纖塵이 浮動하야 일견에 珍奇物로 뵈이어진다. 台霞洞은 本島 개척초에 先着居民中 崔雲奎라는 자가 자칭 乘霞天台仙이라 하고 洞名을 台霞라 하얏다 한다. 本洞은 水稻가 油油한 洞內의 지형도 비교적 平坦한데다가 따라서 開島이래 문물이 가장 賑盛하던 邑市이얏는대 아즉도 百六十戶에 近한 농촌의 상태가 그리 彫殘치 안어 뵈이고 다시 朝鮮新敎育令을 초월하야 日鮮共學制가 실시된 것은 너무나 새삼스럽어 뵈인다. 경찰관 駐在所前에 建在한 城隍祠에는 距今 七十餘年前에 搜討使 南昊가 率來하얏다가 本洞 항구에서 溺死한 通引, 妓生의 망령을 위안한다는 위령물로 지금까지 衣裳 二件이 依然이 걸니어잇는 것은 그나마 本島의 一箇 舊蹟거리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항시 港內에는 풍랑이 激高하야 교통상 불편이 심한 결함으로 하야 往年 島廳을 道洞으로 이전한 후 市況은 다시 昔日의 번영을 볼 수가 업게 되얏다.
三日 아츰은 台霞洞 淸溪川하류에서 濯足하고 輕步를 옴기어 南陽洞으로 향하야 전진하는 도중에 不意驟雨의 沮止를 당한지 半晌에 겨우 台霞嶺을 넘어서자 다시 怒號하는 山風은 深壑을 울니어 萬籟가 일어나고 해면을 뒤덥허 濛濛이 蒸上하는 怪霧는 全山을 一種二種 匝圍하야 격심하게도 행인의 魂膽을 戰慄케 한다. 이것이야말로 天台麻姑의 幻戱가 안인가 하얏다. 석양은 발서 樹枝에 걸니고 雨水에 流流된 山路는 맛츰내 험악하야젓다. 하는 수 업시 鶴圃洞, 水層洞, 龜岩 등 향로를 변경하야 南西洞을 지나 南陽洞으로 直向. 나는 염치를 무릅쓰고 西面長 申泰翼君의 도움을 바다 一夜의 안식을 엇게 되얏다. 南陽洞은 西面 十區의 중심지로 면사무소가 이곳에 잇고 四十餘名의 청년을 수용한 사립학원이 잇는 외에 다시 폐교와 다름업는 日人의 소학교 名色도 一箇所가 잇슴을 보앗다.<77>
四日은 道洞으로 歸着하는 최종일이다. 南陽洞을 등지고 石門洞 幕洞의 동포를 위문치 못하고 섭섭이 凄雨중에 고령을 넘어 一息의 驅步로 通九味로 直走하야 雨歇을 긔다려 洞口를 一瞥하얏다. 本洞은 지명과 가티 桶內形의 해안협곡에 五十餘戶의 인가가 連甍하야 잇고 다시 路傍에 傾斜된 石碧面에 檢察使 李圭遠의 銘文이 잇슴을 보앗다. 이로부터 해안 一線의 坦道로 可頭峯압헤 당도하자 다시 강풍을 따라 일어나는 怒濤는 태산가티 모라들어 峯頭의 岩壁을 猛擊하야 交通을 遮斷한다. 아아 今回의 行程은 엇지 이러케 험악할 뿐인고. 그러나 百尺干頭에 一步를 躕躇치 안은 나는 이에 意를 決하고 파도의 進退하는 순간을 타서 무사통과하야 그 길로 다시 中嶺에 올나 滿山한 作物의 靑草를 둘너보고 長興洞을 바라보면서 新里로 나려와서 香肥한 猪肉과 美味의 甘蔗로써 배를 채우고 다시 활기잇게 전진하야 玉泉洞을 안전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바로 아룩사 라는 沙洞(본명 아래구석)으로 들어가서 蠶業傳習場을 歷覽하고 道洞으로 넘어오는 歷路에 炭酸 수원지를 차자 數盃의 淸凉劑로써 四日간의 煩惱를 痛滌하고 悠悠이 客店에 歸着하야 雜記帳을 정리하고 다시 島勢一班을 槪括하야 數題의 起草를 맛치고 나니 때는 임의 二十六日 下午 四時가 되얏다. 발서 硯池의 香煙은 사라지고 遠浦의 歸帆은 急을 告한다. 卽時 行李를 收拾하야 船頭에 올나서니 滿島의 風樹가 멀니 離恨을 먹음어 뵈이더라. 도라보건댄 日程의 短促과 天氣의 不調로 하야 예정의 행사를 원만이 진행치 못하게 된 것은 물론, 더구나 각각으로 변화하는 沿路의 풍경 그 중에서도 聖人峯의 殘雪, 羅里洞의 風穴, 草峰洞窟의 靈蹟, 西面의 水層層 등의 名區를 탐험치 못한 것은 무엇보다 이상의 유감이다. 그리고 地形 及 物相과 인사의 移動的으로 작성된 本島地名의 유래는 일종 史談거리가 적지 안타. 이것은 開島이래 全南 麗水郡 三山面 三島方面의 어부의<78> 다수가 本島 名産인 靑藿을 채취키 위하야 매년 三四月에 來集하얏다가 六七月이 되면 撤歸하야 이러케 來往이 頻數하는 동안 不知 中 그럭저럭 變稱된 것이 거의 전반에 亙하얏다 한다.
所謂 小王國의 沿革
鬱陵島는 新羅 당시 于山國으로 何瑟羅州(今 江陵) 軍主 異斯夫가 詭計로써 兼倂한 이래 점차 新羅의 衰頹로부터 高麗의 內訌과 李朝의 文弱은 맛츰내 도민으로 하야금 化外에 방임치 아니 못하게 되야섯다. 그리하야 無人跋扈하는 島人의 횡포는 逐年 연해일대를 蹂躪함으로 李朝 世宗時부터 月松(今 平海) 萬戶를 鬱島 賊搜討使로 兼任하야 수시 搜討한 결과 일시 本島는 無人島로 化하얏섯다.
그러나 全島沿岸의 막대한 漁利와 도내 무진장의 林産은 모다 內日本의 漁民 及 木商 등의 침략을 바다 다시 本島의 참상은 거의 危機一髮에 瀕하얏섯다. 그리하야 영토개척의 필요를 感한 韓廷에서는 즉시 廟議를 決하야 距今 四十一年前(癸未)에 鬱島開拓令을 발포하고 島長을 置하야 島務를 掌理한 후부터 내륙의 이주자가 激增하야 一島의 面目이 一新하야젓다 하며 이러함을 따라 光武 五年에 島를 郡으로 昇格하얏다가 日韓倂合의 際에 다시 島制를 頒布하야 금일에 至하얏다 한다.
그리고 本島의 주민은 아즉까지 石田草食이나마 도내의 天産物이 풍부하고 따라서 外圍의 刺戟을 受하는 事가 少함으로 남달니 낙천적 생활을 享하고 더구나 郡守級으로서의 행정, 사법의 전권을 행사하는 島司는 그야말로 一島의 왕자로 擬치 안을 수 업서 뵈인다. 이로써 보면 本島로서 동해상의 小王國이란 존칭을 밧음이 그리 남붓그럽지 안으리라 한다.
島內 日鮮人의 所有地價의 比較
區 分 田 畓 垈 雜種地
日本人 8,852 645 3,020 7
朝鮮人 14,810 4,159 5,922 1
多角的 趣味의 지형
本本本島는 朝鮮의 極東에 僻在한 絶海의 一孤島로 江原道 蔚珍郡 竹邊을 距하기 東北海上 七十六浬, 內日本 鳥取縣 境港을 距하기 南海上 百七十二浬의 부등변 오각형을 成하얏다. 도의 전체는 火成岩으로 成한 일대 死火山으로 울창한 원시림에 隱蔽되얏다. 그리하야 본도 명칭의 유래가 이로써 비롯하얏다 한다.
태고 噴火口의 外壁의 중앙에 聳立한 최고봉으로 해발 九百八十三米突되는 聖人峯, 本峯의 최고봉인 九百米突의<79> 卵峯, 九百六十六米突되는 彌勒峯의 諸峯은 모다 도내 북편으로부터 분화구의 좌우 羅里洞을 圍立하고 다시 각방면으로 分派된 支脉은 모다 해면을 향하야 急走하얏다. 그리하야 全島의 地勢는 直立한 山岳으로 成하얏슬 뿐이다.
다시 聖人峯으로부터 南面 苧洞灣에 注入하는 연장 一里의 溪水와 羅里洞 舊噴火口에 浸潤되는 雨水가 卵峯의 中腹(해발 四百米突)으로부터 약 十五六派의 水量이 되야 飛流直下 十四五町을 지나서 海에 注入하는 溪水, 이러케 蜀道의 險을 연상하는 방방곡곡 斷崖絶壁의 사이사이로 潺湲하는 溪流 혹은 急湍이 되야 雲林을 헷치며 혹은 飛瀑이 되야 天梯石棧을 넘어 그 變態無窮한 氣勢. 이러케 다각적 취미를 가진 本島의 지형은 실로 別有天地의 靈區인 듯하다.
島內 日鮮人의 敎育機關
校名 箇所 生徒數
尋常小學校 3 162
普通定校 1 139
改良書堂 12 190
朝鮮一의 貧民窟
본도 면적 四方里 七二, 三面 九洞里에 분포된 戶數는 千五百四十九戶(內日本人 一七六)이다. 개척이래 본도의 이주자의 다수는 生計末由者, 犯罪亡命者, 一時避難者 등으로 모다 遠慮의 乏한 者 뿐이라 한다. 目下 內外人을 불문하고 빈부의 懸隔이 別無한 資産程度의 低級됨을 보아도 一島는 전혀 貧民窟임을 넉넉히 증명하겟다.
먼저 농촌을 보면 전주민의 일상생활상 必須物로 하는 馬鈴薯, 玉蜀黍, 大豆가 主作이 되고 養蠶이 부업이 되얏다. 其 中에도 大豆와 養蠶의 豊凶은 농가의 경제를 좌우한다고 한다. 그리고 本島는 往昔 삼림시대에 在하야는 推積한 낙엽의 腐朽覆土한 天惠로 地味가 肥沃하얏스나 개도후 三十年間에 一掬외 비료를 施치 안코 耕食하얏슬 뿐 아니라 入鋤地의 대부분은 三十五度 이상의 急傾斜地요. 더구나 粘着力이 부족함으로 强風大雨의 계절이 되면 반다시 表土를 상실한다, 양분을 流下한다 하야 이러케 점차 소모되는 지력은 결국 농작물의 수확을 감소치 아니치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 반면에 年年 五六萬圓에<80> 達하야 생산율을 증가하는 蠶繭의 수익은 도리여 도민의 喉渴을 免하게 하는 것 갓다.
다음 어촌을 보면 종래 烏賊이 어업을 주업으로 하야 생계의 資를 求하야 왓스나 大正 七年이래 계속되는 漁凶으로 하야 窮乏이 其極에 達한 어민의 대부분은 타지방으로 移去하고 지금 잔존한 자는 雜魚의 어업으로 약간의 수입과 기타노동으로 僅僅 糊口하는 중이라 한다. 그리하야 수년전까지 繁華의 중심지라 하던 본도 유일의 어항인 道洞도 맛츰내 寂寞江山이 된 감이 업지안타. 그러나 今春부터 점차 烏賊의 魚子가 沿海附近에 다수 遊泳한다함이 그윽히 어민의 신경을 예민케 하는 듯 하다.
다시 商界를 도라보면 종래 도내에서 상업에 종사한 자의 다수는 日本人의 雜貨商兼 仲買業者이얏다 한다. 어업부진의 영향은 맛츰내 金融의 逼迫과 商取引의 圓滑을 缺케하야 아모리 時勢挽回에 고심하얏스나 其効를 奏치 못하야 개중 資力이 有한 자는 모다 타처로 移去하얏다 한다. 그리하야 此亦 농사의 개량과 漁況의 회복의 新機運을 企待치 안을 수 업슬 뿐이다.
島內 住民의 1년간 生活費(各業別 槪算)
區分 上流 中流 下流
農 1,100円 400 120
漁 900 410 90
商 1,840 890 360
평균 1,290 570 190
비고 각 계급의 8할은 식료품 及 의복비로 外 2할은 기타 *비로 소비
有多無多의 多多島
본도는 잇는 것도 만커니와 또한 업는 것도 만타. 그리하야 웨 그리 만타는 것이 만으냐 하는 것이 이 지방의 笑話거리가 되얏다. 奇巖怪石도 만코 飛湍瀑流도 만코 急坂曲逕도 만코 春秋이면 全島를 剝皮袪骨하는 烈風淫雨, 三冬이면 八方封鎖하는 陰雪도 만타만은 文房具, 衣欌材로 四圍해안에 馥氣가 농후한 香樹, 家具 及 建築材로 山野到處에 叢立한 槻樅, 首飾品으로 眞冬柏油, 약재로 厚朴, 獨活, 前胡, 大黃, 기타 食用의 「멩이草」 등 천연의 名産이 풍부하다. 다시 동물로는 累年 全島의 慘禍를 暴注하던 田鼠類, 당시 窮境에 몰입한 島民의 飢饉을 救急하던 「꽉새」고기, 매년 생산이 過剩되야 百餘頭에 달하는 生牛의 移出, 冬節이면 七十錢에 불과하는 歇價의<81> 軟牛肉, 흡연자만 보아도 빨부빨부 啼逐한다는 烏子, 客子의 고민을 더하는 蚤虫, 곡물로는 米飯은 너무 滑澤하야 口味에 不適하다고 換食하는 玉蜀黍, 家家門頭에 버려노코 未成少年의 두뇌를 浸漬하는 濁酒, 이만하면 잇는 것도 어지간하거니와
다시 山野에는 山猫, 鼠類, 啄木鳥, 烏, 梟, 隼, 「꽉새」, 頭背의 毛色이 濃赤한 小雀외에는 아모것도 업고 가축으로는 牛, 羔, 鷄, 犬 외에는 아모 것도 업고 虫類로는 谿谷間에 凄息하는 蜈蚣, 人體의 搔癢物이 되는 蚤虱를 제한외에는 역시 아모 것도 업고 晉代의 衣冠을 버서노은 案頭에는 문화정도의 低劣을 들어내이는 天皇氏 木德王의 책자 외에는 其 亦 아모 것도 뵈이지 안코 金剛山이니 東洋-公園이니 떠들어 지방자랑에 口涏이 마른는 관청에도 繪葉書 一枚를 구경하기 어렵다. 자아 업는 것도 이만하면 그리 적지 안을 듯하다. 이제 이것을 서로 較計하면 잇는 것이 만은가? 업는 것이 만은가? 엇더턴지 만키만 한 것이 그리 조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잇서야 할 것은 잇서야 하겟다 만은 이와 반대로 업서야 할 것이 잇던가 잇서야 할 것이 업던가의 이것을 瞠察하야 其 壞士의 안정책을 강구하야 봄이 무엇보다 이상의 急일 것이다.
眞野島司의 囈語
『산마다 奇峯이요. 물마다 玉流라. 이러한 신비적 勝區를 그냥 世外視 할 수 업다. 적어도 東洋的 公園으로 개방한다. 본도에 한하야는 內鮮의 융화는 云爲할 필요가 업다. 만일 논한다하면 人爲가 아니요. 自然이다, 四面環海에 수산이 풍부하니 이것이 도민의 厚生物이요 山식물로 유명한 약초와 木物이며 岩間薄土에라도 一粒의 施肥가 업시 落種만 하면 油油成長하는 百穀, 어느 것이 도민의 福利되지 안는 것이 업다. 그리하야 明春부터 全島 농작에 綠肥를 실시하야 地力의 衰耗를 보충하야 三年 이내로 六十萬圓의 生産率을 增進케한다. 公立普通學校에 木工場을 확장하고 도내 무진장의 良材를 이용하야 歇價의 특제품을 島外로 移出하야 본도 특산의 聲價를 昻騰케 한다. 滿山蒭草는 牧畜에 적절하니 養牛의 獎勵를 倍前加勢하야 生牛의 移出高를 激增케 하겟다. 到處叢生한 山桑의 恩露로 年年 五六萬圓의 猝富를 致하는 본을 바다 다시 一千六百餘戶의 全島를 통하야 養鷄의 副業을 진흥케 한다』는 이상의 諸問題가 島司 眞野景象君의 鬱島發展의 大方針이라 한다.<82>
抑컨댄 「江東雖小亦足以王」이라는 泗上船夫의 말은 글로는 보앗다 만은 多年警界의 老軀를 잇글고 湖南으로부터 武陵으로 들어가 桃園의 囈語를 橫竪함은 도리여 漁舟子를 향하야 明珠자랑으로 大氣焰을 吐하던 魏人의 滑稽를 再演한 은 아모리 하야도 擧世의 苦笑거리를 주는 것 갓다. 보라! 산도 조코 물도 조타. 과연 勝地江山이다. 엇지 동양적 공원에 긋치랴. 그야말로 세계적 공원으로 개방할 만한 가치는 업스랴. 朝鮮郵船會社에 매년 一萬二千圓이라는 거금의 보조를 주어가면서도 아모리 火速的이라도 一週日後가 아니면 公文구경도 못하는 교통기관의 불완전은 엇지하며 인위적 융화에 몰두하는 統治圈을 초월한 지방이라고 狂喜自負하는 一方에는 어업의 불황으로 撤歸의 不得己에 出한 이래 無主空舍와 無異한 장소에 日鮮아동의 共學制를 실시한 台霞公立尋常小學校가 잇다. 이것도 新敎育令의 發布前 事라. 如何間 幸이라면 幸일 듯도 하다만은 一千二百圓이라는 不少한 地方費의 보조를 바다가지고 겨우 三名의 아동을 수용한 南陽公立小學校는 엇지된 셰음인가.
과연 一二 乞飯者의 救濟에 冒沒하는 其者들은 鐵面皮라고 唾罵함보다 차라리 동정의 淚水를 添酌한 木盃 一箇의 선사라도 잇슬 만하다... ...허허... ...엇지 이뿐이랴. 아동수의 多少는 불구하고 尋常小學校는 三面三校나 되는데 보통학교는 겨우 三面一校에 긋치얏는가. 이것이 朝鮮人의 負擔難일가? 당국의 塞責的 施政인가? 만일 朝鮮人의 負擔難이라 하면 南陽洞에 天府洞에 蒸蒸日上하는 私立校는 그 뉘의 血汗의 결정이라 하는가. 이것은 그만두고라도 동일한 시간, 동일한 노력, 동일한 客地, 또한 동일한 인류로서 昇級時마다 本俸의 一割을 加算支給하는 島手當金을 日本人에게 한하야 인류애를 무시하는 天人共鳴의 蕭墻의 불평은 엇지 하며 天惠와 地利만 全恃하던 농작에 綠肥를 施與하느니 不幾年內에 60萬圓의 생산증가이니 하는 이것도 皮相的에 불외하는 장담인 듯 하다. 死火山인 本島의 지형의 대부분은 급경사지로 지반은 「알카리」성의 암석으로 成한 數尺에 불과한 土皮로써 包被하얏고 토양은 화산재질이라 粘着力이 乏한데다가 풍화한 암석이 혼잡하얏슬 뿐 아니라 年年不絶하는 폭풍우는 地皮를 剝奪함에야 엇지 하며 특산을 천하에 소개한도 조타만은 本島의 대표적 명물인 香木, 槻木과 가튼 良材는 발서 日本 窃盜黨의 濫伐로 거의 멸망을 당하얏다. 그 瘡痍의 完治이야말로 幾十年의 長年月을 경과치 못하면 소망이 絶이다. 약간의 看色品으로야 뉘의 눈을 奢惑케 할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데는 뉘가 슬타하랴. 養牛도 조코 養鷄도 조타만은<83> 屠牛는 三歲이상으로 제한하야 牝牛는 善賣되나 牡牛는 逐年 過剩되야 牧養者로 하야금 도러여 막대한 고통을 밧게 하고 다시 夏不上九十度 冬不下零十度라는 本島의 기후를 예측하고 그런 설계가 생기얏는지는 모르겟스나 冬寒에 산란치 못하고 설사 溫暖時를 당하야 산란한다 할지라도 卵 一箇價가 30錢이나 넘어서 上等料理店 所用밧게 못되는 더구나 보편적 商賣가 못되는 洋鷄四首를 每首 15圓이라는 不少한 공금을 주고 매입하야 全島에 분포하랴는 그 胸算이 那邊에 在한가?
年富力强하던 少時에는 猛虎도 잡아보앗노라는 상식경험이 兼富한 眞野君의 老鍊, 아아 이것이 君의 苦心織出한 腹案인가? 犬馬十年의 공로도 겨우 馘首를 면하고 遠竄을 당하얏다 함은 너무나 과언일가 하거니와 仙樓의 瓊漿玉液이 제아모리 香美타 하야도 田家의 粟食菜羹만 못하다는 것은 目下 本島 大小官員의 大同的의 하소연인 듯하다. 다시 先見의 明을 가지고 雲霞와 가티 蝟集하야 本島의 利權을 좌우하던 數千의 日本人의 부락인 연안일대는 임의 天寒白屋의 星稀한 荒村으로 化한지 오래거니와 더구나 開島이래 금일 忠淸明日 慶尙移去移來의 萍水生活로 姑息苟安하는 殘民 多數의 불안은 엇지하랴는가. 이것을 安定한다 하야 일시 彌縫的 宣傳에만 偏事하다가 如掌小島에 과잉되는 인구 즉 貧窮多族의 생활난은 엇더케 구제하랴는가. 그야말로 本島를 위하랴는 眞摯한 성의가 잇는가. 과연 잇다 하면 그러한 沒趣味하고도 不徹底한 甕算的 窮策일난 一擲하고 다시 松風蘿月에 煩惱를 露灑하야 鬱島百年의 大計를 取하야 봄이 如何.
謝白
靑松, 鬱島의 膾炙거리가 엇지 이뿐일 것이며 揭載의 시일이 엇지 이처럼 뒤떠러 젓스라만은 편집상 지면이 一步를 假借치 안는 데야 엇지 함니까. 청컨댄 讀者諸賢은 恕諒하시라.(本記者)<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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